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이다”…바다가 27년째 땅으로 뱉어낸 용·문어 레고의 경고
바다가 인류에게 끝없이 하고 있는 말
지난 6월말 해양 생물학자인 헤일리 하드스태프는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콘월의 포트링클 해변을 산책하다가 ‘용’을 발견했다. 검은색 플라스틱 레고 조각이었다. 위턱은 사라지고 없었다. 콘월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해변에서 레고 조각을 발견하곤 했다. 어릴 땐 신기했다.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장난감을 두고 가는지. 비밀은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2월13일, 영국 남서쪽 끝자락인 랜드스 엔드 약 32㎞ 앞바다에서 화물선 도쿄 익스프레스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렸다. 한쪽으로 60도까지 기울었다 제자리를 찾았지만 화물 컨테이너 62개가 바닷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사라진 컨테이너 1개엔 약 480만개의 레고 조각이 있었다. 그중 ‘용’은 3만3427개였다. 6월말 하드스태프가 발견한 ‘용’은 27년 만에 돌아온 3만3427개 중 하나였다. 장난감 관련 가장 큰 환경 재앙으로 꼽히는 이 사건은 ‘대규모 레고 유출 사건’으로 불린다.
트레이시 윌리엄스는 2010년께 콘월로 이사했다. 그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처음 해변에서 레고 조각을 하나 발견했을 때 13년이 지나서도 발견되다니 정말 놀랍다고 생각했다”며 “1990년대 후반엔 아이들이 해변에서 발견한 ‘용’을 양동이에 가득 담아 팔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2013년 10월 그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었다. ‘바디에 잃어버린 레고(Lego Lost at Sea)'였다. 2014년 비비시(BBC)가 보도한 뒤 수많은 제보가 들어왔다. 어디서, 어떤 레고 조각이 발견됐는지 기록하고 추적했다. ‘Adrift: 바다에 잃어버린 레고의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책도 나왔다.
27년이 지난 지금도 레고 조각은 해안가로 밀려온다. 영국·웨일스·아일랜드·벨기에·프랑스·네덜란드 해안 등 나라를 가리지 않는다. 컨테이너에 514개만 있던 녹색 ‘용’, 4200개뿐이던 검은 ‘문어’ 등이 희귀템으로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지만, 학자들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레고 조각들은 어디까지 퍼졌을까.
1992년 1월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약 2만8800개의 플라스틱 장난감들이 바다로 쏟아졌다. 주로 노란색 고무 오리, 파란색 거북이, 빨간색 비버, 초록색 개구리로 이루어진 ‘프렌들리 플로티즈(Friendly Floatees)'라는 장난감들이었다. 이 사건은 ‘프렌들리 플로티즈 유출사건(Friendly Floatees Spill)'이라 이름 붙었다. 이 장난감들은 해류와 바람을 타고 이동했다. 해양학자들이 해류의 흐름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됐다. 동시에 바다에서 플라스틱이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도 됐다.
1992년 사건을 추적한 것으로 유명한 해양학자 커티스 에브스마이어 박사는 뉴욕타임스에 “해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철 노선과 같다. 해류는 어떤 것이라 해도, 어디로든지 데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레고 조각들은 수세기 동안 바다를 돌아다닐 수 있다. 에브스마이어 박사는 “레고 사건의 가장 큰 교훈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물건들이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철제 컨테이너 안에 있어도 마찬가지다”라며 “이런 사고는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런 사고는 늘 일어난다. 레고 조각 480만개는 바다 동물들에게 재앙이다”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조각들이다. 에브스마이어 박사는 1997년 유출 사고 직후 레고사로부터 목록과 샘플을 받았다. 욕조에서 부력을 시험했는데 절반만 떠올랐다. 이들은 계속 바다 속에 머물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플리머스 대학의 해양 및 환경 생화학 교수인 앤드루 터너는 뉴욕타임스에 “해저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플라스틱이 너무나 많고,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들이 언제 해안으로 떠밀려 올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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