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계의 '성시경' 배상준 외과 전문의 "본업에 충실하고, 좋아하는 것 전문화해라"

'의사계의 성시경' 배상준(55) 간담췌외과 전문의의 신간 '메뉴판 해석학'이 지난달 출간되자마자 교보문고 여행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수술실에선 메스를 잡고, 취미로는 먹고 마시는 콘텐츠를 창작하는 그는 "본업에 충실하고, 좋아하는 것을 전문화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사진 제공./배상준

배상준(55) 간담췌외과 전문의는 '의사계의 성시경'으로 통한다. 가수 성시경이 무대에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유튜브에선 '먹을텐데' 영상을 통해 먹고 마시는 취미를 콘텐츠로 만들어 전문화한 것처럼 외과의사인 그는 수술실에서 메스를 잡고, 퇴근 후에는 맥주 거품을 올리며 개인 블로그에 먹고 마시는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놓는다.

그의 네이버 블로그 '낭만닥터SJ'에는  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파고드는 인문학적 글들이 가득하다. 외과의 특유의 집요함으로 파헤친 음식 이야기들은 3만명 이상의 구독자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달 출간된 그의 신간『메뉴판 해석학』은 교보문고 여행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표지에 그려진 라멘, 하스테(함박스테이크), 우동 등 일본 대표 요리들의 일러스트가 눈길을 끈다. "낯선 여행지에서 美味(미식)을 외치고 싶다면! 여행자를 위한 일식 메뉴판 정복 안내서"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일본어를 몰라도 기본 한자만 알면 일본에서 원하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가이드북이다. 그가 2018년 출간한『독일에 맥주 마시러 가자』에 이은 두 번째 저서다.

그런데 왜 하필 '성시경'일까? "성시경이 노래를 잘하듯 저도 본업인 외과의로 인정받으면서 먹고 마시는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으니까요. 덩치도 비슷하고요(웃음)." 실제로 그는 먹고 마시면서도 1년에 특정 기간은 밥,빵,면,술을 금하는 '자체 라마단'을 행하며 체중을 관리한다. 먹는 것을 많이 좋아해 "관리를 안 하면 무한대로 불어날 걸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먹고 마시는 취미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를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청춘구락부에서  만났다.

-『메뉴판 해석학』이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처음부터 책으로 기획한 건가요?

△블로그에 써둔 내용들을 정리한 거예요. 블로그가 제 콘텐츠 플랫폼 역할을 하거든요. 맛집 후기나 그런 건 안 써요. 책을 쓴다는 건 지식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처음에는 블로그 내용을 그대로 붙이려 했는데, 편집자가 '글에 책의 맥락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메뉴판 읽는 법을 테마로 해서 다시 정리했어요."

-'낭만닥터SJ' 블로그는 언제부터, 왜 시작하신 건가요?

△"처음에는 솔직히 병원을 알리려는 목적이 컸어요. 저는 제가 일하는 병원과 외과의사로서의 전문성에 자부심이 있는데 환자들이 제게 진단을 받고서는 서울대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 같은 메이저 대학병원들에 서 수술을 받는다고 소견서를 써달라는 일이 잦았어요. 그런데 막상 병원 홍보나 수술 관련 글보다는 제가 평소 좋아하는 먹고 마시고 여행하는 이야기를 쓰니까 구독자가 더 늘어나더라고요. 그렇게 파워블로거가 된 거죠."

-일본어를 몰라도 메뉴판을 읽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책을 보니 실제로는 한자를 외워야 하더군요.

△"한국과 일본이 모두 한자 문화권이니까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외울 필요는 없어요. 조리법 관련 한자 10개 정도, 식재료 관련 한자 30개 정도만 알면 충분해요. 우리가 집에서 하는 조리법도 굽다, 볶다, 튀기다 정도잖아요. 일본 메뉴판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카타카나, 히라가나도 읽을 줄은 알아야죠. 고급 식당에는 사진이 없으니까요."

-AI로 메뉴판을 찍어서 번역하면 되는 시대인데, 굳이 한자를 외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와인 공부할 때 카베르네 쇼비뇽이 뭔지, 메를로가 뭔지 아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와인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골라서 먹기 위한 거잖아요. 메뉴판에 그런 이름들이 나와 있는데, AI로 찍어도 내가 그 차이를 알아야 고를 수 있어요. 그리고 간판을 봐야 들어가고, 회전초밥집에서 셰프한테 직접 주문할 수도 있고요. 그런 디테일한 차이가 있어요."

-일본에 1년에 몇 번이나 가시나요?

△1년에 7-8번 정도요. 언젠가부터 혼자 하는 여행은 취재가 됐어요. 예를 들어 올해 3월에는 스시를 테마로 교토에 갔어요. 교토에는 붕어초밥 원조집도 있고, 회전초밥 원조집도 있거든요. 이미 제 나이에는 볼 것도 다 봤고, 이제는 콘텐츠 취재 의미가 더 커요."

-일본 여행 초보자가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 있다면?

△의외로 도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의 모든 원조 가게와 맛집이 도쿄에 다 뭉쳐 있어요. 도쿄 여행을 간다면 숙소는 신나가와에 잡으세요. 하네다에서 전철로 한 번에 20분이고 교통도 도쿄 시내가 두루 가까워서 정말 좋아요. 서울로 치면 영등포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동경에서는 참치초밥의 원조인 요시노스시를 꼭 가보세요. 그리고 스시를 먹을 거면 등푸른 생선을 드세요. 한국에서는 고등어, 전갱이가 비싸지만 일본은 굉장히 싸고 맛있어요. 꽁치, 정어리 초밥도 있고요.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광어, 도미보다는 등푸른 생선 스시를 드시길 권해요."

-라멘은 어떤가요?

△"동경의 지로 라멘을 추천해요. 지로 스타일 라멘이라는 장르를 만든 곳이에요. 면을 산더미처럼 줘요. 건조 중량 거의 300그램이니까 삶으면 600그램 이상이에요. 다 먹으면 내일 또 와서 먹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예요."

-의료계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분은 드물죠?

△"동료들은 정말 병원 일에 집중해요. 진료뿐만 아니라 행정업무, 학회 일까지 하거든요. 저는 학교 일도 안 하고 병원에서 보직도 없어요. 진료만 하고 남는 시간에 제 콘텐츠를 만들죠."

-학회 강연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코로나 전에는 많이 했어요. 의료과 28개 과에서 학회를 하는데, 인문학 세션을 넣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그런데 대학 교수들이 하는 딱딱한 문학, 철학 강의는 정말 훌륭한 내용이지만 지루하잖아요. 그 틈새시장으로 제가 들어간 거예요. 의료계에서 성시경급 스타가 된 셈이죠(웃음). 사람들이 제 강연을 좋아해 주니까요."

-맥주 여행 관련한 책을 낸 것도 비슷한 이유인가요?

"예전에 학회 때문에 외국에갔는데, 현지에서 맥주를 못 고르겠더라고요. '맥주 주세요' 그러니까 리스트가 열 몇 개 있는데 한국에서 나름 맥주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도 못 고르겠더라고요. 맥주를 골라 먹을 수 있으면 훨씬 즐거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맥주 책이 전국에 열 몇 권밖에 안 됐어요. 와인 공부하는 사람은 많은데 맥주 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희소성이 있었던 거죠."

-본업과 취미를 병행하는 비결이 뭔가요?

△"본업을 먼저 마스터해야 해요. 본업이 루틴화된 다음에 다른 걸 해야 합니다.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15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제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유도 제가 외과의사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본업이 없으면 권위가 없어져요."

-직장인들에게 조언한다면?

△"본업에 충실하라는 거예요. 절대 그만두지 마세요. 우리가 365일 몰디브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360일 열심히 일하고 5일 여행 가니까 재미있는 거예요. 돌아올 곳이 있어야 행복한 거죠. 그리고 본업을 잘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도 잘해요. 뭔가를 하나 열심히 하다 보면 다른 것도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게 보이거든요."

심현희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