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팬알기] ㉘베어스 & KBO 구단별 최다패 투수 이야기

“제가 데뷔 첫해 17패를 했기 때문에 100승 투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통산 110패를 했기 때문에 109승도 가능했던 거죠.”
장호연. 지난주 [베팬알기]에서 소개했듯이 베어스 구단의 통산 최다승(109승) 투수다. 이와 함께 베어스 구단의 통산 최다패(110패) 투수이기도 하다. 그는 110번의 패전 기록이 현역 시절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고 돌아보고 있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찌 스포츠에 승자만 있겠는가. 승자의 환호 뒤엔 패자의 눈물이 있고, 승자의 역사 이면엔 패자의 역사도 함께 숨쉬고 있다.
[베팬알기-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기록 이야기] 이번 편에서는 패전투수의 역사와 베어스 및 KBO 각 팀 프랜차이즈 최다패 투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KBO 최초 패전투수를 아십니까
지난주에 소개했지만 KBO 최초 승리투수는 MBC 청룡의 좌완 유종겸이었다. 1982년 3월 27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역사적인 KBO 최초 개막전에서 구원승을 올렸다. 1-5로 뒤진 3회초에 선발투수 이길환을 구원등판해 연장 10회까지 8이닝 2실점으로 역투하면서 팀의 11-7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기서 퀴즈 하나.
원년 개막전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MBC가 연장 10회 혈투 끝에 삼성을 11-7로 이겼다. 7-7 동점으로 진행되던 연장 10회말 MBC 청룡의 초대 주장 이종도가 끝내기 만루홈런을 날리면서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 만루홈런을 허용한 투수가 KBO 최초 패전투수. 바로 삼성 라이온즈의 원년 좌완 에이스 이선희가 비운의 주인공이다.
KBO리그는 1982년부터 2024년까지 43년간 총 2만2860경기(페넌트레이스 기준)를 펼쳤고, 2만2368승과 2만2368패, 492무의 전적을 기록지에 새겼다. 그중 이선희는 역대 2만2368명의 패전투수 중 맨 앞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날 삼성의 선발투수는 황규봉(작고). 삼성 타선이 7점을 뽑아줬지만 7-3으로 앞선 6회말 백인천에게 솔로홈런, 7회말 2사 후 유승안에게 동점 3점포를 맞고 7-7 동점을 허용한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어 구원등판한 이선희는 9회까지 무실점으로 잘 막아 나갔으나 연장 10회말 2사 만루에서 이종도에게 끝내기 좌월 그랜드슬램을 허용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이선희는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 국제대회에서 ‘일본킬러’로 명성을 얻은 좌완 에이스. 비록 이날 KBO 최초 패전투수의 멍에를 썼지만 그는 그 아픔을 딛고 그해 15승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91로 맹활약했다. 원년 구원왕에 오른 황규봉(15승11패, 11세이브), 훗날 KBO 최초 100세이브를 달성하는 권영호(15승5패, 2세이브)와 함께 그해 삼성의 ‘15승 트리오’를 구축했다.
미국 무대(밀워키 산하 더블A)에서 활약하다 돌아온 OB 베어스 박철순이 24승으로 초대 다승왕에 올랐지만, 만약 박철순이 미국에서 계속 도전을 이어갔다면 원년에 이들 3명이 공동 다승왕을 차지했을지 모를 일이다.
이선희는 공교롭게도 그해 한국시리즈 최종 6차전 9회초에 OB 베어스의 김유동에게 또 만루홈런을 허용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흔히 원년 프로야구를 두고 “만루홈런으로 동이 트고 만루홈런으로 해가 졌다”고 표현하는데, KBO리그는 원년 이선희의 눈물을 먹고 흥행에 불을 지필 수 있었다.

◆베어스 최초 패전투수는?
베어스는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491경기를 소화했다. 110번의 무승부와 함께 2818승 2570패(승률 0.531)의 발자국이 기록지에 남았다.
베어스 역사상 1호 승리투수는 ‘불사조’ 박철순. 1982년 3월 28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베어스의 최초 경기 MBC 청룡전에서 9-2 승리를 이끌면서 완투승을 기록했다.
여기서 다시 질문 하나.
원년 OB 베어스는 3월 31일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팀 역사상 두 번째 경기를 치렀다. 여기서 OB는 0-4 완패를 당했다. 롯데 좌완 천창호에게 완봉승 기록을 내주면서 첫 패를 기록하게 됐는데, 이날 패전투수가 베어스 역사상 최초 패전투수로 남아 있다.
바로 좌완 황태환이다. 황태환은 이 경기에 선발투수로 나서 4회까지 12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하며 퍼펙트게임을 만들어나가고 있었지만, 5회말에 한꺼번에 무너지고 말았다.
선두타자 김용희에게 좌익선상 2루타를 허용한 뒤 김용철과 김성관을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 무사 만루 위기에 빠졌다. 여기서 롯데 김일환의 스퀴즈번트로 선취점을 빼앗겼다.
계속된 1사 2·3루에서 8번 포수 차동열에게 볼넷을 허용하면서 만루 위기를 다시 만나자 OB 김성근 투수코치는 마운드에 올라 김현홍을 호출했다. 하지만 구원등판한 김현홍이 추가로 2명의 주자를 홈에 들여보내면서 황태환의 실점도 3점으로 불어났다.
타선의 침묵 속에 OB는 0-4 완봉패를 당했고, 황태환은 결국 4.1이닝 3실점으로 베어스 최초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황태환은 첫 등판에서 패전으로 시작했지만 원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투수 부문 초대 수상자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당시의 골든글러브는 요즘처럼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뽑는 게 아니었다. 수비율을 통해 포지션별 최고 수비수를 뽑는 시상식이었다. 박철순을 제치고 황태환이 초대 황금장갑 투수 부문 수상자가 된 이유다(박철순은 그해 베스트10에 선정됐다).
베어스 1호 패전투수 황태환은 이듬해인 1983년엔 20세이브포인트(6구원승+14세이브)로 베어스 역사상 최초 구원왕에 오르기도 했다. 구단 역사상 최초의 패전투수 기록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베어스 원년 최다패 투수는?
OB 베어스는 원년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당초 “중위권 정도의 전력”이라는 평가와 “꼴찌 아니면 다행”이라는 평가 속에 출발했지만, 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뒤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원년 정규시즌은 팀당 80경기. 그해 OB가 거둔 승수는 총 56승이었다. 원년 OB 투수는 7명이었는데 박철순이 24승4패7세이브를 거두며 원맨쇼를 펼쳤지만, 다른 6명의 투수도 골고루 제몫을 해내면서 탄탄한 마운드를 구축했다.
사이드암 박상열이 10승5패, 좌완 선우대영이 7승6패로 원년 팀 내 다승 2~3위를 차지했다. 좌완 황태환이 6승5패3세이브, 우완 계형철이 4승4패, 부상으로 후반기에 가세한 잠수함 강철원이 5승무패를 기록했다. 훗날 스카우트로 베어스의 화수분 야구 토대를 만든 김현홍이 승패없이 12경기(29.2이닝)를 소화했다.
이에 따라 OB에서는 7승6패의 선우대영이 원년 팀 최다패 투수가 됐다. 6완투와 1완봉승을 곁들인 좌완 에이스였지만 다른 투수들의 패전 기록이 모두 적었기에 선우대영은 원년 팀 최다패 투수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선우대영은 이와 함께 베어스 역사에서 소중한 최초의 기록을 하나 찍은 인물이기도 하다. 바로 구단 최초 한국시리즈 승리투수라는 값진 타이틀이다.
OB 베어스는 그해 삼성과 맞붙은 원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연장 15회 혈투 끝에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2차전에서는 0-9로 패했다. 3차전에서 5-3 승리를 거두고 첫 승을 올렸는데 선발투수 선우대영이 5.1이닝 1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역사적인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첫 승리투수라는 훈장을 달게 됐다. 베어스는 그 여세를 몰아 4연승을 올리면서 4승1무1패로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선우대영은 이듬해인 1983년 어깨 부상 속에 4승6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91을 기록한 뒤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는 미국 애틀랜타로 이민을 갔다. 그는 머나먼 타국에서 보안업체를 설립해 사업가로서 성공신화를 썼다.

◆베어스 프랜차이즈 최다패 투수는?
1983년 입단한 장호연은 신인으로서 시즌 개막전(MBC 청룡전)에 선발등판하는 영광을 안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7-0 완봉승으로 커리어의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러나 장호연은 그해 6승17패를 기록하면서 시즌 최다패 투수로 KBO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당시 저에게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 코칭스태프에서 정말 기회를 많이 주셨습니다. 남들 몇 년 동안 경험해야 할 것을 저는 1년 만에 경험했어요. 그 패전의 경험들이 쌓여서 저도 100승 투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장호연은 그 이후 승리와 패전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렸다. 1995년을 끝으로 13년간의 프로야구 선수 여정을 마감할 때 109번의 승리투수와 110번의 패전투수 기록을 찍었다. 109승은 베어스 역사상 여전히 개인통산 최다승 기록. 110패 또한 베어스 역사상 여전히 개인통산 최다패 기록이기도 하다.
패전이 더 많다고 별 볼 일 없는 투수가 아니었다. 그의 통산 평균자책점은 3.26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보다 패가 1개 더 많았던 것은 OB 베어스의 암흑기와 궤를 함께한 탓도 있다. 타선도 약했고 불펜도 약했다. 장호연의 110패를 조금 더 다른 시선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장호연에 이어 베어스 개인통산 최다패 투수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선수는 다음과 같다. 이들은 모두 베어스의 역사를 만들어온 주축 투수들이다. 대부분 승리투수 부문에서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KBO 개인통산 최다패 투수는?
KBO 전체를 살펴봐도 최다패 투수 명단은 화려하다. 통산 210승으로 KBO 개인통산 최다승 부문 전체 1위에 올라 있는 송진우가 최다패 부문에서도 153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989년부터 2009년까지 21년간 활약하면서 무려 3003이닝을 던진 결과다. 어쩌면 송진우의 개인통산 210승보다 153패가 깨지기 어려울지 모른다.
KBO 개인통산 100패 이상 투수를 살펴보면 현역 선수는 양현종(118패) 한 명밖에 없다. 153패까지 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35패를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머지는 모두 은퇴선수다. KBO 전체 최다패 부문에서 ‘어린왕자’ 김원형이 144패로 역대 2위, 롯데의 유일한 신인왕이자 마지막 신인왕(1992년) 염종석이 133패로 역대 3위다. 이들은 쌍방울과 롯데 전력이 약했던 시절에 활약하면서 승수보다 많은 패수를 쌓았다.
정민철은 빙그레와 한화 이글스에서 161승을 올렸는데 그 뒤편에서 128패를 기록해 4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배영수와 이상목이 122패로 공동 5위이며, MBC와 LG에서 활약한 ‘부엉이’ 정삼흠이 121패로 7위다.
그 뒤를 장원준(119패), 한용덕, 양현종(이상 118패), 이강철(112패), 장호연(110패), 윤성환(106패), 김상진(100패)이 잇고 있다.
KBO 개인통산 100패 투수는 이처럼 지난해까지 총 14명. 이들 중 13명이 100승-100패 클럽에 가입했으며, 염종석(93승)만 유일하게 두 자릿수 승리와 세 자릿수 패전을 기록했다.

◆KBO 시즌 최다패 투수
KBO 역사에서 한 시즌 최다패 투수 리스트를 보면 ‘너구리’ 장명부가 맨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1985년 청보 핀토스 시절 무려 25패를 기록하면서 전년도 자신이 작성한 시즌 최다 20패 기록을 넘어섰다. 지금까지 KBO 역사상 시즌 20패를 경험한 투수는 장명부뿐이다.
1983년 재일교포로서 삼미 슈퍼스타즈 유니폼을 입은 그는 30승을 올리면서 불멸의 KBO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썼는데, 25패 역시 영원불멸의 시즌 최다패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1982년 삼미 김재현과 롯데 노상수가 기록한 19패가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원년 6개 구단 중 롯데는 5위, 삼미는 6위(종합승를 기준)였을 정도로 전력이 약했던 탓이다.
특히 노상수는 잠수함투수로 원년 롯데 에이스로 활약했다. 원년에 19패뿐 아니라 14승으로 OB 베어스 박철순(24승), 삼성 라이온즈 이선희 황규봉 권영호(이상 15승) 트리오에 이어 다승 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해 팀당 80경기를 치렀는데 노상수는 무려 44경기에 등판했고, 12차례나 완투를 펼쳤을 만큼 빈약한 롯데 원년 마운드에서 고군분투했다.

뒤를 이어 18패 그룹에 1986년의 장명부(빙그레), 2002년의 김영수(롯데), 2007년의 윤석민(KIA)이 있다. 세 팀은 해당 시즌에 암흑기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1986년은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한 뒤 1군 리그에 진입한 첫해였다.
그래서 훗날 100승 투수가 되는 에이스 이상군도 프로 입단 첫해에 17패(12승)나 당했다. 1983년 OB 루키 장호연과 1998년 한화 이상목도 17패로 역대 시즌 최다패 부문 공동 8위에 랭크돼 있다.

◆KBO 구단별 프랜차이즈 최다패 투수는?
지난주에는 KBO 역사에 존재한 12개 구단의 프랜차이즈 개인통산 최다승 기록을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프랜차이즈 개인통산 최다패 기록을 살펴본다.
역시 KBO 최다패(153패) 투수 송진우가 빙그레와 한화로 이어진 이글스 구단 역사에서 최다패 1위에 올라 있다. 롯데는 염종석의 133패, LG 트윈스(MBC 청룡 포함)는 정삼흠의 121패가 최다패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해태와 KIA로 이어진 타이거즈 프랜차이즈에서는 양현종이 최다승(179승)과 최다패(118패)를 함께 보유하고 있는데 앞으로 송진우의 KBO 최다승과 최다패 기록까지 경신할지 궁금하다.

OB-두산 베어스는 앞서 설명한 대로 장호연의 110패가 구단의 최다패 기록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윤성환의 106패, SSG 랜더스(SK 와이번스 포함)는 김광현의 98패가 최다패다. 김광현은 2패만 추가하면 역대 14번째 100승-100패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NC 다이노스 역시 이재학이 최다승(84승)과 최다패(87패) 기록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kt도 고영표가 구단 최다승(61승)과 최다패(58패)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히어로즈에서는 최원태의 58패가 여전히 최다패 1위로 남아 있다.
한편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삼미-청보-태평양 포함)는 정민태가 95패, 쌍방울 레이더스는 김원형과 성영재가 73패를 기록해 공동 최다패 투수로 이름을 남겼다.

◆130승 이상 투수 중 임창용은 6할대, 선동열은 7할대 '미친 승률'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선수는 선동열이다. KBO 역사에서 개인통산 130승 이상 기록하고도 100패를 넘기지 않은 투수는 선동열과 임창용 2명뿐이다.
임창용은 130승88패를 기록해 통산승률이 6할대(0.610)로 매우 높았다. 그런데 선동열은 146승46패로 통산승률이 무려 0.760에 이른다. 그야말로 승리의 보증수표였다.
앞으로 100승 이상 투수 중 선동열을 능가하는 승률을 기록할 투수가 나타날까. 불가능한 영역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찌 모두가 선동열이 되겠는가. 선동열처럼 '미친 승률'을 올리지 않더라도 통산 100패 투수는 그 나름대로 KBO에서 대접해줘야 할 레전드라 할 수 있다. 팀 내 에이스급 투수가 아니고서는 100패를 할 정도로 꾸준히 기회를 제공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패전 역시 KBO의 소중한 역사다. 우리가 승리뿐만 아니라 패전 기록도 함께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