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올리브영을 키워낸 허민호 전 CJ ENM 커머스부문 대표가 신세계에서 다시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맡는다. CJ에서 총괄부사장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CJ ENM 커머스부문에서는 실적 부진을 겪은 뒤 대표직을 내려놨다. 그의 행보는 CJ를 떠나 신세계그룹 핵심 참모로 올라섰던 김민규 전 부사장을 떠올리게 한다. CJ를 떠난 고위 경영진이 신세계에서는 다시 핵심 인재로 평가받는 모습이다.
23일 신세계그룹이 발표한 2027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허 전 대표는 신세계까사 대표이사와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스메틱 디비전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까사미아와 자주(JAJU)의 사업 확장에 더해 화장품 사업까지 책임진다. 신세계그룹은 허 신임 대표가 CJ올리브영을 10년간 이끌며 매장 수와 매출을 늘린 경험을 영입 배경으로 제시했다.
허민호와 김민규, 'CJ 출신' 평행이론
허 신임 대표는 CJ에서 사업을 키운 간판 경영자였다. 1989년 신세계에 입사해 신세계인터내셔날 마케팅담당 등을 거친 그는 2008년 CJ올리브영 대표에 올랐다. 당시 수십 개에 불과했던 점포를 1000개 이상으로 늘렸고 2018년에는 CJ ENM 커머스부문 대표까지 맡았다. 2020년 12월 CJ그룹 인사에서는 유일하게 총괄부사장으로 승진할 만큼 그룹 내 입지가 탄탄했다.
그러나 CJ ENM에서의 성적표는 올리브영 때와 달랐다. 2021년 커머스부문 매출은 1조3785억원으로 전년보다 약 1000억원 줄었고 영업이익은 1792억원에서 1201억원으로 33% 감소했다. CJ온스타일 출범과 모바일 중심 사업 재편을 추진했지만 투자 확대와 TV채널 운영비 증가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했다.
이후 지난해 3월 코스맥스비티아이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영입됐지만 올해 9월10일 다시 사임했다. 취임 1년6개월 만이다. 코스맥스에서 물러난 지 43일 만에 신세계에서 두 사업의 대표로 내정되면서 경영 일선에 복귀하게 됐다.
허 신임 대표는 2022년 3월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CJ는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실적 부진이 직접적인 퇴임 원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올리브영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그룹 총괄부사장까지 올랐던 그는 CJ의 커머스사업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 같은 행보는 CJ를 떠나 신세계에서 입지를 넓혔던 김민규 전 신세계그룹 부사장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CJ 시절 두 사람의 위상은 크게 달랐다. 청와대 근무 이후 CJ그룹과 CJ ENM에서 전략지원담당 상무를 지낸 김 전 부사장은 2020년 신세계로 옮겼다. CJ에서 주력 사업을 이끌었던 허 신임 대표와 달리 경영지원 업무를 담당했지만 신세계에서는 그룹 핵심 참모로 올라섰다.
김 전 부사장은 신세계에서 홍보·대관 업무를 맡다가 2023년 경영전략실 경영지원총괄로 올라 그룹 인사와 감사까지 관장했다. CJ에서는 상무였지만 신세계에서는 그룹 컨트롤타워의 부사장이 된 것이다. 다만 지난해 인사·감사 업무를 다른 임원에게 넘긴 뒤 회사를 떠났다. 이후 세명대학교 부총장을 거쳐 올해 9월 글로벌세아그룹 경영전략실장(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의 경력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허 신임 대표가 CJ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뒤 신세계에서 재도전에 나섰다면 김 전 부사장은 신세계로 옮긴 뒤 오히려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섰다. CJ에서의 역할과 직급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신세계가 두 사람 모두에게 주요 보직을 맡겼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CJ에선 물러났지만 신세계에선 중용…정유경의 기대는
허 신임 대표의 복귀는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이끄는 백화점 부문의 사업 확장과 맞물린다. 신세계는 그에게 신세계까사의 가구·생활용품과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화장품을 함께 맡겼다. 올리브영에서 보여준 전문점 운영과 브랜드 발굴 경험을 두 사업의 성장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신세계까사는 지난해 말 자주 사업을 넘겨받아 까사미아와 생활용품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30년 매출 8000억원을 목표로 제시한 가운데 올해 2분기 매출은 119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04.5%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24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다만 매출 증가는 자주 사업 양수 효과가 컸다. 향후에는 두 브랜드의 고객 기반을 넓히면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화장품 사업도 성장세를 이어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스메틱부문은 2분기 매출 1295억원으로 분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비디비치와 연작, 어뮤즈 등 자체 브랜드를 육성하고 해외 판매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번 인사에서 패션과 코스메틱을 별도 디비전으로 재편하며 사업별 전문경영체제도 강화했다.
관건은 올리브영에서 거둔 성과를 신세계에서도 재현할 수 있느냐다. 다양한 브랜드를 한곳에 모아 판매하는 올리브영과 가구·생활용품 및 화장품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는 신세계의 사업 구조에는 차이가 있다. 매장 확장과 브랜드 발굴 경험을 각 사업의 상품 경쟁력과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재계 관계자는 "CJ에서 경력을 쌓은 인사들이 신세계에서 잇따라 핵심 보직을 맡는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라며 "허민호 대표 역시 과거 올리브영에서 성과를 냈지만 이후 두 회사에서 대표직을 내려놓은 만큼 신세계에서도 경영 능력을 다시 입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최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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