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도 문제, 내려도 문제…대한민국 뇌관 부상한 ‘부동산 딜레마’

결혼·출산 기피 등 집값폭등 부작용 심각, 시세 하락 땐 가계경제 휘청 ‘심각한 딜레마’
[사진=뉴시스]

한민국이 ‘부동산 딜레마’에 빠졌다. 천정부지 치솟는 집값에 결혼·출산 기피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시세 안정화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부동산 불패’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과도한 쏠림 현상 때문이다. 허리띠를 졸라 매고 노후자금 등의 여윳돈까지 전부 부동산에 투자한 가계가 급증한 상황에서 부동산 시세가 하락할 경우 가계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가계 여윳돈에 은행 빚까지 내서 부동산 ‘올인’…꽁꽁 닫은 지갑에 내수시장 찬바람

부동산 투자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가계 여윳돈에 대출까지 끌어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일반화된 지 오래다. 심지어 경기불황 등의 여파로 소득이 줄었음에도 부동산 투자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2분기 중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올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여유자금은 41조2000억원으로 직전 분기 77조6000억원보다 36조4000억원 감소했다.

여유자금이 감소했는데도 가계 대출액은 오히려 늘었다. 자금조달은 1분기 1조4000억원에서 2분기에는 14조6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주택자금 대출이 급증했다. 1분기 12조4000억원을 기록한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2분기 16조원으로 더욱 늘었다. 여윳돈에 빚까지 내서 부동산을 매입한 가계가 늘어난 영향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주택매매 거래량은 1분기 13만1000호에서 2분기 17만1000호로 확대됐다.

▲ 서울 마포구 소재 한 부동산의 모습. [사진=뉴시스]

부동산 투자로 여윳돈이 줄고 이자 부담이 커진 가계의 생존법은 허리띠 졸라매기였다. 가계소비는 내수경기와 직결돼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상반기 중 국내 지급결제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용·체크카드 이용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에 그쳤다. 2022년 12.4%, 2023년 8.4% 등에 비하면 증가세가 뚝 떨어진 것이다. 신용카드만 한정했을 때도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 상반기(8.8%)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가계소비 축소로 인한 내수경기 침체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내수경기의 바로미터인 소매유통업체(500곳)를 대상으로 4분기 소매유통업 RBSI를 조사한 결과, 전망치가 80에 불과했다. RBSI는 유통기업의 경기 판단과 전망을 조사해 지수화한 것으로 100 이상이면 경기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100이하면 그 반대다. 소매유통업체들은 주요 현안 및 애로사항으로 소비심리 회복지연(33.4%), 비용 부담(17.8%), 시장경쟁 심화(14.0%) 등을 꼽았다.

부동산 쏠림으로 인한 부작용은 경제 분야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부동산 쏠림으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다 보니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가 만 25~4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출산·양육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7.6%가 ‘집값만 마련된다면 결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집값 때문에 결혼을 부담스러워 하는 청년이 10명 중 6명에 달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갑작스런 부동산 시세 하락은 또 다른 부작용 양산…자연스런 연착륙 시도가 관건”

부동산 업계 및 관련 전문가 등에 따르면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쏠림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지만 그렇다고 시세 안정에만 집중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딜레마(Dilemma)’ 또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가깝다. 시세 상승을 염두한 투자금이 대거 유입된 상황에서 시세가 내려가면 가계경제가 크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투자금 중 상당수가 빚이라는 점에서 가계경제를 넘어 나라경제 전체가 위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서울에 위치한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사진=뉴시스]

서울 서초구 소재 H부동산 관계자는 “만약 지금 또 다시 집값이 떨어진다면 집을 팔아도 대출원금을 못 갚는 가구가 대거 등장하게 된다”며 “결국 가지고 있던 현금만 날리고 빚만 남게 되는 것인데 일정한 소득이 없는 고령층의 경우엔 결국 빚 갚을 능력이 없어 그 여파가 은행 등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전세가기도 그렇고 올랐던 집값이 떨어지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경기도 수원시 소재 L부동산 관계자는 “참 어려운 상황이다”며 “부동산을 매입한 가계의 상황은 현금 자산에 빚을 더해 현물로 바꿔놓은 것인데 여기서 현물 가치가 떨어지면 결국은 현금 자산은 사라지고 빚만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빚이 쌓이면 결국 빚을 갚기 위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맬 것이고 자연스레 소비위축, 내수침체 등의 부작용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며 “집값이 올라도 문제고 떨어져도 문제인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속도감 있는 ‘특단의 대책’보단 가계 빚과 집값 하락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면서 서서히 가격 하락을 유도하는 식의 연착륙 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이미 빚내서 집을 산 수요자들이 많은 만큼 갑작스런 집값 하락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공급확대 등 집값 하락 신호를 먼저 보내 충분히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끔 시간적 여유를 부여하는 식으로 자연스러운 연착륙을 노리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