“취중방송 너무 많은거 아냐?”...음주 권하는 ‘술방’ 관련제재는 고작

정주원 2022. 11. 2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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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드라마 안 가리고 취중 방송 봇물
일상 비춘듯 자연스러운 모습에 인기
‘음주 조장’ ‘청소년 영향’ 부작용도 우려
방심위 관련 조치는 5년간 5건에 그쳐
본격 음주 유튜브 콘텐츠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에 출연한 걸그룹 트와이스 채영(왼쪽)과 나연(오른쪽). <사진=트와이스 트위터>
일상 속 술자리를 화면 안에 옮겨놓은 듯 편안한 분위기, 연예인이 카메라 앞에서 술에 취하는 이색적인 모습에 ‘술방’(출연자가 술을 마시는 방송)을 찾아보는 이들도, 만드는 이들도 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음주 장면이 끼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취중진담 콘텐츠는 방송 영토가 공중파 채널을 넘어 유튜브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으로 확장하면서 더 늘어나는 추세다. 가수 이영지가 진행한 유튜브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은 집으로 게스트를 초대해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예능으로, 방탄소년단(BTS) 진, 트와이스 나연·채영 등 인기 아이돌이 나와 자신의 취한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나영석 PD의 tvN ‘내 어깨를 봐 탈골됐잖아’도 술집을 배경으로 한 토크 버라이어티다. 조회수 100만을 거뜬히 넘긴 회차가 많다.

최근 신드롬급 인기를 끈 예능 ‘환승연애 2’에서도 매회 술자리가 빠지지 않았다. 이미 헤어진 커플 4쌍이 한 집에 3주간 동거하면서 느끼는 미련·재회·설렘 등의 감정을 관찰한 예능인데, 젊은 남녀 8명은 매일 밤 술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터놓는다. CJ ENM이 운영하는 ‘더 밥 스튜디오’의 ‘낮술의 기하학’, 카카오TV 예능 ‘소유기’의 ‘노상어게인’ 등 술을 소재로 한 콘텐츠는 무궁무진하게 쏟아지고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방영된 시청률 상위 드라마·예능 총 657편에서 음주 장면은 1편당 2.3회 노출됐다.

우리나라 식음문화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보니 이를 소재로 다룬 예능에 대중도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회사원 박 모씨(36)는 “방송용으로 연출한 장면이 아니라 실제로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술자리라 공감도 되고 편하게 볼 수 있다”며 “퇴근 후 맥주 한 잔이라도 마시면서 보기에 좋다”고 말했다.

유유자적 낮술 웹예능을 표방하는 ‘낮술의 기하학’ 속 한 장면. 진행자인 가수 장기하가 한 식당에서 맥주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CJ ENM>
다만 시청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음주 장면이 술 마시는 사회를 조장한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나왔다. 증진원이 지난해 말 보건교육건강증진학회지에 수록한 논문 ‘미디어음주장면 노출이 성인 음주문제수준에 미치는 영향’은 전국의 만 65세 미만 10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통계 분석 등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미디어 음주 장면에 노출될수록 음주를 통해 대인관계·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긍정적인 기대와 실제 음주를 하게 되는 동기가 모두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음주 장면을 심의하거나 견제할 장치는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 기준도 청소년 시청 보호시간(오전 7~9시, 오후 1~10시)에 음주·흡연 장면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 정도다. 보건복지부의 음주 방송 가이드라인이 음주 장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등 내용을 적시하고 있지만 기준이 모호하고 구속력이 없다.

환승연애2 출연자들이 술자리에서 대화하는 모습. <사진=티빙>
실제로 매일경제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증진원의 2018~2022년 ‘문제 음주장면 시정 실적’에 따르면, 방심위에서 이뤄진 음주 장면 관련 심의 조치는 5건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증진원이 문제 소지가 있다고 보고 심의 요청을 한 건수 총 154건의 3% 수준이다. 지난해 관찰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한 배우 출신 출연자가 아침부터 공복에 소주를 병째로 들이키는 장면 등이 방영돼 청소년 모방 등의 우려가 제기됐는데 행정지도 수준인 ‘권고’를 받는 데 그쳤다.

나세연 증진원 음주폐해예방팀장은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프로그램을 선별해 매년 방심위에 제재 요청을 보내고 있지만 대부분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별도 제재 조치는 없는 상황”이라며 “방송업계 전반의 음주 방송 위험성에 대한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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