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Q] “10년 내 ‘중국판 ASML’ 등장하고, 미국은 ‘반도체판 존스법’ 만들 수도”

김홍수 경제에디터 2026. 3. 1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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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준 교수가 본 중국 반도체 굴기
글로벌 반도체 패권 구도를 분석한 책 '반도체 삼국지'로 경종을 울렸던 성균관대 권석준 교수는 "AI 경제 국가 도약을 표방하고 있는 중국은 절대 반도체를 포기할 수 없다"면서 "전국가적인 노력으로 중국판 ASML(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노광장비를 만들어내는 네덜란드 기업)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고운호 기자

지난 12일 막을 내린 중국 최대 정치 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협)에서 2030년까지 ‘AI(인공지능) 경제 국가’를 만들겠다는 새 국가 목표를 수립했다. 이를 위해선 ‘반도체 기술 자립’이 절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며칠 앞서 중국 반도체 기업인들은 ‘전 국가적 힘을 모아 중국판 ASML(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노광 장비를 만드는 네덜란드 기업)을 만들자’는 정책 기고문을 발표했다. 미국의 제재로 수입을 못 하고 있는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대신할 수 있는 중국산 장비를 기필코 만들어 내자는 취지였다.

한국이 반도체마저 경쟁 우위를 상실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 역량은 어느 수준에 와 있고, 발전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될까.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권석준 교수에게 물었다. 권 교수는 2022년 역저 ‘반도체 삼국지’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과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존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4월에 후속작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을 발간할 예정이다.

◇中, ‘극복 대상 기술’ 하나씩 지워가

-새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나.

“반도체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첨단 컴퓨팅 산업 전략과 정책, 기술 수준과 경쟁력을 공학, 경영학, 경제학, 정책학, 국제정치라는 다차원 틀에서 들여다보고 평가하는 책이다. 한국에게 반도체와 인공지능은 사실상 마지막 보루다. 한국 첨단 산업의 생존과 다음 세대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선 중국의 전략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나.

“10나노(10억분의 1m) 이상 레거시 반도체 기술은 거의 다 따라왔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이나 패키징 공정도 급성장했다. 하지만 한국 수준의 최첨단 공정은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판 ASML을 만들자’는 구호에 기술 도약의 염원이 담겨 있는 셈이다.”

-반도체 기술 굴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중국 정부와 반도체 산업계는 극복 대상 기술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진척 정도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는데, 상당한 진전이 있다. 비유하자면 10년 전에는 30개 목표 중에 달성한 게 3~4개뿐이었다면, 지금은 꾸로 안 되고 있는 걸 찾기가 더 어렵다.”

-ASML의 EUV 노광 장비는 5000개 공급업체가 만드는 10만개 이상 부품이 필요한데, 중국이 그런 장비를 만들 능력이 있나.

“매년 3월 중국의 반도체 장비 회사들이 신제품을 출시하는 ‘세미콘 차이나’라는 행사가 있는데, 작년에 가보고 깜짝 놀랐다. EUV 이전 세대 노광 장비인 DUV(심자외선)를 자체 기술로 개량해 반도체 제조 장비로 쓰고 있었다. 레이저로 강력한 빛을 만들어 내는 ASML 방식(LDP)을 우회해 플라즈마를 광원(LPP)으로 쓰는 장비를 만드는 신생 기업도 등장했다. 지금 중국은 광원 기술, 광학 장비 제조 기술, 고정밀 기계공학 분야 등 최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에 필요한 기술을 동시다발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10년 내로 중국판 ASML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경쟁국들이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거 아닌가.

“중국 공학자들은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고 말한다. 한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만든 주역은 70·80·90학번 세대들이다. 70년대 학번은 거의 은퇴했고, 80~90년대 학번은 2030년까지 대부분 은퇴한다. 이들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고숙련 엔지니어와 연구원들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반도체 제조 노하우가 끊길 수 있다. 반면 현재 중국의 반도체 인력은 아주 젊다. 기초와 바닥부터 노하우를 축적한 30~40대 중국 엔지니어들은 20년 후 최전성기를 맞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 반도체 분야 학자들은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고 말한다.”

◇1개 공대에 반도체 교수 160명, 대학원생 1800명

-중국의 반도체 인력 양성 상황은 어떤가.

“우한에 있는 H대학을 예로 들면, 반도체 전공 교수가 160여 명이고, 대학원생도 1800여 명에 달한다. 반도체 계약학과가 있는 성균관대학엔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클린룸이 1개뿐인데, 이 대학엔 클린룸이 3개나 있다. 반도체 제조 장비 수백 대가 가득 차 있는 클린룸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데, 지방 정부가 전기도 사실상 거의 무상으로 공급한다.”

-중국 자체 반도체 수요가 많다는 점이 반도체 굴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나.

“내수 시장이 크다는 것은 기술 개발 면에서 엄청난 강점이다. 중국 배터리 산업은 10년 전 한국보다 기술 수준이 낮아 한국 모델(NCM·니켈 코발트 망간)에 비해 성능이 떨어진다고 알려졌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주력 모델로 삼았다. 지금 어떻게 됐나. 기술 개발을 통해 단점(낮은 에너지 밀도, 폭발 위험 등)을 극복하고 학습 곡선과 규모의 경제 효과를 타고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세계 배터리 시장을 장악했다. 국가가 ‘인내 자본’ 역할을 하며 20~30년 지원하고, 기업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기술 축적을 하고, 엔지니어가 훈련되고, 원가를 계속 낮춰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중국식 모델이 결국 반도체에도 통할지 모른다.”

-반도체는 기술 난도가 훨씬 높지 않나.

“우리가 10개 만들 때, 중국 기술자들은 3교대로 24시간 클린룸을 100% 활용하면서 100개씩 만들어 테스트하면 기술 업데이트 주기가 훨씬 더 단축될 수 있다. ‘AI 경제국가’ 건설을 국정 과제로 설정한 중국으로선 반도체 굴기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다른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성공 체험을 했고 자신감을 얻었다. 중국 지도부는 반도체라고 안 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AI 경제국가 전략이 미·중 패권 경쟁과도 관련이 있나.

“물론이다. 중국의 대표 AI 모델 개발 스타트업인 딥시크가 ‘오픈소스’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겉으로는 무료지만, 딥시크의 모델을 내려받아 사용하는 순간, 중국의 AI 생태계에 예속이 시작된다. 중국이 ‘버추얼(virtual)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 중심의 글로벌 경제 벨트 전략)’를 구축하기 위해 공짜 AI 모델로 일종의 ‘산업 알박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수퍼사이클 2027년 말까지 간다

-이번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언제까지 갈 것으로 보나.

“2027년 말까지는 갈 것으로 예측한다. 예전 수퍼 사이클과 확연히 다른 점 중 하나는 메모리 메이커들이 고객사에 ‘테이크 오어 페이(take or pay)’ 방식의 계약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량을 계약할 때 계약금만 내고, 나중에 경기 상황이 안 좋아지면 계약을 취소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나 테이크 오어 페이 계약은 일단 고객사가 미래의 물량을 주문하면, 나중에 무조건 가져가든지, 인수를 포기할 경우엔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년 이상 장기 계약 상황을 감안하면, 2년 정도는 수퍼 사이클이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반도체 기업과 정부는 뭘 준비해야 하나.

“메모리 반도체에도 파운드리 개념과 유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HBM은 구글의 AI 반도체 TPU에 바로 사용하기는 매우 어렵다. 빅테크들이 독자적으로 만들어갈 AI 반도체에 딱 맞는 맞춤형 반도체를 공급하는 ‘메모리 파운드리’ 기능을 갖춰야 한다.”

-하이닉스·TSMC·엔비디아 삼각 동맹 구도가 깨질 수도 있나.

“그럴 가능성도 있다. 몇 년 후 엔비디아의 주문에 따라 TSMC가 메모리 전체는 아니더라도, 메모리와 GPU 사이를 연계하는 HBM용 로직 다이(logic die·AI반도체를 구동하는 핵심 엔진)까지 직접 만들어 엔비디아에 공급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중, 반도체 ‘게임 체인지’ 기술 성공할 수도

-중국이 새로운 개념의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 가능성은 없나.

“엔비디아 AI칩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자신들 방식의 완전히 새로운 AI 반도체를 만들려 할 수 있다. 아예 EUV가 필요 없는 새로운 아키텍처를 실현하기 위한 모험을 시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트랜지스터를 2D가 아니라 3D 형태로 만들어, 10나노 이상의 공정으로도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기술이 실현되면 반도체 업계를 뒤흔들 ‘파괴적 기술’이 될 것이고, 중국이 미국에 던질 수 있는 강력한 카운터 펀치가 될 것이다.”

-수백조 원이 투입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성공하려면 뭘 해야 하나.

“대폭 늘어날 생산 능력이 그림의 떡이 되지 않게 하려면 전력과 용수 문제, 반도체 인력 공급이 제대로 준비돼야 한다. 반도체 산업도 무인화, 자동화가 진행되겠지만, 라스트 마일(last mile·마지막 마무리)은 숙련된 전문가의 손길이 중요하다.”

-미국의 압박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우리에겐 큰 위험 요소 아닌가.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한국 기업이 메인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포석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선 긍정적 면도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 입장에선 미국에서 향후 ‘반도체판 존스법(미국 항구에 들어오는 화물선은 미국에서 만든 배를 써야 한다고 규정한 법)’이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주요 AI 프로젝트에 들어갈 반도체는 미국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서 만든 것을 써야 한다고 규제할 수도 있다. 또 미국이 주도할 미래 반도체 기술이나, 양자컴퓨터 같은 ‘게임 체인저’ 기술의 최선단 라인에 한국이 기술 파트너 국가로서 우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 기업의 미국 진출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권석준

서울대 공대 화학생물공학부의 학사·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에 재직하면서 차세대 반도체 소재 및 공정 기술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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