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탠딩아웃]= 이정후의 4안타는 잘 친 경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가 타순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 경기였다.
27일 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라인업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주전 유격수 윌리 아다메스가 시즌 처음으로 쉬었다. 토니 비텔로 감독은 최근 타격감이 올라온 이정후를 1번에 배치했다. 3월 28일 이후 처음이었다.
그 선택은 곧바로 결과로 이어졌다.
이정후는 마이애미 말린스 전에서 5타수 4안타 2 득점을 기록했다. 첫 타석부터 우익수 키를 넘기는 3루타를 만들었다. 이후에도 좌전 안타, 우전 안타, 중전 안타가 이어졌다. 마지막 타석에서 좌익수 뜬 공으로 물러난 것을 빼면 거의 모든 타석에서 공을 제대로 맞혔다.
샌프란시스코는 0-3으로 끌려가던 경기를 6-3으로 뒤집었다. 결승 장면의 주인공은 7회 3점 홈런을 친 케이시 슈미트였다. 하지만 경기를 움직이기 시작한 쪽은 이정후였다. 그는 계속 나갔고, 계속 상대 배터리를 불편하게 했다. 1번 타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다.

MLB.com은 이정후를 두고 “공격의 불씨를 붙인 선수”라는 취지로 표현했다. 적절한 평가다. 이정후는 이날 홈런을 치지 않았다. 경기 전체를 혼자 삼키는 장면도 없었다. 대신 첫 타석에서 분위기를 열었고, 중반에도 출루를 이어갔고, 후반에는 득점으로 연결됐다. 화려한 한 방보다 더 꾸준한 방식으로 경기를 밀어 올렸다.
이정후의 시즌 타율은. 287에서. 313으로 뛰었다. 3경기 연속 멀티히트다. 한 경기 4안타는 메이저리그 데뷔 후 세 번째다. 지난해 9월 6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숫자만 놓고 봐도 충분히 좋은 날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위치다.
샌프란시스코의 1번 타순은 올 시즌 확실한 답을 주지 못했다. 아다메스는 좋은 선수지만, 1번에서 팀 공격을 안정적으로 열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이정후가 기회를 받았고, 첫 경기부터 4안타를 쳤다. 이제 이정후의 1번 기용은 단순한 대체 카드가 아니다. 감독이 다시 꺼내 볼 수밖에 없는 선택지가 됐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변화는 더 분명하다.
2025년 이정후는 메이저리그 첫 풀타임 시즌을 보냈다. 타율. 266, 2루타 31개, 3루타 12개, 홈런 8개, 55타점. 실패한 시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낯선 리그를 견뎌낸 시즌에 가까웠다. 빅리그 투수들의 공은 빨랐고, 변화구는 늦게 꺾였고, 수비 위치는 집요했다. KBO에서 자연스럽게 해내던 타격이 이곳에서는 매번 검증의 대상이 됐다.
올해의 이정후는 다르다. 단지 타율만 올라간 게 아니다. 타구가 더 강해졌다. 지난해보다 평균 타구 속도가 올랐고, 강한 타구 비율도 좋아졌다. 이는 운 좋은 안타 몇 개로 설명할 수 없는 변화다. 공을 맞히는 능력에 머물지 않고, 맞힌 공의 힘까지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정후에게 붙던 질문은 늘 비슷했다. 정교한 타격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하느냐는 것이었다.
지금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 통하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세울 때 가장 크게 통하느냐가 문제다.
마이애미전은 그 답의 일부를 보여줬다. 이정후는 1번에서 경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첫 타석부터 공략했고, 출루했고, 흐름을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가 원하는 1번 타자는 거창한 선수가 아닐 수 있다. 매일 첫 타석에서 상대 투수를 흔들고, 다음 타자에게 더 나은 상황을 넘겨주는 선수. 이날의 이정후가 그랬다.
샌프란시스코도 반등의 실마리를 잡았다. 다저스와 마이애미를 상대한 홈 6연전을 4승 2패로 마쳤고, 3 연속 위닝시리즈를 거뒀다. 시즌 성적은 아직 13승 15패다. 완전히 올라섰다고 말하기엔 이르다. 그래도 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이정후의 방망이가 그 앞에 있었다.
지난해의 이정후는 적응하는 선수였다. 올해의 이정후는 자기 자리를 넓히는 선수다.
4안타는 하루의 폭발일 수 있다. 하지만 1번 타순에서 나온 4안타는 다르다. 샌프란시스코가 앞으로의 타순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정후는 이제 좋은 타자를 넘어, 팀 공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선수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이날 오라클파크에서 이정후가 바꾼 것은 자신의 타율만이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첫 타석에 대한 생각도 함께 바꿨다.
출처: 스탠딩아웃(www.standingou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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