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꿈의 술? 소주-막걸리 섞은 맛 비슷한데 숙취가 없네? - 티베트의 '칭커주' [스프]
1997년 7월 나는 쓰촨(四川) 성 아바(阿壩) 장족(藏族) 자치주를 방문하면서 티베트인 거주지를 처음 찾았다. 티베트인은 언어와 생활 영역에 따라 중앙은 위짱(衛藏), 동부는 캄(康), 서부는 아리(阿里), 북부는 암도(安多)로 구분한다.
이는 중국 행정구역상 시짱(西藏) 전체, 쓰촨의 40%, 윈난(雲南)의 10%, 간쑤(甘肅)의 15%, 칭하이(青海) 전체 등 5개의 성·자치구에 걸쳐 있다.
전체 면적이 190만㎢에 달해서 중국 영토의 1/5에 해당한다. 이런 현실로 인하여 시짱자치구에 사는 티베트인은 313만 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2020년 제7차 중국 인구센서스에서 조사된 전체 티베트인 706만 명의 절반 이상은 다른 성에 살고 있다. 그중 대다수가 쓰촨성에서 산다.
쓰촨 면적의 절반인 아바와 간쯔(甘孜) 자치주가 티베트인의 땅인 캄이다. 캄은 중앙 티베트와 중국의 접경지대였다. 평균 해발은 3,500m가 넘어 땅은 척박하다.
고산을 넘어야 다른 마을에 갈 수 있어 인구 밀집도가 낮다. 중앙 티베트인에게는 촌사람으로 업신여김을 받았고 한족의 침략을 수시로 당했다. 이 때문에 캄의 티베트인 '캄파(康巴)'는 성격이 억세고 거칠다.
캄은 중앙 티베트와 전혀 다른 종교적 상황을 갖고 있다. 티베트불교는 크게 4대 종파가 있다. 최대 종파인 겔룩파(格鲁派)는 1392년 총카파(宗喀巴)가 창시했다.
총카파는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청렴한 사원 생활을 강조했다. 겔룩파는 '깨끗한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1409년 티베트력 1월 1일에 라싸(拉薩)의 조캉 사원(大昭寺)에서 모든 생명의 행복을 기원하는 '몬람'을 주재했다. 그 뒤 겔룩파는 라싸에 뿌리내려 간덴 사원(甘丹寺), 드레펑 사원(哲蚌寺), 세라 사원(色拉寺) 등을 잇달아 건립했다.
총카파는 중생들이 제대로 된 불경을 접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당시 티베트불교는 경전이 없어 구전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종파마다 경전을 해석하는 데 차이가 있었고 예불 의식도 사원마다 달랐다.
이에 경전을 목판에 새겨 종이나 천에 찍어 보급토록 했다. 그 덕분에 티베트불교 교리는 대중 속에게 파고 들어서 일상생활을 지배됐다.
티베트불교 1인자인 달라이 라마가 겔룩파의 수장이다. 라싸에서 멀리 떨어진 캄에서는 닝마파(寧瑪派)의 세력이 강하다. 닝마파는 가장 오래된 종파로, 파드마삼바바가 창시했다.
파드마삼바바는 8세기 초 인도에서 태어났다. 일설에는 연꽃에서 출생했다고 해서 '연화생(蓮華生)'이라고 부른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나란다 불교대학에서 수학했고 그 뒤 여러 나라를 떠돌며 수행했다. 그의 명성을 전해들은 티베트왕국의 티송데첸(赤松德贊)왕이 초청하자 티베트로 건너왔다.
파드마삼바바는 밀교를 적극 포교했고, 감화됐던 티송데첸왕이 761년 불교를 국교로 정했다. 775년 티베트 최초의 불교사찰인 삼예 사원(桑耶寺)이 건립됐다. 파드마삼바바는 낙성법회를 봉행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그러나 파드마삼바바를 조사로 모시며 티베트불교 최초의 닝마파가 결성됐다. 티베트어로 닝마는 '오래되다', 파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닝마파는 파드마삼바바를 문수보살, 관음보살, 금강수보살이 합일된 제2의 석가모니라고 믿는다. 또한 한 스승에서 제자로 차례대로 전해지는 구전의 가르침, 오랜 수행과 명상을 통해 생성을 넘어 완성에 이르는 수행의 가르침을 중시한다.
이렇듯 밀교 전통이 강해서 조직화와 중앙집권화가 더디었다. 따라서 닝마파는 오랜 세월 동안 삼예 사원 이외에 다른 사찰을 세우지 못했다.
그로 인해 침체했던 티베트불교는 11세기에 인도의 승려 아티샤가 찾아와 적극 포교하면서 중흥했다.
그 뒤 마르파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카규파(喝擧派), 티베트 서남부의 사까 지방에서 창시된 사캬파(薩迦派)가 생겼다. 티베트에서는 이 시대로 구분해 닝마파를 구파(舊派)로, 나머지 3대 종파를 신파(新派)로 나눈다.
이렇게 티베트불교 4대 종파는 발전하며 자체 목판인쇄소를 갖추었다. 각자의 종파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그중 사캬파가 세운 쓰촨성 더거(德格) 현의 더거인경원(印經院)이 가장 규모가 크다.
더거인경원은 겅칭 사원(更慶寺)이 운영하는데, 티베트에서 '티베트문화의 백과사전', '설산 속의 문화보고'로 불린다. 원내에 보관 중인 32만 권의 목판이 불경뿐만 아니라 역사, 문학, 지리, 천문, 의학 등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중 70%가 20세기 이전에 새겨진 것이다. 특히 티베트의 전설적인 영웅 게사르(格薩爾)의 서사시를 새긴 목판은 세계에서 길이가 가장 길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729년에 3층 규모, 면적이 3,000㎢로 완공되었지만, 내부 리모델링만 했을 뿐 보수는 필요하지 않았다.
겅칭 사원이 속한 사캬파는 1073년 꼰촉 겔뽀가 창시했다. 사캬파는 다른 종파와 달리 꼰촉 겔뽀의 핏줄만이 종정이 되고 세습해서 현재는 41대에 이른다.
사캬파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언어와 문자로 쉽게 전달하는 현교(顯敎)다. 13세기에는 파스파(八思巴)로 인해서 티베트 국교로 군림했다. 파스파는 몽골로 가서 활약했는데, 쿠빌라이 칸이 국사(國師)로 임명했다.
오늘날까지 몽골인들이 티베트불교를 신봉하는 이유는 파스파의 활약 때문이었다. '티베트'의 어원도 몽골어인 '투베트(Thubet)'에서 유래됐다.
비록 겔룩파가 득세하면서 사캬파의 지배권은 사라졌지만, 티베트 각지에 핵심 사찰을 두어 영향력을 행사했다. 캄에서는 겅칭 사원이 그러했다.
더거의 지방 영주(土司) 가문이 사캬파를 신봉했기 때문이다. 더거인경원을 세운 것도 영주 가문이다. 나는 더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잊지 못할 칭커주(青稞酒)를 마셨다.
칭커는 해발 3,000m 이상의 티베트고원에서만 자라나는 보리의 일종이다. 이를 원료로 빚는 티베트의 술이 칭커주다. 따라서 숙성된 칭커주는 빛깔이 하얗고 맛은 소주에 막걸리를 섞어 놓은 듯하다.
보기와 달리 도수가 높아 40~50도에 달한다. 하지만 고산의 천연 광천수를 사용한 데다, 숙성을 오래 해서 입안을 촉촉케 하고 숙취가 없다.
티베트인은 새해 연휴, 전통축제, 결혼식, 아이를 낳았을 때 칭커주를 마시며 축원한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흰색 천 하다를 걸어주고 쑤요차(酥油茶)와 칭커주를 대접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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