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4시간 동안 잠들지 않는 자동차 도시"…후지에서 본 토요타의 미래

후지 24시간 레이스 스타트

후지 24시간 레이스 스타트"24시간 동안 달리는 것은 경주차만이 아니었다"

6일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 스피드웨이. 오전부터 몰려든 관람객들로 서킷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출발 직전 열린 그리드 워크에는 수천명의 팬들이 한꺼번에 서킷 위로 쏟아져 나왔고, 출전 차량 주변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섰다. 후지 24시간 레이스는 자동차경주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자동차 축제였다.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 스피드웨이에서는 6일부터 7일까지 '슈퍼 타이큐 시리즈 2026' 제3전 후지 24시간 레이스가 열린다. 토요타와 닛산, 혼다, 마쓰다 등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수소 엔진과 탄소중립 연료, 전동화 기술을 앞세워 서킷에 올랐다. 경기장에는 수만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고, 레이스와 캠핑, 공연, 체험 행사가 어우러지며 하루 종일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레이스 시작 전 열린 그리드 워크부터 분위기는 남달랐다. 수많은 관람객들이 서킷 위로 내려와 출전 차량을 가까이에서 살펴보고 드라이버들과 사진을 찍었다. GT3 머신과 수소 엔진 차량, 다양한 개조 양산차가 늘어선 모습은 거대한 자동차 박람회를 연상시켰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온 가족과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 해외에서 찾아온 팬들까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후지 24시간의 진짜 매력은 레이스가 시작된 뒤에도 계속된다. 관람객들은 패독과 제조사 부스를 자유롭게 오가며 하루 종일 자동차 문화를 즐긴다. 서킷 곳곳에는 캠핑 텐트가 들어섰고, 일부 팬들은 전날부터 자리를 잡고 밤샘 관람 준비를 마쳤다. 일본 모터스포츠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해가 지자 후지 스피드웨이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후지산 자락 아래 펼쳐진 트랙 위로 수십대의 레이스카가 헤드램프를 밝히며 질주했다. 어둠 속에서 이어지는 빛의 궤적은 거대한 강처럼 흐르며 장관을 연출했다. 관람객들은 캠핑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밤새 레이스를 지켜봤다.

푸드트럭과 음식 부스도 늦은 밤까지 불을 밝혔다. 일본식 꼬치구이와 덮밥, 지역 특산 음식을 판매하는 매장마다 긴 줄이 이어졌다. 공연과 이벤트 그리고 불꽃축제도 계속됐다. 서킷 전체가 거대한 야외 축제장으로 변한 모습이었다.

GR 코롤라 H2 콘셉트

GR 코롤라 H2 콘셉트

GR 코롤라 H2 콘셉트

GR 코롤라 H2 콘셉트

GR 코롤라 H2 콘셉트

GR 코롤라 H2 콘셉트흥미로운 점은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토요타 부스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우승 후보 차량보다 액체수소 기술이 적용된 GR 코롤라 H2 콘셉트를 더 오래 바라봤다. 배터리 전기차 시대에 왜 토요타가 여전히 수소 엔진을 개발하는지 직접 확인하려는 사람들이었다.

토요타는 2021년부터 후지 24시간을 수소 엔진 개발의 시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구소 안에서 기술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레이스 환경에 투입해 한계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수소 엔진 코롤라를 시작으로 액체수소 차량까지 발전한 과정도 모두 이 무대에서 이뤄졌다.

타카하시 토모야 가주 레이싱 컴퍼니 사장

타카하시 토모야 가주 레이싱 컴퍼니 사장레이스 현장에서 만난 타카하시 토모야 가주 레이싱 컴퍼니 사장은 수소 엔진 상용화 시기에 대한 질문에 의외로 신중한 답을 내놨다. 그는 "수소 엔진 차량이 언제 출시될지는 알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고객들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요타가 지금 집중하는 것은 차량보다 생태계다. 수소를 생산하고 운송하고 저장하고 사용하는 전 과정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후지 24시간 현장에는 자동차 업체뿐 아니라 수소 관련 기업과 협력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다. 레이스는 단순한 경주가 아니라 수소 생태계를 실험하는 플랫폼 역할도 하고 있었다.

후지 24시간 레이스에서 또 하나의 화제는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회장의 출전이었다. 아키오 회장은 올해도 자신의 레이싱 네임인 '모리조(MORIZO)'로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만 70세의 나이에도 장남인 토요다 다이스케 우븐 바이 토요타 부사장과 함께 직접 경주차 운전대를 잡고 개발 현장에 참여했다.

왼쪽부터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그룹 회장과 그의 장남 토요다 다이스케 우븐 바이 토요타 부사장.

특히 토요타 가주 루키 레이싱(TGRR) 피트는 대회 기간 내내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린 장소 중 하나였다. 아키오 회장이 직접 레이스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팬들이 피트를 찾았다 토요타는 아키오 회장의 이런 행보를 단순한 상징적 이벤트로 보지 않는다. 타카하시 사장은 "모리조는 상사가 아니라 동료"라며 "회장이라는 위치보다 자동차를 만드는 한 명의 드라이버로서 의견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토요타는 모터스포츠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차량 개발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GR 야리스와 GR 수프라, 최근 공개된 GRMN 코롤라 역시 레이스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발됐다. 후지 24시간이 토요타에게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후지 24시간 레이스에 참가한 모리조와 가주 레이싱팀 드라이버들이 모두 모였다.

후지 24시간 레이스에 참가한 모리조와 가주 레이싱팀 드라이버들이 모두 모였다.토요타 내부에서는 이를 단순한 이벤트로 보지 않는다. 타카하시 사장은 "모리조는 상사가 아니라 동료"라며 "토요타 회장이 아니라 자동차를 만드는 동료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엔지니어와 메카닉, 드라이버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토요타의 경쟁력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모리조도 권위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드라이버 중 한 사람으로서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실제 후지 현장에서는 엔지니어와 드라이버, 경영진이 한 공간에서 데이터를 확인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토요타가 강조하는 '현장 중심 개발'이 그대로 구현되고 있었다. 이런 철학은 현대자동차와의 협력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줬다. 현대차와 수소 모터스포츠 생태계를 함께 구축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타카하시 사장은 망설임 없이 "오픈 도어"라며 "현대 N이 함께하겠다고 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기술은 모두 공유할 생각이고, 함께 모터스포츠를 발전시키고 수소 생태계를 키울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도 현대차와 함께할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 같다"고 덧붙였다.

GR 코롤라 H2 콘셉트

GR 코롤라 H2 콘셉트후지 24시간은 겉으로 보면 자동차경주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모습은 조금 달랐다. 낮에는 수만명의 관람객이 모이는 자동차 축제였고, 밤에는 수소와 전동화 기술을 시험하는 연구소였다. 경주차와 엔지니어, 팬과 제조사가 같은 공간에서 24시간을 함께 보낸다.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은 경주차만이 아니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향한 실험과 도전도 함께 달린다. 그래서 후지 스피드웨이는 밤에도 잠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정은 체커기가 내려진 뒤에도 계속 이어진다. /후지(일본)=지피코리아 김기홍 기자 gpkorea@gpkorea.com, 사진=슈퍼타이큐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