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아니라 뉴질랜드라고? 맥라렌 60년의 역사, 알고 보면 파란만장한 이야기

사진 맥라렌

2023년 올해는 레이서이자 레이싱 팀이면서 스포츠카 브랜드이기도 한 맥라렌이 창립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멕라렌의 자동차들은 TV나 영화, SNS를 통해 많이 등장했으니 익숙하지만, 그 맥라렌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동차 좀 잘 안다고 자부하는 동네 형에게 물어봐도 "페라리나 포르쉐의 역사라면 잘 알지!"라고 하겠지만, 맥라렌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면 "음…… 글쎄……"라고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잘 알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잘 모르는, 그러면서도 알고 보면 눈물이 나면서도 재미있는 맥라렌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만약 독자 여러분들 중에서 옛 레이스에 관심이 많은 분이 있다면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것이다. 일단 창립자인 맥라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름은 '브루스 레슬리 맥라렌(Bruce Leslie McLaren)'이다. 맥라렌 회사는 현재 영국에 있지만, 브루스 맥라렌은 사실 1937년에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다.

브루스 맥라렌은 어린 시절부터 다리에 병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모터스포츠에 흥미를 갖게 됐다. 아버지가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아마추어 자동차 레이스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5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레이스에 뛰어들었는데, 그 때는 낡은 '오스틴 세븐'을 개조한 자동차로 갑자기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58년에 뉴질랜드 그랑프리에서 활약했고, 그의 모습을 본 레이서 '잭 브라밤(Jack Brabham)'이 그를 영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사진 맥라렌

그리고 맥라렌은 1959년부터 쿠퍼(현재 미니 JCW를 전개하고 있는 그 쿠퍼의 할아버지) 밑에서 활약했고 F1에 참가했다. 그리고 1959년의 F1 최종전인 미국 그랑프리에서 우승, 22세 104일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당시 '최연소 F1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 기록은 2003년이 되어서야 '페르난도 알론소'가 겨우 갱신했으니, 얼마나 위대한 기록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몇 년간 활약한 맥라렌은 이제 욕심이 생겨 자신의 팀을 꾸리고자 했다.

1963년, 맥라렌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브루스 맥라렌 모터 레이싱(Bruce McLaren Motor Racing)'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이름을 날리고 있는 맥라렌의 원점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맥라렌에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무대를 F1에 한정하지 않고 각 대륙을 넘어 수많은 레이스에 참전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지금도 변하지 않아서, 맥라렌은 현재 F1 이외에도 포뮬러-E, 다양한 내구레이스 등에 참전하고 있다.

맥라렌 설립 초기의 활동은 뉴질렌드와 호주에서 열리는 포뮬러 레이스였던 '타스만 시리즈'였다. 그리고 여기에 곁들여 북미를 무대로 하는 스포츠카 레이스인 '캐나디안-아메리칸 챌린지컵(Can-Am)'에도 참전했다. 이 Can-Am은 당시에는 배기량 무제한으로 1인승 운전석만 갖춘 자동차만 참가했는데, 맥라렌은 여기에서 엄청난 능력을 보여줬다. 1967년부터 1971년까지 독점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으니, 그 위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진 맥라렌

게다가 F1에서도 강한 모습을 계속 보여줬다. 맥라렌이 팀의 이름으로 F1에서 활동을 개시한 것은 1966년. 그 전까지는 계속 쿠퍼 팀에 있었다. 1968년에는 맥라렌과 같이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데니 흄(Denny Hulme)이 맥라렌 팀에 합류했고, 그 때 F1 성적은 로터스에 이어 팀 2위에 들 정도로 좋았다. 이 때는 이렇게까지 레이스에서 활약했다면, 그 뒤의 수순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바로 자신의 이름을 건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맥라렌은 르망 24시를 비롯한 내구레이스 참전을 목표로 당시 Can-Am 무대에서 활약했던 M6 모델에 지붕을 포함해 온전한 차체를 씌우는 것을 구상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M6GT인데, 레이스용 호몰로게이션 취득이 어려워져 레이스에 투입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대신 맥라렌 최초의 양산 모델로써 250대를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엔진은 GM에서 8기통 엔진을 받아 별도의 튜닝을 거쳤고, 최고 속도가 266km/h에 달하는 모델이었다.

그런데 이 양산 모델 프로젝트는 갑자기 중단됐다. 자동차의 문제가 아니었다. 브루스 맥라렌이 1970년에 영국 굿우드 서킷에서 Can-Am에 참가할 M8D를 테스트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직 32세밖에 안 된 청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계획은 많이 일그러졌고, M6GT는 딱 4대만 생산되고 끝을 맞이하고 말았다. 만약 이 시점에서 아무도 맥라렌을 잇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맥라렌의 역사는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사진 맥라렌

힘을 다시 보여주는 맥라렌

위기에 선 맥라렌의 2장을 연 사람은 브루스 맥라렌의 친구였던 '테디 메이어(Teddy Mayer)'였다. 미국 출신의 레이서였던 그는 맥라렌 팀도 같이 이끌었었다. 보통 이렇게 창립자가 사고로 죽으면 위축되어 모터스포츠 활동을 줄이기 마련이지만, 메이어는 오히려 활동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F1 무대에서는 다른 레이서들을 영입해 활약했고, 1974년에는 브라질 출신의 레이서였던 '에머슨 피트파르디(Emerson Fittipaldi)'를 데려와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76년에는 영화 '러쉬'로 유명한 '제임스 헌트'를 데려와서 챔피언에 올리기도 했다. 물론 맥라렌의 전통대로 다른 레이스에도 잇달아 참전했다. 1970년대부터는 '인디 500' 무대에 도전했는데, 1972년과 74년, 76년에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아무래도 맥라렌은 그 때부터 북미를 무대로 열리는 레이스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맥라렌이 WRC등 랠리 무대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맥라렌에 위기는 있었다. 70년대 후반이 되면서 자동차 개발에 조금 소홀했기 때문에, 경쟁 팀에 뒤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 1980년부터인데, 맥라렌의 메인 스폰서였던 '필립 모리스'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두 팔을 직접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필립 모리스가 맥라렌에 보낸 사람은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론 데니스'. 개인적으로는 'F1 역사상 최강의 용병'이 아닐까 싶다.

론 데니스는 맥라렌에 오자마자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레이스용 자동차 전문 디자이너인 '존 버나드'를 불렀고, 포르쉐에서는 엔진을 받아왔다. 그리고 레이서 '니키 라우다'와 '앨런 프로스트'를 영입했다. 그 결과, 맥라렌은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1988년, 드디어 맥라렌에게는 황금기가 도래한 것이다. 최고의 엔지니어라고 할 수 있는 '고든 머레이'가 디자인하고 혼다의 엔진을 탑재한 맥라렌 MP4/4가 등장했다.

혼다 엔진을 탑재한 이 차는 당시 '아일톤 세나'의 손에 맡겨졌고, 아일톤 세나에게 최초의 F1 종합 우승을 안겨준 자동차이다. 그 뒤 1991년까지 맥라렌 팀과 거기에 속한 레이서가 F1 우승을 독점했으니, 그 위력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레이스용 자동차가 가진 위력을 빌려서 일반도로를 주행할 수 있는 스포츠카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역사인 것이다.

사진 맥라렌

이제는 당당하게 스포츠카 브랜드가 되었다네

지금까지도 맥라렌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자동차인 '맥라렌 F1'은 1988년부터 제작을 생각했던 자동차이다. 이 차에는 당시 F1에서 사용했던 기술이 많이 들어갔는데, 대표적으로는 경량화와 고강성을 동시에 고려한 탄소섬유를 차체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소한 곳까지 경량화와 함께 중량 배분을 지켰고, 엔진은 BMW에서 가져온 12기통 엔진을 사용했다. F1의 영향을 받아 운전석이 중앙에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맥라렌 F1은 일반도로용으로 판매했지만, 모터스포츠용 자동차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95년에 르망 24시에도 출전했는데, 그 때 맥라렌 F1 GTR 모델이 우승한 것은 물론 3~5위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3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협업해 '메르세데스 벤츠 SLR 맥라렌'이라는 모델이 등장했다. 탄소섬유와 알루미늄을 혼합한 차체에 8기통 엔진을 탑재해 놀라운 성능을 기록했던 자동차다.

그리고 2010년, 맥라렌 오토모티브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2011년에는 새로 태어난 맥라렌의 일반도로용 스포츠카 1탄이 되는 MP4-12C가 등장했다. 초고성능을 지향하지는 않지만, 허례허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스티어링의 움직임만을 추구한 것 같은 맥라렌의 자동차 제작 방식은 다른 브랜드와 철저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제 이전보다 조금 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아투라'를 판매하고 있다.

키위를 다시 찾고 싶어

이것으로 맥라렌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으로 마무리된다고 봐도 좋다. 맥라렌이 일반도로용 자동차를 본격적으로 판매한 역사가 짧다 보니, 아무래도 맥라렌의 자동차 그 자체보다는 맥라렌이 직접 출전했던 역사 그 자체에 집중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리고 맥라렌의 특이한 점인 '다양한 레이스에 출전한다'와 '시대에 따라 집중하는 레이스가 달라진다'에도 주목하고 싶다.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 레이싱 팀으로써는 의외의 선택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맥라렌의 진짜 엠블럼을 찾고 싶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본래 브루스 맥라렌이 즐겨 사용하던 엠블럼은 따로 있었다. 태어난 나라인 뉴질랜드의 새 '키위(Kiwi)'를 본따서 엠블럼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스피디 키위'라고 불렀다. 이 엠블럼은 필립 모리스가 론 데니스를 보내서 맥라렌에 큰 영향을 끼친 이후 점차 사라져갔고, 이제는 볼 수 없는 엠블럼이 되어버렸다.

이제 맥라렌이 60주년을 맞았고, 화려한 모습을 많이 보여줄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름을 어느 정도 알린 만큼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만, 개인적인 소원이 있다면 지금의 맥라렌 엠블럼 대신 '스피디 키위'를 일시적으로라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으면 한다. 그것이 맥라렌의 뿌리였던 '브루스 맥라렌'을 추모할 수 있는 길일 것이고, 이를 통해 맥라렌에 깊게 빠져들게 될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