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허구, 대한민국 청년은 불행한가? [정한울의 한국사람탐구]

2024. 10. 3. 04: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정치현안과 사회적 난제에 대한 ‘한국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올바로 이해해야 합의가능한 해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심층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와 의견을 담고자 합니다.
한국인에 대한 오해⑤
게티이미지
한국에 대한 근거없는 비관론
'행복=소득, 고착화' 문제지만
건강한 청년세대는 아직 건재

헬조선 위기 마케팅: 한국 국민들의 절망과 비관은 커지고 있나?

한국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오해를 낳는 대표적 분야 중의 하나가 한국사람들의 주관적 삶의 질(웹빙)의 수준이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헬조선 담론'이 유행하고, 있지도 않은 자료를 근거로 세계 최대 빈국인 부탄이 세계 1위 행복국가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전 정부에서는 부탄의 총행복지수를 벤치마킹하려는 정책적 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현실에 대한 오해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대한민국의 상황과 청년의 삶을 묘사할 때 “망한민국”, “OECD 국가 중 최악”, “절망과 좌절” 등 극단적으로 염세적이거나 비관적 용어를 동원한다. 위기감에 기반한 관심과 행동을 동원하려는 일종의 위기 마케팅이다. 언론이나 사회에서 떠도는 얘기만 보면 한국은 국민과 청년 대다수가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져 있거나 계속 악화일로의 비관적 사회로 보인다.

연도별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

주관적 웰빙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한국행정연구원이 2013년부터 매년 5,000~8,000명 대상으로 진행하는 가장 공신력있는 국가승인통계조사 중의 하나인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자. 사람의 주관적 웰빙과 안녕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인 '주관적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가 매년 발표된다. 총 8만5,128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2013~2023년 사이의 변화를 보자.

2013~2016년의 행복감 점수는 6.2~6.3점, 삶의 만족도 점수는 5.7~5.9점 수준에 머물렀지만 2017~2018년에는 행복감은 6.5~6.6점, 만족도 점수는 6.0~6.1점 수준까지 상승했다. 코로나19가 발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회적 고립과 언택트 사회로 진입하면서 행복감과 만족도 점수는 급감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정상화되면서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는 다시 복원되기 시작했다. 2021~2023년 행복감은 6.68~6.73점, 만족도 6.30~6.48점까지 상승했다. 헬조선 정서가 사회의 일반적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소득 수준별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

'행복=소득수준' 고착화가 문제

다만,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웰빙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 사회가 헬조선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행복감과 삶의 안녕은 소득수준에 비례한다. 국가적 수준의 분석에서는 경제적 풍요가 반드시 삶의 질과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작동하지만 개인 수준에서는 소득이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 수준을 상당부분 결정한다.

2023년 조사 결과만 봐도 소득 200만원 미만에서는 행복감 점수가 6.1~6.3점, 삶의 만족도 점수가 5.6~6.1점에 머물고 있다. 월소득 900만원 이상에선 행복감은 7.2~7.3점, 만족도는 6.8~7.1점에 달한다. 최근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나 복지정책에서 경제적 지원정책에 대한 냉소적 태도가 커지고 있지만, 취약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사회적 네트워크와 개인의 신체적 건강도 주관적 행복과 삶의 만족도에 중요하다. ‘갑자기 목돈이 필요할 때 빌릴 수 있는 사람의 수’, ‘우울할때 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의 수’, ‘몸이 아플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행복감 점수 및 삶의 만족도 점수가 일관되게 높다.

사회적 자본 못지 않게 개인 건강 수준이 행복과 삶의 질에 매우 중요하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라는 격언처럼 건강이 나쁜 편이라고 답한 사람은 행복감 4.1~5.6점, 만족도 점수가 3.6~5.4점 수준에 불과하지만, 건강 상태가 나아질수록 행복도 점수 및 삶의 만족도 점수가 급격히 개선된다.

연령별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

건강한 청년 세대일수록 행복감이 높은 것도 확인된다. 서명옥 의원실이 제공한 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의 연령 변수를 사용하여 연령별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를 평가해봤다.

대체로 청년기에 행복감이 높고 노년일수록 불행한 패턴이 일관되게 확인된다. 시기별 변화추이를 봐도 청년층의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 역시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청년의 삶을 비관적으로만 묘사하는 것도 청년층의 어두운 면을 과장하는 것일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입시, 취업 경쟁 등으로 사회적 스트레스와 경쟁 압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청년기는 인생 중 가장 건강하고 활력을 가진 시기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청년세대 절망론은 청년세대의 일면만을 주목한 결과일 수 있다.


근시안적 '위기 마케팅' 대신 정확·객관적 진단이 우선

위기감은 단기적 관심과 행동을 불러 일으키는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냉소과 체념, 비관주의와 철저한 이기주의적 분위기를 확산시켜 집단행동 딜레마를 심화시킨다.

정말 한국은 비관적인 사람들로 가득찬 나라일까. 객관적 데이터는 우려와 함께 건강하고 긍정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특히 젊은 세대의 행복감과 주관적 웰빙상태에서 부정적 단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청년의 삶’의 어두운 면에 대한 대책은 필요하겠지만, 이를 위한 수단으로 과도하게 어두운 면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 체념과 동반 무력감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적 비관주의는 '나도 피해자'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있는 행동보다 나도 수혜를 받아야 한다는 피해의식을 양산할 수 있다. 객관적이면서도 균형잡힌 진단이 중요한 때이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정치학 박사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