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도 구매한 차" 에쿠스 보다 잘 팔렸던 쌍용 고급 세단
[보여주기 싫은 졸업 앨범]
'1997년' 탄식이 절로 나오는 시기죠. 굴지의 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무너져 내렸던 IMF 외환위기의 파도는 쌍용차도 집어삼켰습니다. 모기업 쌍용 그룹은 쌍용차를 살리기 위해 회사의 재산까지 팔아가면서 막아보려 했지만 무려 3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부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매각 절차를 진행하게 됩니다.
기술 제휴로 시작해 '동아시아 전략 기지'로 쌍용차를 활용할 계획이 있었던 벤츠와 열심히 자동차 사업을 준비하고 있던 삼성 그룹에 매각을 먼저 제의했지만 손사래 쳤고, 이후 대우 그룹이 등장했습니다. 쌍용 그룹과 부채를 반반 나눠 부담하고, 채권단으로부터 '쌍용차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조건'으로 인수하게 됩니다.
아무리 반으로 나눈다고 해도 어마무시한 빚더미였지만, 단순하게 보면 대우자동차에게 꼭 필요했던 SUV와 고급 세단 라인업이 충족되는 인수였습니다. 덕분에 대우차가 준비하고 있던 전륜구동 플래그십 세단 '쉬라츠'는 결국 콘셉트카와 프로토타입만 남겨놓은 채 개발이 취소됐죠. 이후 대우 계열 대형차들이 국내 시장에서 줄줄이 실패한 게 끝내 빛을 보지 못한 '쉬라츠의 저주'라는 흉흉한 소문이 자동차 매니아들 사이에 떠돌기도 했습니다.
굳이 멀리 안 가도 망한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요. 아무튼 체어맨은 얼떨결에 '대우차의 플래그십'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디자인을 바꿀 수 없으니 급한 대로 대우자동차의 로고와 패밀리룩이었던 3분할 그릴을 끼웠고, 대우차 영업소에서 레간자와 함께 팔렸죠.
대우 로고를 형상화한 3분할 그릴은 대우차 안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정도로 독특한 인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쌍용차 디자인에 녹아들지 않았고, 보여주기 싫은 졸업 앨범처럼 체어맨의 흑역사로 남았습니다. 진짜 코만 보였어요. 하지만 IMF의 충격은 예상보다 강력했고, 거대했던 대우 그룹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쌍용 그룹 역시 그 반절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그룹 전체가 날아가 버렸죠. 대우 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쌍용의 야심작이었던 체어맨은 대우에게도 애물단지 신세가 됐고, 쌍용차도 다시금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후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가면서 대우자동차와 다시금 분리된 쌍용차는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억지로 욱여넣었던 대우차의 3분할 그릴과 엠블럼을 1년 만에 벗게 됩니다. 다시금 벤츠와 비슷한 스타일로 꾸며져 이전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왔죠.
여담으로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했을 당시 공식 의전차량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죠. 수교 이래 처음 진행된 국빈 초청 행사였기 때문에 여왕이 행차하는 곳마다 이목이 쏠렸고, 의전차량인 체어맨 리무진 역시 자연스럽게 노출됐습니다. '여왕의 차'라는 명예로운 별명과 함께 상당한 마케팅 효과가 따라왔죠.
이 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현대차는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대우 김우중 회장에게 특혜를 준 것이라며 꼬투리를 잡았고, 남편인 '에딘버러 공작'은 다이너스티 리무진을 타는 것으로 외교부와 합의를 봐 일단락됐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죠.
[뉴 체어맨│2003-2007]
아이러니하게도 워크아웃 상태였던 2000년 초, 쌍용차의 황금기가 펼쳐졌습니다. IMF의 칼바람이 서서히 잦아들고, IT 기업들이 새로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내수 시장이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쌍용차는 앞서 대우 시절 개발했던 고급 SUV '렉스턴'을 출시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2003년, 체어맨을 전방위 페이스리프트 한 '뉴 체어맨'을 선보여 에쿠스와 정면으로 맞붙었습니다. 전작과 비교해 인상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이 차를 '풀 체인지'로 알고 계신 분도 많았지만, 외관부터 실내까지 모두 바꾼 높은 수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런 차가 꽤 있었죠. 확 달라진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역시 앞모습이었습니다. 석굴암의 단면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는 헤드램프가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벤츠 스타일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중심으로 양 끝에 자리한 반달 모양의 헤드램프는 날렵함보다는 클래식함과 무게감에 초점을 맞춘 모양새였습니다.
LED 방향지시등을 넣어 고급스러움도 챙겼죠. 또, 좁은 접폭을 보완하기 위함인지 램프류를 최대한 끝단에 배치하고, 각을 세워 두툼하게 두른 몰딩을 더 해 실제 수치에 비해 폭이 넓어 보였어요. 독특하긴 했지만, 확실히 보편적이지 않은 디자인이었기에 전작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원했던 일부 소비자들은 이 '초롱초롱한 인상'에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만큼 측면의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무려 100mm 가까이 늘린 전장과 멋들어진 후륜구동 비율, 번쩍이는 크롬 휠로 존재감은 여전했습니다. 후면도 크기를 줄인 LED 테일램프로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죠. 특히 번호판 위치를 수정해 마치 '잘라낸 묵'처럼 절도 있게 만든 트렁크로 무게감을 더한 것은 다분히 에쿠스를 의식한 모습이었어요.
전체적으로 전작의 '벤츠다움'은 많이 희석되어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고급 대형 세단 특유의 보수적인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세련미를 더한 나름의 매력이 돋보였습니다. 어둑한 저녁, 아치 형상의 미등을 보면 황금빛 조명이 익숙한 석굴암이 스쳐 지나가곤 했어요.
[리모델링만 해도 충분해]
실내 역시 큰 폭으로 달라졌습니다. 레이아웃은 그대로였지만, 장미목의 밝은 우드 그레인을 월넛의 어두운 톤으로 변경해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강조했고, 탑승객의 시선이 오래 머무는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디자인을 대폭 수정해 변화가 확실하게 체감됐죠. 특히 계기판이 독특했는데요. 아날로그 방식과 단색 스크린을 활용한 디지털 속도계 두 가지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었고, 평균 속도나 후방 장애물 알림 등 운행에 필요한 정보를 그래픽으로 전달했죠.
센터페시아는 불필요한 공간을 차지했던 아날로그시계를 송풍구 사이에 심어 깔끔하게 정리했고, 더욱 커진 6.5인치 DVD 내비게이션과 전작의 지적을 수용해 별도의 화면을 마련한 공조 장치로 직관성을 높였어요.
다만 스티어링 휠은 구형의 것을 그대로 쓰면서 직관성이 떨어졌던 하단 리모컨이 그대로 따라왔습니다. 앞, 뒤 암레스트에는 BMW의 'i-Drive'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모방한 재떨이를 마련했습니다. 여전히 럭셔리한 뒷좌석 공간은 전작의 편의 사양을 업그레이드해 새것의 느낌을 줬고, 전용 테이블과 마사지 기능, 허벅지 받침을 더해 플래그십에 기대하는 고급스러움을 갖췄죠.
파워트레인은 전작이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얹었지만, 여전히 현역이었고, 4기통 2.3L 모델의 4단 자동 변속기를 5단으로 변경해 상품성을 높였습니다. 매력적인 회전 질감의 직렬 6기통 엔진과 푹신한 승차감도 그대로 유지했고, 그로 인해 앞-뒤, 좌-우로 출렁이는 차체 역시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무엇보다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단종되면서 국산 대형 세단 중 유일하게 뒷바퀴를 굴리는 모델이었고, 체어맨의 독보적인 세일즈 포인트가 됐죠. 이것 하나만으로 에쿠스 대신 체어맨을 선택하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2005년에는 각종 첨단 사양을 추가한 연식 변경 모델 체어맨 '뉴테크'를 출시했습니다. 새로운 멀티 스포크 휠을 추가해 세련미를 더했고,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EPB)와 오토 홀드, 전동 트렁크, 전 좌석 열선 및 통풍 시트 등 플래그십이라는 자리에 걸맞게 15년이 훌쩍 지난 지금 기준으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고급 사양으로 무장했습니다.
KTF와 협업해 실시간 교통 정보와 체어맨 오너들에게는 유용할 골프 정보, 휴대폰을 이용해 도어 잠금이나 차량 위치 확인 등을 할 수 있는 텔레매틱스 시스템 '에버웨이'를 선보여 현대·기아차의 모젠에 대응했죠.
여기에 차고 조절이 가능한 전자 제어식 에어 서스펜션을 새롭게 적용해 구렁이 담을 넘어 '구름 위를 떠가는 듯한' 승차감을 선사하기도 했어요. 2006년에는 판매량이 저조한 보급형 2.3L 4기통 모델을 정리하고, 기존 3.2L 엔진을 개량해 배기량을 높이고 출력을 개선한 최상위 모델 'CM700' 라인업을 추가했습니다. 부드러웠던 체어맨 엠블럼에 엣지를 넣어 힘 있게 바꿨고, 견고한 디자인의 17인치 크롬 휠과 당시에는 보기 드물었던 차선 이탈 경고 장치까지 추가해 첨단 사양만큼은 확실히 경쟁차를 능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가격이 너무 높아진 게 흠이었습니다. 쌍용차에서는 상징성을 위한 모델로 생각했는지, 동일한 옵션으로 채워진 3.2L 모델과의 가격 차이가 500만 원이 넘었습니다. 엔진 값 하나로 치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가격 상승이었고, 단순한 고가 마케팅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죠.
한편, 놀랍게도 북한에 뉴 체어맨이 판매된 적이 있었는데요. 물론 '쌍용 체어맨'으로 정식 출시된 것은 아니고, 통일교의 투자로 세워진 남북 합작 자동차 회사 '평화자동차'에서 반제품 형태로 수입한 뒤 북한 현지 공장에서 조립해 2007년 '준마'라는 이름으로 팔았습니다. 북한의 열악한 경제 사정과 은행 환경에 따라 여러 고급 옵션이 빠진 염가형 모델이었고, 자동 변속기 모델만 판매했던 체어맨과 달리 수동 변속기가 들어갔다고 하네요. 벤츠에 환장한 그곳인 만큼 나름 벤츠 감성을 품은 이 체어맨도 좋아했겠죠?
[묻고 더블유로 가]
'뉴 체어맨'은 다행스럽게도 비싼 돈 들여 개발한 플래그십 모델의 수명을 성공적으로 연장했습니다. 벤츠의 후광으로 시작했지만, 그저 저렴한 벤츠라는 한계에 부딪쳤던 과거를 발판 삼아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고, 다행히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국산 고급차 '체어맨' 브랜드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모델이었죠. 리모진 모델에 대한 수요도 여전했습니다. 2005년, 서울 모터쇼에서 호화롭게 꾸민 스트레치드 리무진 쇼카를 전시했던 게 갑자기 생각나네요.
한동안 에쿠스를 앞지르는 성과를 기록하기도 하면서 쌍용에도 드디어 희망이 찾아오나 싶었지만,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지분이 넘어가면서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됐고, 상황은 희망과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그들은 그나마 쌍용이 어렵게 이뤄 놓은 결과물을 탐내기에 급급했고, 그사이 급변하는 신차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전문 분야인 SUV 라인업까지 망가져 버렸죠. 물론 '못난이 삼 형제'를 보면 오로지 상하이자동차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요.
자동차 업계에서 성공적인 M&A 사례로 꼽히는 지리 자동차의 볼보 인수를 떠올리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결과였죠. 하지만 어려운 와중에도 체어맨에 대한 쌍용의 애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세 명 이상 모이면 화투판이 벌어지고, 교실에선 판치기가, 문방구는 카지노로 만들어 버리는 '도박의 민족'답게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친 쌍용은 판을 더욱 키워 체어맨의 풀 체인지 모델을 에쿠스를 찍어 누를 만큼 더 크고 호화로운 모델로 준비합니다. 한편, 2세대 체어맨이 등장한다는 소식에 은퇴를 준비하던 뉴 체어맨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하게 되는데...
-멜론머스크의 이용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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