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건강 한입에… 나도 ‘채식지향주의자’[이우석의 푸드로지]
콩고기 스테이크·버섯 간짜장…
김밥·전·국수, 고기 없이도 조리
극단적 채식 아닌 육수는 ‘OK’
한국식 식단 ‘비덩주의’도 생겨
달걀 먹기도 하는 플렉시테리언
닭·오리·생선 허용 폴로페스코
벌꿀·젤라틴까지 거부하는 비건
갑자기 세상이 떠들썩하다.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아시아인 여성으로서도 처음 받는다. 난리가 났다. 전 세계가 온통 한강의 작품 얘기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그는 지난 2016년에 부커상(국제부문)도 받았다. 영어권의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어권의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에 꼽힐 만큼 권위 있는 상이다.
그에게 부커상을 안겨준 작품은 바로 연작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다. 제목과는 달리 ‘채식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해와 배려가 없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며 가부장의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으로 이어진 연작 내내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진 인물은 ‘영혜’다. 어느 날 꿈을 꾸고 난 후, 갑자기 육식을 중단한 영혜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강요와 폭력, 소외 등 일련의 사건이 순차적으로 얽혀가며 펼쳐진다. 작가는 ‘채식’을 빌려 세상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번 수상을 기회 삼아 그의 작품을 두루 읽어보면 좋을 일이다.
자, 이제 본론. 가을은 책 읽기 좋은 독서의 계절이면서 또한 식도락을 하기에 퍽 좋은 시즌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라지만 오곡백과는 사람도 살을 찌운다. 요즘 한국인들에게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만큼이나 채식 행위에 대한 관심도도 높다. 사전적 의미로 채식주의(菜食主義)는 육식성 식품을 제한하고 채소나 곡물, 과일 등 식물성 식품만을 섭취하는 생활양식이다.
채식을 지향하는 이들에겐 여러 이유가 있다. 주변의 식재료 수급 환경부터 종교, 사상 등이다. 물론 타고난 체질도 있다. 과거에도 육식을 금기시하는 불교에선 사찰음식 등으로 채식 위주 식단을 영위했다. 요즘엔 사상과 신념 등 의식적인 채식주의자가 많은 편이다. 국내 외식 및 식품업계에선 한국인 채식주의자(포괄적)가 약 1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그래서 가내 자급이 아닌 반드시 외식을 해야만 하는 현대의 대한민국 사회에선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다.
채식에도 섭취 음식의 종류나 행동 패턴에 따른 분류가 많다. 우선 플렉시테리언은 가장 약한(?) 단계의 채식 행동이다. 이름 뜻처럼 유동적이다. 기본적 채식을 하지만 고기를 좀 먹어도 큰일 날 것이 없다는 의미. 예를 들어 푸성귀와 곡물 위주의 비빔밥에 달걀노른자 하나 정도는 들어도 일부러 빼지 않는다는 이들이 이에 속한다.
폴로페스코는 닭이나 오리 등 가금류 섭취를 허용하는 폴로(polo)와 생선 등 어패류까지 먹는 페스코(pesco)의 합성어다. 두 종류를 다 먹으면 폴로페스코, 어느 하나만 허용하면 폴로 또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라 한다. 이들이 많은 육류 중에 왜 하필 가금류와 어패류만 허용하냐 하면 환경적 이유 때문이다. 소나 양, 돼지를 사육하는 과정에서 많은 메탄가스가 발생하며 이는 지구온난화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소고기 1㎏을 생산하는 데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같은 무게 기준으로 쌀의 12배가 넘는다. 밀에 비하면 30배에 이른다. 그래서 보통 폴로페스코의 식습관을 가진 이들 중에는 환경보호주의자가 많다.
동물성 육식을 어패류까지만 인정하는 페스코는 19세기 말 메이지유신까지 이어졌던 육식금지령 시절(AD 675∼1872) 일본인의 식습관과 유사하다. 하지만 사실 당시 일본에서도 암암리에 육식을 했다. 오리와 고래는 물갈퀴(지느러미)가 달려서 어류로 분류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과연 독특한 사고방식이다.
포유류의 젖과 가금류의 알을 식용하는 락토오보도 있다. 락토(lacto)는 젖, 즉 유제품을 이르며 오보(ovo)는 난류를 뜻하는 접두사에서 나왔다. 유제품과 달걀 등에서 질 좋은 동물성 단백질과 무기질을 섭취할 수 있는 까닭에 채식주의자 중 많은 이들이 이를 채택하고 있다. 살생을 통해 얻지 않아도 되니 불교에서도 유제품은 가리지 않고 먹는다. 마찬가지로 도축을 금하는 힌두교도들도 우유와 요거트, 버터 등 유제품은 상식한다. 다만 치즈의 경우, 소 내장에서 나온 응유효소(rennet)를 응고제로 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대의 락토 베지테리언들은 치즈의 성분표를 보고 펩신, 파파인 등 식물성 응고제를 쓴 것만을 찾아 먹는다.
비건(vegan)은 채식주의자를 가장 흔히 부르는 명칭이지만 사실 굉장히 어려운 길(?)이다. 각종 고기와 생선은 물론이며 유제품, 난류까지 먹지 않는다. 심지어 벌꿀, 젤라틴 같은 부산물까지 거부하는 극한 채식주의를 뜻한다. 이들은 콩과 코코넛 등에서 나오는 식물성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해조류와 균류를 통해 영양소를 섭취한다.
비건은 어려운 일이지만 채식주의자 중에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비건 중에서도 궁극적인 채식주의가 있다. 로비건(raw veganism), 즉 생채식주의라 부르는데 아예 식재료를 가열하지도 않고 생채소와 곡물을 말리거나 그대로 먹는다. 주로 종교적인 이유에서 생겨난 식사법이었지만 지금은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비건 중에서도 식재료 선정이 까다롭기로 제일인 프루테리언도 있다. 이름만 봐도 얼추 유추할 수 있듯 과일(견과류 포함)만을 먹는다. 과일이니 열을 가해 익히지도 않는다. 이들의 주장은 바로 “식물 역시 생명”이라는 것.
이처럼 채식의 방식도 다양하지만, 채식을 시작하는 계기도 마찬가지로 여러 이유가 있다. 종교적인 교리나 이상과 신념까지 주로 관념적인 것이 많다. 나타나는 현상은 비슷하지만 윤리적 이유나 동물권자에 비해 종교적 금기가 그나마 덜한 편이다. 실례로 불교나 힌두교에서의 식단은 극단적 채식주의라기보다는 락토 베지테리언에 가깝다. 성직자에 비해 신도들에게 권장되는 식습관은 그보다 개방적이다.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채식 요리 또한 발달했다.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원래 나물 등 채식 비율이 높은 한국 사회에도 곳곳에 전문 채식 요리 식당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굳이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채식을 원하는 이들과 함께 식당에 들러 맛있는 요리를 즐긴다. 요즘 채식은 맛 때문에 먹는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채식 위주 식단이 발달한 국가의 음식이 주류를 이뤘다. 종교적으로 채식 저변이 넓은 인도 요리가 그렇다. 커리(마살라)는 향신료의 조합으로만 이뤄지는데 여기다 주재료를 더하는 방식이라 거의 모든 메뉴에 채식을 선택할 수 있다. 인도나 부탄 등 몇몇 국가의 요리는 처음 시작하는 채식주의자에게도 문턱이 낮아 만족도가 높다.
역설적이게도 한식 역시 유럽권에는 채식 비중이 높은 요리로 소문이 났다. 사찰음식은 물론이며 몇 가지 재료만 빼면 비빔밥, 김밥, 전, 국수, 백반, 한정식 등 거의 전통 요리 대부분을 채식 식단으로 변형할 수 있다. 실제 1인당 채소 섭취량이 세계적으로 높은 국가라 채식이 생활 속에 배어있다는 얘기다.
지금 평범한 상차림의 구성을 봐도 그렇다. 고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조리할 수 있다. 단백질은 두부, 지방은 참기름, 밑국물과 식감은 표고버섯 등에서 얻을 수 있으니 한식의 주재료가 모두 대체 가능하다. 한식에서 주된 부식인 김치 역시 젓갈을 뺀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심지어 동치미와 메밀만 쓴 채식 냉면이나 칼국수, 버섯만 쓴 불고기도 가능하다. 다만 습식(국물)요리가 많은 독특한 한식의 구성상 밑국물 때문에 애를 먹는 경우가 있다. 건멸치나 고기 종류를 육수에 주로 쓰는 까닭에 한국식 채식주의의 한 형태인 이른바 ‘비덩주의’도 생겨났다.
비덩주의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굽거나 삶아 먹는 덩어리 고기를 제외하고 육수 정도는 먹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미 조리 과정에서 고기에서 우러난 육수를 쓴 상황에서 이를 빼달라 하기 어려우니 눈에 보이는 고기만 피하며 채식주의를 이어 나가겠다는 의미다. 결국 건강과 맛을 위해 채식을 ‘지향’한다는 것. 이제 우리 문화와 삶의 한 부분이 된 채식, 굳이 ‘자신은 채식주의가 아니’라지만 맛도 좋고 육식 위주 식단보다 식이요법에도 좋은 채식요리를 찾아 먹는 것도 일상의 즐거움 중 하나일 듯하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포리스트 키친 = 비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콩과 견과류, 곡물, 버섯, 채소 등 다채로운 재료를 활용해 상상 이상의 다양한 요리를 낸다. 기본적으로 프렌치와 이탈리안 요리법을 활용하고 한식과 중동의 기법도 곁들였다. 아스파라거스, 토마토, 애호박 등 제철 채소를 파스타와 리소토, 후무스 등 각 메뉴에 맞게 적절히 사용해 계절의 미각을 뽐낸다. 요리와 음료, 디저트까지 모두 철저히 비건식을 고집한다. 하나씩 맛볼 수 있는 코스도 낸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몰 6층.
◇황금콩밭 = 엄밀히 말해 채식 전문점은 아니다. 다만 미쉐린 가이드(빕구르망)에 7년 연속 선정된 두부 레스토랑으로 이름난 곳이다. 매일 국내산 콩을 갈아 직접 두부를 만든다.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부쳐낸 두부전이 아주 맛있다. 겉은 살짝 쫄깃하고 속은 크림처럼 부드럽다. 질 좋은 치즈를 구워낸 듯한 식감. 생두부도 따로 맛볼 수 있고 페스코 채식이라면 새우젓을 넣은 두부젓국도 괜찮다.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16길 9.
◇오세계향 = 비건음식 전문점이다. 콩고기로 만든 스테이크와 소시지, 돈가스 모양으로 튀겨낸 콩가스, 짜장면 등을 판다. 치킨 너깃 모양으로 콩고기를 튀겨낸 소이 치킨도 인기 메뉴. 스테이크는 함박스테이크 모양으로 구워낸 콩고기를 소스, 샐러드와 함께 제공한다. 기름기가 거의 없어 담백하면서도 특유의 씹는 맛은 살렸다. 콩가스는 어묵 맛이 나지만 생선이 든 것은 아니다. 정통 채식 레스토랑. 서울 종로구 인사동12길 14-5.
◇얼씨드 = 직접 재배한 유기농 국산 밀가루로 독일식 슈톨렌 등 빵을 구워 파는 집이다. 최근 신메뉴로 개발한 햄버거가 채식(락토) 메뉴다. 소고기 패티 대신 괴산군 특산물 표고버섯을 넣었다. 생채소와 토마토에 썩 잘 어울리는 2종류의 소스도 직접 개발했다. 원래 고기가 아닌데다 살짝 매콤한 고추맛 번도 있어 산뜻한 맛이 난다. 산막이옛길 가는 길, 들판에 있어 운치도 좋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명태재로외사1길 6.
◇히말라야 = 네팔식 커리 전문점. 다양한 현지 정통식 커리를 팔면서 베지테리언 메뉴를 따로 뒀다. 시금치를 갈아 넣은 팔락 파니르, 다양한 채소와 커리 3종을 묶어서 내는 베지 탈리 세트, 채소를 우려내 향신료를 가미한 믹스 베지터블 수프, 네팔식 토마토 수프 등이 주요 채식 메뉴다. 만두와 비슷한 사모사도 고구마와 쌀, 바나나, 잣, 코코넛 등 식물성 재료로만 채웠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 45-2.
◇사찰짜장 = 강남반점. 종교적(불교) 신념으로 채식을 내는 집. 청도 운문사 인근에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 불교 신자인지라 스님들을 위해 직접 개발한 짜장면, 짬뽕, 탕수이(버섯) 등을 판다. 오신채와 육류를 일절 쓰지 않고 표고버섯과 양파 등을 볶아내 간짜장 스타일 사찰 짜장면을 만들어 냈다. 일반 손님을 위해 고기 탕수육도 함께 판다. 경북 청도군 금천면 선암로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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