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겨울 김하성은 샌디에이고와 4년 계약이 끝나면서 FA 자격을 얻었다. 원래 FA가 되려면 서비스타임 6년을 채워야 하지만, 해외 프로 리그는 규정상 예외로 둔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FA가 될 수 있다. 덕분에 김하성은 30대 이전에 FA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김하성은 FA를 앞두고 예기치 못한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2024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협상에도 영향을 미친 치명타였다. <ESPN> 제프 파산은 "김하성이 부상만 없었다면 1억 달러 계약을 노릴 수 있었다"고 내다봤다.
김하성의 계약은 2월이 돼서야 나왔다. 탬파베이와 2년 29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1년 뒤 선수 옵션을 포함시킨, 사실상 FA 재수였다.
김하성은 '빠른 복귀, 확실한 반등'을 목표로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올해 데뷔 후 가장 적은 48경기를 뛰었다. 게다가 시즌 중 트레이드가 되는 등 우여곡절이 심했다.
김하성은 안전한 길을 택할 것으로 예상됐다. 내년 시즌 선수 옵션(1600만)을 행사해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김하성은 다시 FA 시장에 나왔다.
9월
탬파베이와의 인연은 짧았다. 빠르면 5월에 돌아올 수 있다던 김하성은 복귀가 늦어졌다. 마이너리그 재활 중 햄스트링 부상까지 당하면서 복귀가 더 지연됐다.
김하성은 7월초에 메이저리그 첫 경기를 치렀다. 첫 4경기 15타수 5안타(.333)로 출발이 좋았다. 홈런과 도루도 기록했다. 하지만 계속된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종아리와 허리 부상으로 경기 출장이 꾸준하지 않았다. '철강왕' 명성에 어긋나는 모습이었다.
공교롭게도 탬파베이 역시 순위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러자 탬파베이는 8월말에 김하성을 웨이버 공시했다. 그리고 애틀랜타가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데리고 왔다.
김하성은 애틀랜타에게 강했다. 샌디에이고 시절 애틀랜타 트루이스트파크에서 통산 13경기 48타수 16안타(.333) 홈런 3개, OPS도 1.014에 달했다. 적장으로 김하성을 봤던 스니커 감독도 "공격과 수비가 균형 잡힌 선수"로 기억하고 있었다. 올해 유격수 농사를 망친 애틀랜타는, 김하성의 합류가 새로운 동앗줄이 되길 바랐다.

역시나 출발은 좋았다. 애틀랜타 이적 후 첫 경기 멀티히트, 그 다음 경기에서는 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 홈런은 애틀랜타 유격수의 시즌 첫 홈런이기도 했다. 애틀랜타에서 순조롭게 적응한 김하성은 9월23일까지 19경기 타율 .309 홈런 3개, OPS 0.828를 기록했다.
원래 애틀랜타는 김하성을 내년까지 보유하려는 목적으로 데려왔다. 탬파베이 시절 성적으로는 FA 재수가 성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애틀랜타에게 김하성은 눈앞에 성적보다는, 다음 시즌 우승 전력을 위한 퍼즐이었다.
하지만 김하성이 9월 들어 본모습을 찾으면서 기류가 묘해졌다. 애틀랜타 지역 매체 <AJC>는 '애틀랜타가 김하성과의 다년 계약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보도했다. 절친 쥬릭슨 프로파를 내세워서라도 김하성에게 어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만약 김하성이 1600만 달러 옵션을 거절한다면, 그는 최소한 같은 연봉의 다년 계약을 받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추정된다. 그러면 브레이브스는 이러한 약속을 할 여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친근함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를 바랄 것이다(If Kim declines the $16 million option, the assumption would be that he believes he could command a multiyear contract at around at least the same annual number. The Braves should have room for such a commitment. They’ll also hope familiarity looms important)'
시즌 내내 어둠 속에서 헤맸던 김하성은 9월에 어느 정도 빛을 찾았다. 건강하면 어떤 선수인지 보여줬다. 이로 인해 많은 계획을 수정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호재
애틀랜타 김하성은, 탬파베이 김하성과 달랐다. 표면적인 성적뿐만 아니라 세부 지표도 개선됐다. 숫자를 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탬파베이 김하성은 타구속도가 평균 87.3마일이었다. 리그 평균 88.8마일보다 떨어졌다. 헛스윙률은 21.1%, 타석 당 삼진율은 개인 통산 기록보다 높은 24.7%였다.
하지만 애틀랜타에서는 타구속도를 평균 90.7마일로 끌어올렸다. 타이밍을 맞히면서 더 강한 타구들이 양산됐다. 그러면서 헛스윙률은 10.9%로 낮췄고, 타석 당 삼진율 또한 16.3%로 떨어뜨렸다. 강한 타격을 하면서도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지 않았다.
통계 분석이 대중화되면서 특정 기록만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시대는 끝났다. 보다 다양한 관점으로 선수를 바라본다. 애틀랜타에서의 변화는, '복귀 초반 부진이 부상 후유증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렇다고 해도 1600만 달러 옵션을 거절하고 시장에 나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김하성이 이러한 모험을 강행한 건 마땅한 유격수를 구하기가 어려운 '시장 상황'이었다.

선수 몸값은 단순히 선수 능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 여기에 어떤 팀들이 원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해 후안 소토의 15년 7억6500만 달러 초대형 계약 역시 '구단주 순자산 1위' 스티브 코헨의 열망이 더해지면서 탄생할 수 있었다.
이번 겨울 FA 시장은 유격수가 흉년이다. 트레버 스토리가 옵트아웃 대신 보스턴에 잔류하면서 유격수 기근이 더 심해졌다.
김하성은 이 빈틈을 노리고 있다.
주요 FA 유격수
보 비셋
김하성
미겔 로하스
라몬 우리아스
아이재아 카이너-팔레파
폴 디용
윌리 카스트로
호세 이글레시아스
딜란 무어
팀 앤더슨
일데마로 바르가스
최대어는 보 비셋(27)이다. 1998년생 3월생으로, 1995년 10월생 김하성(30)보다 나이도 어리다.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은 .294, OPS는 0.806이다. 정확성과 파워를 겸비했다. 또한 월드시리즈 같은 큰 무대에서도 실력 발휘를 했다(7경기 23타수 8안타 .348 1홈런). 10월에 강한 선수는 프리미엄이 붙는다(통산 포스트시즌 타율 .311).
문제는 비셋은 유격수로 두기 어렵다. 수비 지표에서 낙제점이다. 결국 포지션 이동을 이뤄질 것이다. 그러면 유격수로서 가장 먼저 고려되는 선수는 바로 김하성이다.
유격수는 매년 보강해야 되는 팀이 나오는 포지션이다. 지난 두 시즌 성적은 아쉬웠지만, 김하성에게 손을 내미는 팀은 분명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이 붙어야 몸값이 올라갈 수 있다.
의문부호
사실 애틀랜타 김하성은, 탬파베이 김하성과 다를 '뻔' 했다. 이적 후 초반 기세가 마지막 5경기에서 꺾였다. 19타수 1안타(.053)로 부진하면서 성적 자체는 크게 변함이 없었다.
김하성 소속팀별 성적 변화
ATL : 24G 타율 .253 3홈런 ops .684
TBR : 24G 타율 .214 2홈런 ops .612
이러한 측면에서 표본이 충분하지 않다. 이적 후 첫 19경기 성적은 좋았지만, 정말 달라졌는지 확신하기 힘들다. 첫 19경기와 이후 온도 차이가 컸다면, 시즌이 끝나기 전에 하락세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면서 평가가 애매해졌다.
수비도 흔들렸다. 김하성은 데뷔 후 한 번도 유격수 DRS(디펜시브런세이브)에서 마이너스 수치를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3에 그쳤다(탬파베이 -1 & 애틀랜타 -2). 평균 대비 아웃카운트 처리를 나타내는 OAA도 지난해 +4에서 올해 -3이었다(탬파베이 -1 & 애틀랜타 -2). 수비 범위가 줄어든 동시에 송구도 이전 같지 않았다.
김하성 송구 속도 변화
2022 : 87.1마일
2023 : 86.8마일
2024 : 88.0마일
2025 : 83.7마일
김하성의 가장 큰 강점은 수비다. 2023년 유틸리티 골드글러브 수상이 최대 업적이다. 포지션 불문 평균 이상의 수비력을 선보여 차별화를 뒀다. 어깨 수술 후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지만, FA 협상에서 강점이 감점이 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선수 몸값이 높아지면서 부각되는 건 부상이다. 부상만큼 허무한 게 없다. 과거에는 부상으로 빠지면서 손해 보는 금액을 보험으로 충당했지만, 최근에는 보험 비용도 만만치 않아 보험을 잘 들지 않는다. 이에 선수 부상에 관한 피해를 구단이 고스란히 짊어진다.
김하성 시즌별 출장 경기
2021 - 117경기
2022 - 150경기
2023 - 152경기
2024 - 121경기
2025 - 48경기
수비와 더불어 김하성의 강점은 내구성이다. 웬만한 충돌에는 끄떡도 없었다. 팀의 부상 공백을 메우는 선수가 김하성이었는데, 지난 두 시즌은 본인이 부상 공백을 피하지 못했다. 30대에 접어든 선수가 잦은 부상을 당한 점, 수비와 주루에서 역동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가 부상의 늪에 빠진 점은 매력을 반감시킨다.
가장 앞세워야 하는 수비와 내구성이 물음표를 남겼다. 구단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준 이상, 협상이 마냥 순탄하진 않을 것이다.
스캇 보라스의 수완을 믿어봐야 한다.
애틀랜타
김하성을 보고 있었던 애틀랜타는, 김하성이 떠나면서 살짝 혼란을 빚었다. 내년에 곧바로 자존심 회복을 해야 한다면, 유격수 보강은 반드시 해결해야 되는 과제다.
9월 이전 유격수 팀 wRC+
131 - 애리조나
129 - 휴스턴
129 - 캔자스시티
127 - 필라델피아
66 - 콜로라도
57 - 클리블랜드
49 - 애틀랜타 (30위)
*김하성 합류 애틀랜타 wRC+ 85
애틀랜타가 김하성을 원한 건 긍정적이다. 가까이서 본 소속팀의 구애는 품질 보증마크와 같다. 놓치기 싫은 건 이유가 있는 법이다.
김하성이 FA가 되고 나서도 애틀랜타의 관심이 그대로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김하성과 마찬가지로, 애틀랜타도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심지어 다음 시즌 팀 연봉을 늘리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누구에게든 돈을 쓸 수 있다. 일단, 애틀랜타는 선발 투수 보강이 최우선 순위다.
애틀랜타는 혹시나 김하성과 완전히 결별할 경우를 대비해 이미 플랜B도 마련했다. 휴스턴에서 마우리시오 듀본(31)을 데리고 왔다.

듀본은 골드글러브 2회 수상자로 수비에 일가견이 있다. 내외야를 가리지 않고, 미들 인필더로 나왔을 때 수비가 더 견고하다. 애틀랜타 로스터 운영의 깊이를 더해줄 적임자다.
다만, 공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지난 시즌 133경기 타율 .241 7홈런을 때려냈지만, 통산 664경기 출루율은 3할도 채 되지 않는다(.295). 김하성과 비교하면 선구안이나 장타력은 떨어진다. 닉 앨런을 주전 유격수로 쓰면서 공격력이 아쉬웠던 애틀랜타가, 듀본을 주전 유격수로 보진 않을 것이다. 추가 움직임이 있어야만 한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김하성의 이번 계약은 이전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돼야 한다. 무작정 버티는 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각 구단들이 미련을 갖고 매달리기엔 김하성도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적정선에서 타협하는 자세가, 원만한 협상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