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던진 조선업 재건이라는 거대한 기회 앞에서 한국과 일본이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한국은 정부와 기업이 손발을 맞춰 미국 본토에 깃발을 꽂으며 쾌속 질주하는 반면, 일본은 정부의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못 가겠다"며 버티는 바람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 빠져있죠.
동맹과의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일본 정부만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러브콜, 일본 기업들의 차가운 반응
미일정상회담 이후 백악관은 일본이 약속한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중 하나로 신규 조선소 건설을 포함한 상업 및 방산용 조선 분야 협력을 명시했습니다.
양국 정부는 공급망 구축을 위해 조선업에서 긴밀히 협력하겠다며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했죠.

하지만 정작 일본 산업계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일본 닛케이아시아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최대 조선사인 이마바리 조선의 희가키 유키토 사장은 일본 국토교통성의 미국 협력 요청에 대해 "일본의 점유율이 13%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미국을 도울 입장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정부는 가자고 하는데 기업은 갈 수 없다고 하니, 이보다 더 난처한 상황이 있을까요.
일본이 미국행을 꺼리는 진짜 이유
일본 조선업계가 주저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노동집약적 산업의 특성상 미국의 높은 인건비는 곧바로 선박 가격 급등으로 이어집니다.
이미 한국, 중국과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인 것이죠.

둘째는 결정적인 공급망 부재 문제입니다. 희가키 사장의 말을 빌리면 "조선은 기반이 넓은 산업이다. 미국으로 가져가야 할 부품만 10만에서 20만 개"라며 "공급망이 없는 곳에 조립하러 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미국 내 조선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만 최소 5년에서 10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죠.
대안으로 떠오른 미해군 함정의 일본 내 수리 방안에 대해서도 미쓰비시 중공업의 니시오 CFO는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고 현재 자원 여력도 없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점진적 쇠퇴로 인력 부족과 재정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조선업계로서는 해외 투자보다 자국 내 생산 능력 회복에 집중하고 싶은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한국의 번개같은 행보, 기회를 놓치지 않다
일본이 정부와 기업 간 엇박자를 내는 사이 한국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협력 분야에 1,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며 기업들의 미국 진출을 강력하게 밀어붙였죠.

그 정점은 2024년 12월 한화그룹의 필리 조선소 인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업 인수를 넘어 일본이 온갖 이유를 대며 주저하던 미국 본토 생산 거점 확보라는 과제를 단번에 해결해버린 쾌거였습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아, 저렇게 하면 되는 거구나"를 보여주는 완벽한 실례가 된 셈이죠.
정부와 기업의 환상적 호흡, 한국의 비밀무기
한국의 행보는 일본의 상황과 모든 면에서 대조적입니다.
정부는 조선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지정해 위기 때마다 구제금융과 펀드로 살려냈고, 기업은 강력한 리더십과 과감한 투자,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화답했습니다.

인력난은 외국인 노동자와 로봇 기술로 정면돌파했죠.
정부와 기업이 서로를 믿고 같은 방향으로 힘을 합치니 태평양을 건드리는 거대한 사업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원팀 플레이는 일본으로서는 부러움을 넘어 질투가 날 지경일 겁니다.
일본이 한국에게 감사해야 하는 진짜 이유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적극적인 미국 진출이 일본에게는 의외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 조선업 재건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주고 있기 때문이죠.
일본 기업들이 "못 가겠다"며 버티는 동안 한국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워주니, 일본 정부로서는 미국에 대한 면피는 어느 정도 세울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더욱이 한국이 미국 조선업 재건에 성공한다면, 일본은 나중에 성공 사례를 보고 따라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한국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낸 노하우와 공급망을 참고할 수 있는 것이죠.
마치 "선발주자가 길을 닦아놓으니 우리는 편하게 따라가면 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거울로 비춘 두 나라의 현실
미국의 러브콜은 결국 양국이 처한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됐습니다.
일본 정부가 잃어버린 30년의 그림자 속에서 기업조차 설득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동안, 위기를 기회로 삼아온 한국은 미국의 조선업 재건이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에 가장 먼저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과감한 도전이 성공한다면, 일본은 뒤늦게나마 "역시 한국 덕분에 길이 열렸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쟁자이자 동시에 길잡이가 되어준 한국에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