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인들에게 ''갑질하고 사기친 민간인들에게'' 수십 배로 갚아준 사단장
강원도 양구. 한때 “군인 상대로 돈 버는 동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 상권은 장병들의 외출·외박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장병들을 상대로 폭행·바가지·갑질이 이어지자, 한 사단장이 칼을 빼 들었다. 외출·외박을 통제하고, 아예 양구 상권 전체를 보이콧해 군인에게 갑질하던 민간인들에게 경제적 ‘현타’를 안겨 준 사건. 그 중심에 바로 훗날 3사관 출신 최초 합참의장이 되는 **이순진 소장(당시 2사단장)**이 있었다는 점에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양구의 일상: 군인 없으면 장사 안 되지만, 군인은 봉이었다
사건이 터지기 전, 양구 읍내 상권 구조는 단순했다. 군인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도시였다.
주말·평일 저녁 PC방·여관·식당 손님의 절대다수가 군인
농번기·재해 복구 때면 군부대 인력이 대민지원으로 나와 일손을 보탬
하지만 상인들의 태도는 달랐다.
PC방 요금: 군인 대상 고가 책정 논란(실제 사례 기준, 타 지역 대비 높은 수준·담합 의혹까지 제기)
여인숙·민박: 시설은 오래됐는데 군인 상대로 1박 10만 원 수준 요구, 주방 사용료까지 별도 10만 원대 폭리 사례 입소문
식당: 메뉴판을 ‘군인용·민간인용’ 따로 두는 바가지 관행. 군인이 앉으면 자동으로 비싼 가격이 찍힌다는 자조가 장병들 사이에 돌았다.
군인들은 위수지역 때문에 양구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이런 상권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구조가 무너진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양구 고등학생 군인 집단 폭행 사건”**이다.

양구 고등학생 10명의 만행, 군인은 맞아도 ‘손도 못 대는’ 현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새벽, 외박 나온 병사 2명이 양구 시내 버스터미널 인근을 지나가던 중
고등학생 10여 명과 어깨가 스쳤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음
군 규정상 군인은 민간인에게 절대 먼저 물리적 위협을 가할 수 없고, 사실상 맞아도 반격이 어렵다
이를 악용한 학생들이 병사 2명을 집단 구타
지나가던 사복 차림 장교가 상황을 보고 병사들을 데리고 복귀
피해 병사들은 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 부대로 돌아왔다.
그런데 더 문제는 동네 여론이었다. 일부 주민과 학생들 사이에서
“군인도 잘못이 있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가해자 옹호 분위기마저 감지되었다.
여기까지 듣고, 2사단·21사단 지휘부가 제대로 폭발한다.

“군인을 뭐로 보는 거냐” 2개 사단 사단장이 꺼낸 초강수
피해 병사 소속 사단장은 당시 육군 제2보병사단장 이순진 소장, 이웃 부대는 제21보병사단장 장준규 소장이었다.
두 사단장에게 사건이 보고되자, 이들은 단순 항의 수준을 넘는 ‘전면 보복’에 가까운 대응을 택한다.
1단계: ‘지갑 전면 봉쇄’ – 외출·외박 통제령
두 사단장은 합의해 전 장병·부사관·장교에 대한 외출·외박·휴가 시 양구 상권 이용 전면 금지 조치를 내렸다.
양구 읍내로 외출·외박을 사실상 막는 특급 조치
휴가자도 부대 차량으로 터미널까지 이동, 시내 상권 접근 차단
면회·외박 오는 군 가족들 역시 양구 식당·숙박업소 이용 금지, 부대 PX·시설 이용 유도
한마디로,
“우리 부대 사람들, 양구에서 단 1원도 쓰지 마라”
라는 군사령부 차원의 경제 보복이 시작된 것이다.
2단계: 장병 ‘자발적 보이콧’까지 겹치며 상권 마비
사단장 지시 이후, 상황은 더 극단으로 흘렀다.
장병들 스스로 자판기·편의점·택시까지 양구 지역 서비스 일절 이용 거부
휴가 나갔다가 복귀하면서도 음료수 한 캔조차 시내에서 안 사 먹는 모습이 일상이 됨
“군인 상대 장사하는 곳은 가지 말자”는 ‘불매운동’이 부대 문화처럼 자리잡음
군인 출입이 끊기자, 주말마다 북적이던 양구 시내 거리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
실제 2020년 코로나로 군 외출·외박이 중단됐을 때도 양구군수가 “상권이 거의 마비 수준”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이때는 말을 안 해도 체감했는데, 이순진 사단장 때는 의도적으로 그 상황을 만들어 넣은 셈이다.

양구 상권 ‘가뭄에 땅 갈라지듯’…결국 민간이 가해 학생들 잡으러 나섰다
양구는 관광자원·산업 기반이 크지 않아, 사실상 군부대가 ‘지역 최대 고용·소비 주체’ 역할을 해왔다.
그 군인들이 빠지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주말 매출 제로에 가까운 날이 이어지고, 식당·PC방·숙박업소 곳곳에서 폐업·휴업 위기 호소
상인회·군의원·군수·경찰서장까지 나서 군부대에 외출·외박 통제 해제 요구
그러나 부대의 답은 한결같았다.
“상급부대 명령 없이는 풀 수 없다.”
결국, 압박의 방향이 바뀐다.
양구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존이 위태롭다는 현실을 깨닫고,
폭행을 저지른 고등학생 10명을 주민들이 나서서 찾아내 경찰에 넘긴다.
이들 중 4명은 이미 군인 폭행 전과가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수·군의원·상인 대표단은 국군수도병원까지 찾아가 피해 장병에게 직접 사과,
재발 방지 및 **‘군인 바가지요금 근절’**을 약속했다.
그제서야, 사단장들은 외출·외박 통제를 해제한다.
한 번 뒤집힌 판, **“군인 없이는 우리는 못 산다”**는 걸 양구가 뼈저리게 배운 순간이었다.

이순진 장군이 보여준 ‘진짜 병사 편’ 리더십
이 일화가 더 회자되는 이유는, 이 조치를 주도한 인물이 단순히 ‘강경한 군인’이 아니라 ‘병사 편을 든 지휘관’으로 평가받는 이순진 장군이기 때문이다.
그는 3사관학교 출신 최초의 합참의장에 오른 인물로,
장교 사회에서 흔치 않은 비(非)육사 출신 최고 지휘관이다.
현역 시절부터 “병사에게 무리한 걸 시키지 않는다”,
“존중받지 못하는 병사를 싸우라고 내보낼 수 없다”는 철학으로 유명했다.
양구 사건에서도 이순진 사단장이 택한 건 칼·곤봉이 아니라 ‘지갑’과 ‘규정’이었다.
장병에게 민간인 폭행을 지시하지도, 보복 폭력을 묵인하지도 않았다.
대신 군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 경제력과 인력 통제를 활용해
**“군인을 함부로 대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남겼다.
이 조치는 병사들 사이에서
“드물게 우리 편 들어준 사단장”
이라는 인상을 남기며, 아직도 군대 썰로 회자된다.

군인도 소비자다, 그리고 누군가의 가족이다
양구 사건은 단순한 ‘통쾌한 복수담’을 넘어, 군인과 지역사회 관계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 있다.
군인은 싸우는 노동자이자, 월급을 받고 소비를 하는 시민이다.
그들의 봉급과 소비가 접경 지역 상권의 상당 부분을 지탱한다.
동시에 그들은 누군가의 아들·딸·형제다.
그렇다면 “군인이라서 조금 더 받아도 된다”,
“맞아도 반격 못할 거니까 괜찮다”는 식의 태도는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행위라는 걸 양구는 실전으로 배웠다.
지금도 한국 곳곳의 군 부대 앞 상권에서
비슷한 갈등과 논란은 반복된다.
하지만 양구의 그때 그 사단장이 보여준 것처럼,
**병사를 위한 ‘한 번의 단호한 선택’**은
그 지역의 군–민 관계를 수십 년 동안 바꿔 놓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