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총기 사건: 총기 폭력은 미국인의 삶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나
총기 폭력이 증가하고 며칠에 한 번씩 총격 사건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총격 사건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미국인 수백만 명의 삶을 바꾸고 있다.
쇼핑몰. 교실. 10대들이 모인 하우스 파티.
최근 몇 주새 미국에서는 이러한 공간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이제 많은 미국인들은 총격 사건은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2일 '전국 총기 폭력 인식의 날'을 맞아, 총기 폭력이 미국인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봤다.
어려운 대화
보건 정책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 'KFF'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약 60%가 자녀나 다른 친척과 총기 안전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다고 한다.
대화가 시작되는 계기는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는 미국 학교에서 실시하는 '총기 난사 대비 훈련(lockdown drills)'이다. 총기 난사범이 복도를 배회할 경우에 출입문을 막거나 도망치는 타이밍에 대해서 배우는 이 훈련에 다섯 살 아이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모건 훅의 아홉 살짜리 딸 엘리스는 학교에서 돌아와 "총격범이 바로 문을 부숴버리면 훈련은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훅은 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최근 내슈빌의 한 사립학교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이 떠올랐다. 이 사건의 용의자는 정확히 그런 행동을 했다.
뉴욕 사라토가 카운티에 사는 훅은 "때론 아이들을 안심시키려 하는 게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심리학회의 의료 혁신 담당 수석 디렉터인 베일 라이트는 부모가 총기 폭력에 대해 자녀와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유용한 일이라고 말했다.
거주지 이전
미국의 총기 폭력은 어떤 이들의 삶의 뿌리를 뽑아 버리기도 한다. KFF에 따르면, 조사 참여자의 약 15%가 총기 폭력 때문에 다른 지역이나 도시로 이사를 했다.
마흔 살의 트래비스 윌슨과 그의 아내는 야간에 여러 차례 총성을 들은 후, 작년에 켄터키 주 루이빌의 올드 루이빌 지역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전에는 총알이 이웃집 창문을 관통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은 집 앞에서 누군가 그에게 총을 겨누기도 했다. 2021년에 딸이 태어나자, 그와 아내는 이사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는 "총소리가 자주 들리는 지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어떻게 커다란 영향을 받지 않고 자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기 폭력은 새로 이사간 동네에서도 일어났다. 지난달 한 총격범이 지역에 있는 한 은행에서 전 동료 5명을 살해했다.
윌슨은 아이를 그 어느 곳도 완벽히 안전하지 않은 듯한 미국에서 키우는 게 때로는 무책임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내 딸이) 총격 사건에 희생됐고 제가 그때까지 상황을 방관만 했다면, 저는 제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겁니다."
방탄 백팩
5년 전 밸런타인데이, 로리 알하데프는 매일 아침처럼 세 자녀를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온 자녀는 둘 뿐이었다.
당시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한 고등학교에서 10대 총격범이 17명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 중에는 알하데프의 열네 살 딸 알리사도 포함돼 있었다.
총격 사건 후, 그녀는 자녀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로 결심했다. 두 아들을 위해 방탄 백팩을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는 "안타깝게도 총격 사건은 '또 다른 학교에서 일어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호신용품 제조사 '가드 독 시큐리티'의 대표인 야시르 셰이크는 미국 내 총기 폭력이 악화되면서, 특히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방탄 백팩 수요가 급증한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자신 및 자녀의 안전을 위해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교직원 대상 총기 교육
총격 사건의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오하이오에 사는 케이트는 자신이 일하는 학교 내 안전 계획을 수립해 왔다.
외부 출입문 잠금과 교직원을 위한 의료 교육 제공, 응급 구조대원이 학생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교실 문에 라벨을 붙이는 것 등이 이를 통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2018년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이후, 케이트와 다른 교직원들은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총기 폭력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교직원에게 총기 사용법을 가르치는 단체 '페스터 세이브 라이브즈'와 함께 사흘간의 교육에 참여했다.
KFF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중 약 41%가 케이트처럼 총기 사고로부터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 안전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녀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싶다"고 말했다.
케이트는 모든 교직원들이 무장을 원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는 무장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총격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녀는 학교 측에서 사망자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공공장소 이용 자제
로즈 루이스는 2015년 루이지애나주 라파예트의 한 영화관에서 총격범이 총기를 난사해 2명이 사망한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당시 로즈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Trainwreck)'를 관람중이었다.
이후 스물다섯 살의 로즈는 영화관이나 다른 어둡고 밀폐된 공간을 기피하게 됐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빨리 탈출할 수 없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녀는 "총에 맞을 위험은 그렇게 높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걱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갈 만한 가치가 없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예순두 살의 칼라 스미스도 특정한 공간을 피하려고 한다. 그녀는 사람이 많으면 총격 사건의 위험이 높다고 생각해, 아침에만 식료품을 사러 간다. "사람이 많은 곳에선, 신경이 곤두섭니다."
KFF 조사 결과, 미국인의 약 3분의 1이 특정한 공공 장소를 꺼리는 등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장소에서 발생하는 총격 사건은 전체 총격 사건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노력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총기 난사 사건의 영향을 연구한 심리학자 다니엘 모슬리는 "사람들은 위협을 받거나 안정감 등이 감각이 붕괴됐을 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기 위한 조치를 취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식의 회피가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경우에는 오히려 건강에 해로운 대처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기
팸 보슬리는 스물여덟 살 아들이 트럭 운전을 위해 자정에 집을 나설 때마다 창문 너머로 아들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보슬리는 17년 전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큰 아들 테렐을 시카고의 한 교회 앞에서 총격으로 떠나 보냈다.
그녀는 여전히 총기 폭력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아들뿐만 아니라 남편과 부모가 혹시 무슨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가끔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 "저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어요."
보슬리처럼 총기 폭력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만 총기 폭력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심리학회의 라이트는 지난 20년간 미국인의 스트레스 요인을 연구해 왔다. 이에 따르면, 2019년에는 총기 난사 사건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보슬리는 총기 폭력에 대응하는 단체 활동과 캠페인에서 자신의 슬픔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는 "비록 마음은 여전히 아프다"면서도 "다른 두 아들과 조카, 조카딸 모두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제 삶의 목적이고, 매일매일 저를 움직이게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