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29살 청년사업가의 그을린 사랑 "폐방화복으로 소방관을 구하다"
폐방화복으로 가방 만들어, 암투병 소방관 구해
방화복에 패션을 담아.. 더 예쁘게, 용기있게
생명 구한 흔적에 열광..MZ소비자와 핏 맞아
사업은 진정성.. 소방관과 소비자 동료애로 만나

재난은 예고 없이 온다. 사이렌을 울리며 거리를 질주하는 소방차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소방관들은 얼마나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들일까.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초인적인 공감력에 소방관들의 가슴뼈는 후진을 모른다. 산소통을 메고 2인 1조가 되어, 주저 없이 불 속으로 뛰어든다. 한 명은 관창을 잡고 한 명은 호스를 당겨, 연기와 화기로 보이지 않는 앞을 더듬어 가며.
그런 소방관들이 불길의 뜨거움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유해 물질로 인한 암과 희귀병이다. 수명을 다한 방화복이 버려지듯, 병에 걸린 소방관들도 버려진다.
그리고 여기 그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29살 청년 사업가가 있다. 내구연한이 다한 폐방화복으로 재생 가방을 만들어, 암 투병 소방관들을 돕는 사회적 기업 119레오의 창업자 이승우.
그을리고 구멍 난 폐방화복을 가져다 씻고 분해해서 만든 가방에 MZ 소비자가 움직였다. 산소통, 마스크 모양을 본뜬 업사이클링 백팩, 슬링백, 메신저백… 소방호스로 만든 동전 지갑은 용기의 에너지를 전염시켰다. 7년 간 17톤의 방화복이 재생됐고, 기부금으로 암투병 중인 소방관 13명을 구했다. 별세한 분들을 따로 기억하기 위해 전시회와 토크쇼를 열었다.
방염 방화 기능을 갖춘 아라미드 소재의 119레오 가방은 지금 무신사, 29cm, 11번가, 카카오 선물하기 등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도 구함을 받을 것이다.”
이토록 성스러운 호객을 펼치는 사회적 기업가 이승우를 만났다.
비 오는 가을 아침, 바깥 공기는 우중충했지만 10평 남짓한 대방동 119레오 플래그십 스토어는 선한 에너지로 눈자위가 시원했다. 붉은 배관이 드러난 높은 천장 아래 소방호스로 만든 컬러풀한 스툴, 믿음직한 백팩과 그을린 폐방화복 벽면이 안전가옥같은 느낌을 준다.
이승우는 왼쪽 가슴에 붉은 심박동 사인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심박동 한 번이 소중해요. 약해도 그 한 번이 돌아오면, 병원에서 살릴 수 있다고, 소방관들은 믿고 있죠.”
‘소방관의 용기를 나의 용기로’ 순환시킨 방화복 업사이클링 브랜드 119레오는 2016년에 프로젝트를 시작해 2018년에 본격적인 법인이 됐다. REO는 Rescue Each Other의 첫 글자를 딴 이름이다.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나요?
“(미소 지으며)저희가 매장에서 가방에 자수를 새겨드려요. 보통은 생일이나 이름을 원하는데, 그분은 구매 날짜를 새겨달라더라고요. 119레오를 처음 구매한 날을 기억하고 싶다고.”

-MZ의 반응이 남다르군요! 시대 정신과 핏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죠. MZ 소비자들이 있어서 저희가 있어요. 소비 스타일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그 흐름과 저희 사업이 우연히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오프라인 매장을 연 것도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라고 했다.
“종종 “가방에 검댕이 묻어서 왔어요!”라는 피드백이 와요. 저는 그걸 생명을 구한 흔적이라고 해요. ‘더러워도 그냥 써’가 아니라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하고 선택권을 주는 거죠. 깨끗한 것과 흔적이 남은 것. 어느 쪽이든 그 자체로 용기의 빈티지고 환경의 무늬잖아요.”
-혹 화재의 그을음이 남아있도록 의도합니까?
“아니요. 1년에 1만 벌의 소방복이 버려져요. 내구연한 3년이 다 된 폐방화복을 일괄 세탁해서 쓰는데, 작업을 거쳐도 그을음과 구멍을 다 없앨 수는 없어요. 현장의 흔적을 그대로 제품에 남기면 그건 ‘아트의 영역’인데, 저희가 아직 그걸 감당할 수준은 아니고요(웃음).”
방화복 다섯 벌을 빨고 분해하고 조립해야 가방 두 개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7년 동안 17톤의 폐방화복이 가방으로 재생됐고, 40톤의 이산화탄소배출이 절감됐다. 그렇게 밤낮으로 애써 번 영업 이익의 50%를 암 투병 소방관에게 기부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119레오의 생명 자본은 자연스럽게 암과 싸우는 소방관에게 흘러들어갔다.
지역 소방본부는 폐방화복을 주고, 그는 땟물과 잿물을 털어 환골탈태한 재생 가방을 팔아 수익을 되돌려준다는 슬기로운 순환! 그뿐인가. 사이사이 지역자활센터에서 세탁과 임가공을 해결해 사회적 약자의 고용이 더해지고, 물류 등의 환경 비용을 줄이는 센스까지(지역 거점에서 분해된 폐방화복은 부피가 1/10로 줄어든다고).
Rescue, Remember, Rebirth. 나는 이승우가 제시한 이 세 가지 R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Rescue, Remember, Rebirth. 지금은 이중 어떤 것에 몰두하고 있습니까?
“Rescue(구조)는 소방관, Remember(기억)는 고객들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 저희는 Rebirth(재생)를 더 열심히 연구하고 있어요.”

-이 공정을 누구에게 배웠나요?
“(1초의 머뭇거림 없이)동대문 시장 상인분들께요. 제가 폐방화복 드리고 가방 샘플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거절하지 않고 거래 터주신 분들이죠. 지금도 백팩, 슬링백, 에코백, 메신저백 종류에 따라 인천, 신설동, 영등포에서 생산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쪽 OEM 사장님들이 업사이클링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으세요.
특히 인천 사장님은 저보다 열정이 더 대단하세요. 폐방화복을 해체해서 드리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기다리다 못 참으시고 “직접 뜯겠다”고 나서시고…, 심지어 방화복의 버클이나 지퍼까지 그대로 살려서 제품을 만들기도 했죠.”
-소방복의 뼈대를 살린 진짜 재생이군요!
“네. 그런데 2018년에는 ‘이걸 어떻게 쓰라는 거냐?’는 혹평이 많았어요. 요즘엔 또 분위기가 달라져서 그런 ‘리얼한 흔적’을 더 원하기도 하고요. 후에 여력이 되면 소방관 한 분 한 분의 스토리가 제품이 되는, 그런 작업을 꼭 하고 싶어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소방관 120명을 만나 인터뷰부터 했다고요.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나요?
“관심사가 처음부터 소방관분들은 아니었어요. 제가 사회 문제를 비즈니스로 푼다는 목적을 가진 건국대 동아리 인액터스 출신인데요. 첫 번째는 평창 물굽이마을을 살리겠다고 농산물 온라인 비즈니스를 하다 쫄딱 망했어요. 두 번째는 한강 하류 행주대교 어부들을 돕겠다고 어획 자원 비즈니스를 하다 또 쫄딱 망했죠.
그 과정에서 느낀 바가 컸어요. ‘대학생 프로젝트는 말만 많고 전문성이 없구나. 그분들께 전문성이 있는 척만 하다가 실질적인 문제 해결도 못 하고 민폐만 끼쳤구나.’ 다음에 무언가를 할 때는 전문성이 없는 대신 최대한 많은 분을 만나 정보를 모으자고요(웃음).”
그렇게 간절함이 꼬리를 물어 한 달 만에 전국의 120명 소방관을 만났다.

-농부에서 어부를 거쳐 소방관으로… 실제 만나보니 어떻던가요?
“뉴스로 접한 정보를 현장의 목소리로 확인해 보면, 정말 많이 달랐어요. 가령 뉴스는 소방관분들이 장갑도 없고 불쌍하게 일하고, 안전에 구멍이 나 있다는 식이었는데… 아니었어요. 그분들은 장비도 자부심도 다 강했어요.”
리서치와 실제의 괴리가 너무 커서, 계속 더 만나보자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한 소방관이 그러셨어요.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며 다 쓴 목장갑 주워다 주는 분들 있는데, 나쁜 마음은 아닐 테지만 사양합니다.” 그러고는 기념으로 가져가라면서 폐방화복을 주시는 거예요. 그걸 동아리방에 걸어두고 계속 바라봤어요. 그러다 업사이클링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방화복이 소방관을 지켜주니까, 우리가 저걸로 다시 소방관을 지켜주자’고.”
화재 현장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로 암에 걸려 죽어가는 소방관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혈관육종암으로 사망한 故김범석 소방관은 생전에 1살 된 아이에게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가 아니라 불을 끄다 죽어간 아버지로 기억되길’ 원했다. 후에 제품 펀딩 기부금을 고인의 유가족에게 전달하러 갔을 때, 소방관의 부친은 돈을 돌려주며 말했다.
“이 돈으로 암에 걸려 쫓겨난 다른 소방관을 도와주세요. 그분들의 병원비와 소송비를 지원해주세요.”
한 번으로 끝났을 선행 프로젝트가 그 한마디 말로 발화되어 ‘119 레오’라는 사회적 기업이 됐다. 일련의 과정이 알려지며 국회에 ‘김범석 법’이 발의되어, 소방관이 된 지 5년 이후에 암에 걸리면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고, 그 입증의 시비를 가리는 것은 소방관 개인이 아닌 기관의 책임으로 정해졌다.
‘암으로 죽으면 가족이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기에 현장에서 죽고 싶다’던 소방관들의 애끓는 마음이 받아들여진 것.
-소방관들의 동료애는 정말 대단하지요?
“네. 자기 목숨을 의탁하니까요. 타인을 구하기 위해 불구덩이에 동료와 함께 뛰어들잖아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소방관에게는 마스크가 두 개예요. 하나는 자기 것, 나머지 하나는 구조할 사람의 것. 등에 멘 산소통 하나로 둘이 숨을 나눠마시죠. 그래서 저희는 소비자를 후원자를 넘어서 소방관들의 동료라고 불러요.”

그렇게 소임을 다한 히어로 슈트로 만들어진 가방은 보통 사람들을 일상의 히어로로 일으킨다. ‘니가 나를 구하면 나도 너를 구한다’는 상호성의 용기. 이승우는 소방관의 활동 내역을 가방의 이름으로 체계적으로 ‘기표화’했다.
슬링백 REO714는 소방관의 심박수에 국민의 심박수를 나눈 숫자 714, 백팩 REO926은 소방관 1인이 담당하고 있는 인구수 926명, REO893은 소방대 연간 출동 횟수(단위 천명)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메시지만큼이나 디자인이 간결합니다.
“제가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을 좋아해요(웃음). 건축을 전공하기도 했고요. 머스터드 컬러에 아라미스 소재는 한정돼 있고, 거기다 한국 건축물의 직선 느낌을 살렸어요. 사실 직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제 한계라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
-최소의 디자인이 주는 힘이랄까요. 물질의 홍수를 막아주는 미니멀한 방주 같기도 해요.
“하하. 버크민스터 플러라는 미국 건축가를 좋아하는데, 그분이 최소한의 재료로 최고의 효율을 추구해요. 최소의 자원을 쓰는 건 지구 환경에 중요하잖아요. 분배의 불균형도 자본주의 사회주의 개념으로 제한하지 않고, 애초에 용량을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환경 설계로 풀어내려고 했죠.
약간 괴짜인 면도 있어서 지구를 돔으로 덮자고 주장했어요. 건축이 인간을 보호한다는 개념이니까, 지구 보호를 위해 둥근 돔을 설계해서 그 위를 덮자는 거죠.”
공익과 효율은 이승우를 이루는 디자인적 정체성이 된 듯했다. 소방호스로 만든 의자나 카드지갑조차 기능적 디자인이 주는 쾌적함이 있다. 착한 브랜드를 넘어 디자인 자체로 인정받은 결과, 2018년 법인전환 후 연평균 매출은 583% 상승했다.
-산전수전 겪어보니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던가요?
“효율과 진정성이요. 특히 진정성은 더 세련된 정련을 위해 소비자와 적극적으로 고민을 나눠야 해요. 실제로 사업 초기에 방화복을 100% 업사이클링으로 진행했다가 싸늘한 시장 반응에 상처받았는데, 돌아보니 그때 제가 오만했더라고요. ‘설마 이런 진정성을 외면한다고?’오버하면서… 진실을 기반으로 더 예쁘게, 더 실용적으로, 시대 흐름에 핏을 맞춰 전달해야 했어요.”

-어떤 브랜드를 신뢰하나요?
“나이키와 파타고니아요. 효율성과 진정성이 높은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나이키가 힘을 내면서 친환경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죠. 디자인 자체만으로는 열정적인 페라리의 이미지도 좋아합니다(웃음).”
-119레오는 글로벌로 갈 수 있을까요?
“(미소 지으며)가야죠. 개발도상국 소방관들은 지금도 소방복 대신 우비를 입고 불 속으로 뛰어든다는 거, 아세요? 우리나라 소방관들도 2002년 월드컵 전까지, 우비만 입고 화재를 진압했어요. 자원은 순환돼야 합니다. 선진국의 폐방화복을 재생한 수익으로 가난한 나라의 방화복을 지원할 수 있어요. 저는 그게 지구를 덮는 돔이라고 생각해요.”
-지구를 덮는 돔이요?
“물리적으로 덮는 게 아니라 지구를 보호하는 글로벌 사이클의 완성이라고나 할까요. 기후 위기로 지구에 홍수와 화재가 끊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욱 돌고 돌아야죠. 이 대륙을 지켰던 옷이 저 대륙을 지키는 옷으로.”
-동년배의 청년들은 당신을 보고 뭐라고 하지요?
“주변 창업자들은 저더러 사회운동가처럼 보인다고 하고요. 직장 다니는 친구들은 저더러 사업가 다 됐다고 놀리죠(웃음).”
-스스로는 어떻게 느끼나요?
“제 갈 길을 가고 있다고 느껴요.”

-성공을 향해 가고 있나요? ‘워라밸’은 적당하고요?
“하하. 페라리를 타면 성공일까요? 제 관점에서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사회를 달성하는 게 가장 큰 성공입니다. 게다가 ‘워라밸’을 고집하는 건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워크와 라이프는 하나예요. 라이프 안에 워크가 있죠.”
-어떤 루틴을 사랑합니까?
“달리기요. 매주 토요일 5~10km를 뛰고 있어요. 어느 날 선배 창업자에게 ‘힘들다’고 넋두리를 했더니, 다음 날 저녁부터 함께 뛰자더군요. 멋진 충고였습니다.”
-꿈을 이뤘나요?
“제 꿈은 건축가였어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건축가가 되고 싶었죠. 학교 책보다 건축 책과 건축 모형을 보며 꿈을 키웠어요. 얼마 전 학교 교수님께 여전히 건축가에 대한 꿈을 놓을 수 없다고 했더니 한방에 명쾌한 답을 주셨어요. “사업하고 돈 많이 벌어 훌륭한 건축주가 되렴.”
100억의 돈이 생긴다면, 당장 119 레오의 글로벌 확산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정말 지구를 돔으로 덮은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을린 방화복이 당신에게 가르쳐준 것은 무엇입니까?
“용기요. 소방관 직업을 갖지 않고도 열정과 용기를 가진 보통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길지 않은 생애를 시간을 살았지만 행동하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5년 만에 암투병 소방관 재해 인정 법안이 통과되고, 폐방화복 가방도 조금씩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어요. 후원자들과 꿈꿔왔던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세상’이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이승우는 보통의 정규 교육 과정을 밟았으나, 대학 졸업장은 받지 않았다. 평온하게 웃는 28살 청년 사업가를 보며 생각했다. 성공은 정점을 치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온기에 약간의 용기를 더해 조금씩 옆으로 순환하는 것이라고. 재난을 지나 재생에서 상생으로. 가능한 더 멀리, 더 오래. 그을린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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