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엘팬알백] ③LG 트윈스 팀명, 줄무늬 유니폼, 쌍둥이 마스코트는 어떻게 탄생했나?
『스포츠전문화의 선두주자가 된 럭키금성은 MBC 청룡 구단 명칭을 자사팀의 ‘황소’라는 명칭에 걸맞게 가칭 ‘옥슨스’로 바꿔 그룹 이미지를 계승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12월 15일자 경향신문>
위 기사처럼 만약 럭키금성이 프로야구단 이름을 ‘옥슨(OXen)’으로 정했으면 어땠을까.
지금이야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웃음부터 터뜨릴지 모르지만, 당시엔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언론은 물론 많은 이들이 팀 명칭을 놓고 '황소'를 먼저 떠올렸다.
그러나 결국 ‘LG 트윈스’라는 파격적인 이름이 세상에 나오면서 ‘설’은 말 그대로 ‘설’로 끝나고 말았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이번 편에서는 럭키금성 프로야구단은 어떻게 팀 명칭을 ‘LG 트윈스’로 정하게 됐는지, 쌍둥이 마스코트와 줄무늬 유니폼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긴박했던 창단 과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 MBC 청룡을 인수했건만…프런트 구성 초비상
럭키금성이 MBC 청룡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프로야구단을 꾸리고 운영할 인력 확보였다. 당초 양 측이 합의한 인수 조건에는 백인천 감독을 비롯한 청룡 선수단 40여 명뿐만 아니라 프런트 직원 35명도 함께 받아들이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난관에 봉착했다. 기존 MBC 출신 구단 직원 35명 중 대다수가 문화방송(MBC) 원직 복귀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방송사가 훨씬 나았죠. 직원들이 MBC에 사표를 쓰고 럭키금성 스포츠단으로 이직하는 것보다 그냥 방송사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때 MBC 청룡에서 넘어 온 사람은 조광식 단장과 기록원 임승규 씨(2024년 정년퇴임) 등 몇 명밖에 없었어요. 우리야 그쪽(MBC)에서 와 주면 좋은데 사람이 없으니…”
이규홍 전 LG 트윈스 사장의 말이다. 이 전 사장은 1989년 당시엔 럭키금성 그룹 비서실 과장으로 구본무 부회장(훗날 LG그룹 3대 회장)을 측근에서 보좌한 인물이다. [엘팬알백] ②편에서 소개했듯이 그는 MBC가 프로야구단 청룡을 매각하기로 한 정보를 입수해 구 부회장에게 직접 보고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구본무 부회장께서 ‘사내 공모’를 하자고 아이디어를 내시더라고요. 그러면 중·고등학교 때 야구선수를 한 사람도 있을 거고, 야구를 좋아했던 사람도 있을 거고, 야구에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라면서요.”
그렇게 뽑은 인물 중엔 경남고에서 야구선수를 했던 주정규 운영부장도 있었고, 훗날 LG 트윈스 단장이 되는 최종준, 유성민, 김연중, 신교식 씨 등도 순차적으로 럭키금성 그룹 계열사에서 LG 트윈스로 넘어왔다.
당시 최종준 부장은 사내 공모가 아닌 추천 케이스였다. 평소 사내 야구동호회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1980년대 초반 럭키금성상사 미국 뉴욕 지사에서 7년 동안 근무를 하면서 메이저리그는 물론 미국 프로스포츠에 대해 해박한 지식도 갖추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1월쯤에 그룹 사내공모를 통해 프로야구단 이름을 공모도 하고, 유니폼 공모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는 관심을 갖고 보기는 했지만 제가 프로야구단으로 갈 줄은 몰랐죠. 그런데 1월 말쯤에 회사 임원께서 ‘빨리 와 보라’고 해서 갔더니 ‘구본무 부회장실에서 급히 찾는다.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부회장실에 갔더니 구본무 부회장님이 가운데 계셨고, 여러 임원들도 계셨어요.”
최종준 전 단장의 회상이다.
“여러 사람한테 추천을 받아서 불렀소. 혹시 스포츠단에 근무할 생각 있으세요?”
LG 트윈스 초대 구단주를 맡게 된 구본무 부회장은 최 부장에게 이같이 물었다.
구 부회장은 당시 사내 추천과 공모를 통해 프로야구단에 보낼 직원 후보를 추려 이렇게 직접 일일이 면접을 봤던 것이다.
최종준 부장은 면접 자리에서 “회사의 인사명령에 따라야 하겠지만 럭키금성상사에 빚(미국 뉴욕 지사 파견, 일본 연수 등)을 많이 지고 있습니다”라며 고민의 흔적을 내비쳤지만, 1990년 2월 1일자로 LG 트윈스 기획부장(수석부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규홍 전 사장(당시 비서실 과장)의 말에 따르면 구 부회장은 면접 당시 프로야구단에 지원한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꼭 전했다고 한다.
“스포츠단은 일반 사무직하고 달라요. 현장을 따라 다녀야 하고, 지방 출장도 많이 가야 하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근무를 해야 합니다. 본인의 희생도 많이 필요해요. 결혼한 사람들은 와이프 승인을 받고 오세요. 항상 저녁에 퇴근하던 사람이 야구 때문에 가정에 소홀해지면 분란의 원인이 되니까 허락 받은 사람만 뽑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합격자를 1990년 2월 1일자로 프로야구단에 발령을 내면서 프런트의 골격을 만들었다.
◆“팀 명칭부터 빨리 만듭시다”…사내공모 통해 정해진 ‘LG 트윈스’
12월 15일에 럭키금성이 MBC 청룡을 인수한다는 기사가 터지고, 세부조건을 조율한 뒤 1990년 1월 18일에 여의도 럭키금성빌딩 소강당에서 구승회 럭키금성스포츠단 상무(1990년 작고)와 이건영 MBC청룡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수 조인식이 열렸다.
1990년 정규시즌 개막은 4월 7일. 시범경기는 이에 앞서 3월 10일부터 예정돼 있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팀 이름부터 짓는 것이 급선무였다. 조인식 직후 럭키금성 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프로야구단 명칭 사내 공모를 진행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이런저런 팀 명칭 후보가 하마평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언론사도 이와 관련한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문의 경향신문 기사처럼 외부에서는 ‘옥슨스’가 유력한 팀 명칭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기사에는 옥슨스(Oxens)로 보도됐지만 황소는 영어로 Ox이며, 복수는 Oxen이다.>
경향신문뿐만 아니다. 연합뉴스도 1990년 1월 20일자로 다음과 같은 보도를 했다.
『럭키금성은 오는 (1월) 23일 열릴 그룹 사장단·회장단 회의에서 구단 명칭과 심벌, 로고, 유니폼을 확정할 예정이며 구단 명칭은 옥슨스, 휘닉스(피닉스), 트윈스, 버팔로 등 6~7개를 놓고 검토 중이다.』
연합뉴스의 이 기사에서도 ‘옥슨스’가 맨 앞에 등장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엘팬알백] ②편에서 소개했듯이 럭키금성 그룹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참가하지 못한 것을 통탄해 하면서 1983년 11월에 국내 최초로 주식회사 형태의 종합 스포츠클럽인 ‘럭키금성스포츠’를 설립했다. 곧바로 그해 12월에 프로축구 ‘럭키금성 황소축구단’, 민속씨름 ‘럭키금성 황소씨름단’을 연이어 창단했다.
당시 럭키금성 그룹 구자경 회장이 황소 이미지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황소처럼 우직하게 기업을 경영하겠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축구단과 씨름단 이름도 순우리말로 ‘황소’였기 때문에 프로야구단도 자연스럽게 황소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내 공모 결과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이름은 ‘LG 트윈스(LG Twins)’였다.
『럭키금성은 22일 프로야구단 명칭을 LG 트윈스로 확정했다. LG 트윈스의 LG는 ‘Lucky Goldstar’의 머리글자로 지난 1월 18일 MBC 청룡 인수 조인식을 마친 후 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공모한 결과 이같이 결정됐다. 한편 럭키금성은 팀명과 관련한 로고 및 마스코트도 곧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1990년 1월 22일자 매일경제>
위 기사처럼 ‘LG 트윈스’라는 이름은 불과 며칠 만에 탄생했다. 이에 대해 이규홍 전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룡을 인수했다고 청룡을 그대로 쓸 수도 없고, 또 영어로 ‘LG 드래건스’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새로운 이름을 쓰는 게 낫잖아요. 그래서 당시 사내 공모를 했죠. 전국에 있는 사업장에서 갖가지 아이디어들이 다 올라왔어요. 그때 올라온 명칭은 많았죠. 황소도 나오고…. 그런데 공모 결과 ‘LG 트윈스’가 가장 많더라고요. 이유는 딱 그거 하나였어요. 여의도에 ‘쌍둥이 빌딩’이 그룹 상징물처럼 있는데 영어로는 ‘트윈 타워’라고 하니 다들 트윈스를 많이 떠올려나 봐요.”
‘공모 결과를 토대로 몇 가지 명칭을 추려서 구본무 부회장께 보고를 올리고, 구 부회장께서 그중에 골라서 낙점한 것이냐’는 질문에 이규홍 전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당시 구 부회장님은 전혀 관여를 하지 않으셨어요. 그냥 공모 결과 가장 많이 나온 명칭이 ‘LG 트윈스’였고, 부회장님도 좋다고 하신 거죠. 당시 ‘럭키금성’그룹명이 너무 길어 부회장님도 평소 고민이 많으셨거든요. 해외에 나가면 긴 영어 이름을 써야하니까 더 그랬죠. 간판을 달아도 ‘럭키 골드스타(Lucky Goldstar)’로 알파벳 13글자로 만들어야 하니 너무 길고 말이죠. 그런데 사내 임직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럭키(Lucky)’와 ‘골드스타(Goldsta)’의 머리글자를 따서 ‘LG 트윈스’를 가장 많이 생각한 것 같습니다.
◆‘LG 트윈스’성공으로 5년 후 그룹이름도 ‘LG’로 변경
이규홍 사장의 말처럼 현 ‘LG 그룹’의 ‘LG’는 프로야구단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다. LG 트윈스가 1990년 MBC 청룡 인수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바꿨다. 우선 럭키금성 황소축구단도 1991년부터 ‘LG 치타스’로 변경됐다.
이에 그치지 않았다. LG 트윈스가 1994년 신바람 야구로 다시 한번 우승하면서 성적과 흥행몰이에 성공하자 럭키금성 그룹은 마침내 1995년부터 그룹명을 ‘LG’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그룹명을 바꾸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잖아요. ‘LG로 변경된다’고 얼마나 많은 광고를 해야 일반인들의 인식이 바뀌겠습니까. 그런데 LG 트윈스가 그 역할을 대신한 거죠. 신문과 방송에서 계속 ‘LG’라고 보도하고, 팬들도 계속 ‘LG’라 부르고. 그러면서 광고도 없이 자연스럽게 럭키금성이 LG로 인식된 거죠. 당시 세계적으로도 기업 이름을 약자로 부르는 트렌드가 만들어졌어요. 자동차 업체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가 ‘GM’으로 바뀌고 말이죠. 그러면서 럭키금성도 1995년부터 자연스럽게 LG로 바뀌게 된 거죠.”
이규홍 전 사장의 설명이다.
LG는 야구단 하나가 모그룹 명칭까지 바꾸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특별한 사례를 만들었다.
◆줄무늬 유니폼과 쌍둥이 마스코트 탄생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3월) 6일 팀로고와 마스코트 및 유니폼을 확정했다. 이날 새로 선보인 마스코트는 야구복장을 한 쌍둥이 어린이 로보트가 타격 자세를 취하는 모습으로, 이는 다른 구단이 동물을 채택한 것과는 달리 인간을 존중하는 그룹정신을 표현했다. 또한 유니폼은 검은색과 검은줄을 조합, 색상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중후한 그라운드의 신사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1990년 3월 6일자 경향신문>
‘LG 트윈스’라는 팀 명칭이 정해지면서 후속 작업들이 속속 이어졌다.
앞서 설명한 대로 2월 1일에 1차적으로 프로야구단 프런트 직원들을 발령 냈는데 시범경기(3월 10일 개막)까지는 불과 한 달여의 시간밖에 없었다.
이규홍 전 사장은 당시 구 본무 부회장과 LG 트윈스 구단 가교 역할을 했던 비서실 실무 과장으로서 긴박했던 그 상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회장님께서 매주 회의를 주재하시면서 야구단을 챙기셨어요. 그러면서 비용이 드는 문제는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셨고요.”
LG 트윈스 선수단은 일단 급하게 제작한 흰색과 회색 두 종류의 임시 유니폼을 입고 시즌 준비를 위해 건국대 야구장과 대만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었다. 가슴에는 ‘럭키금성’네 글자가 새겨졌고, 모자에는 ’LG’가 대문짝만 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사이 LG 구단은 새로운 유니폼과 모자를 제작하기 위해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 전 구단 유니폼을 샘플로 비교해 가며 LG 트윈스 고유의 유니폼을 개발했다. 줄무늬 유니폼이 탄생한 것은 구본무 구단주의 의중이 많이 반영됐다.
“회장님은 미국에서 6년간 유학을 하셔서 메이저리그와 NBA 등 미국 스포츠에 조예가 깊으셨어요. 미국 프로 스포츠를 많이 접했으니까 아이디어도 상당히 많으셨는데 ‘기왕 프로야구를 하려면 앞으로 선진국 형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라면서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인 뉴욕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줄무늬) 유니폼을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양키스 유니폼을 모티브로 삼게 됐죠.”
곧바로 그룹계열사인 반도패션에 의뢰해 유니폼 제작을 준비했다.
팀 로고와 마스코트를 만드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이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를 만들어 유명해진 디자인파크의 김현 대표에게 맡겼다. 이에 대해서는 최종준 당시 기획부장이 실무를 담당했다.
“3월 15일에 창단식을 한다는데 시간이 촉박하잖아요. 수소문을 해서 대학로에 있는 디자인파크를 찾아갔죠. 구단 로고와 쌍둥이 마스코트를 무조건 3월초까지는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해서 완성이 됐는데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만들어졌던 거죠. 어쩌면 기적이었죠. 그런데 반응이 좋았어요.”
최종준 전 단장은 갑자기 긴박했던 35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호흡이 거칠어지고 말이 빨라졌다.
“부랴부랴 구단 CI 만들고, 마스코트 만들고, 온갖 로고며 심벌마크도 다 만들고, 유니폼도 제작하고, 버스 디자인도 새로 하고…. 그래 가지고 회장님께 보고 하면 ‘OK, OK’ 됐습니다. 기존에 손발을 맞춰 온 구단 프런트 직원들이 해도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이게 쉽지 않은데, 여기저기에서 온 직원들이 모여서 합심해서 다 해냈어요.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해냈나 모르겠어요.”
이전까지 존재했던 KBO리그 모든 팀은 마스코트가 동물 아니면 사람이었다.
1982년부터 창단식 순서대로 보면 OB 베어스(곰), MBC 청룡(용), 해태 타이거즈(호랑이), 삼성 라이온즈(사자)는 동물을, 삼미 슈퍼스타즈(슈퍼맨)와 롯데 자이언츠(거인)는 사람을 마스코트로 삼았다.
1985년 창단해 1986년부터 KBO리그에 뛰어든 빙그레 이글스(독수리)는 물론 삼미를 인수한 청보 핀토스(조랑말)와 청보를 인수한 태평양 돌핀스(돌고래)도 마스코트가 동물이었다.
그런데 1990년 쌍둥이 어린이 형태의 로봇 마스코트가 나타나자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LG 트윈스는 럭키금성 그룹의 주력상품인 전자제품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파격적인 로봇 마스코트를 세상에 내보인 것이었다. LG 트윈스라는 팀명과 마스코트, 로고는 첫 인상부터 강렬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로 팬들에게 어필했다.
여기에 1990년 LG 트윈스의 캐치프레이즈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힘 있는 야구! 깨끗한 야구!’였다.
그리고 오리지널 등장음악과 “L~G 트윈~스! 서울의 자존심 LG 트윈스, 트윈스, 트윈스…’라는 경기개시 시그널 음악도 속속 만들어졌다. <위에 링크된 영상을 클릭하면 음악이 나옵니다>
1990년 LG 트윈스의 출발과 함께 시작해 벌써 35년 세월이 흘렀다. 이 응원곡들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지금까지도 팬들을 전율케 만드는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엘팬알백] ④편에서 계속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