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와 2000년대를 대표하는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아이콘, 줄리아 로버츠. [귀여운 여인]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수많은 히트작을 남기며 ‘아메리칸 스위트 하츠’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최근 [원더] 재개봉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연기 인생을 돌아본다.


골든글로브를 품에 안은 신성
1967년생인 줄리아 로버츠는 부모의 이혼과 친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과 생계에 무책임했던 의붓아버지 등 힘겨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한때 수의사를 꿈꾸었던 그는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졸업했는데, 1983년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수상 후보에 오르는 등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얻은 오빠 에릭 로버츠의 영향으로 1987년 무대에 처음 나섰다. 이때부터 연기를 꿈꾼 그는 1988년 독립영화 [미스틱 피자]로 처음 관객과 영화계의 이목을 끌었다.
[귀여운 여인](1990)으로 줄리아 로버츠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만, 그는 1989년 개봉한 [철목련]으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철목련]은 미국 루이지애나의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줄리아 로버츠는 샐리 필드, 돌리 파턴, 셜리 매클레인, 대릴 해나, 올림피아 듀카키스 등 쟁쟁한 선배 연기자 틈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은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인 그가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수상과 함께 아카데미상 수상 후보에도 올랐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그는 당뇨병을 앓으면서도 결혼과 임신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극 중 여성 ‘셀비’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 세계 남심을 사로잡은 ‘귀여운 여인’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정석 [귀여운 여인]의 세계적 흥행은 줄리아 로버츠 연기 인생 초반 그의 명성을 증폭시켜 준 무대였다. 매력적인 사업가 ‘에드워드’(리처드 기어)가 우연히 만난 콜걸 ‘비비안’과 순수한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전 세계 관객에게 로맨스를 꿈꾸게 했다.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비비안은 섹시함과 우아함, 순진무구함과 지혜로움이 교차하는 복잡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그는 비비안을 통해 단순히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에 그치지 않고 복합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는 연기자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드러냈다. 비비안이 뿜어내는 매력은 곧 줄리아 로버츠의 것이었다. 극 중 목젖이 훤히 보일 정도로 크게 웃을 때 환하게 빛나는 이미지는 한동안 줄리아 로버츠를 기억하게 하는 또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성과는 수상으로 이어져 줄리아 로버츠는 그해 미국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로맨스의 여왕으로 군림하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1997)은 줄리아 로버츠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준 작품으로 꼽힌다. 9년 전 헤어진 전 연인이 갑자기 결혼 소식을 알려오자, 그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줄리아 로버츠는 ‘남사친’과 ‘남친’ 사이를 혼자만의 질투와 사랑으로 오가는 해프닝을 통해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을 넘어 진정한 사랑과 우정의 의미를 찾아가는 캐릭터를 연기해 호평받았다.
그로부터 2년 뒤, 줄리아 로버츠는 그의 연기 인생에서 또 하나의 정점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바로 ‘영원히 달콤한 로맨스의 남자’로 많은 관객의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영국 출신 배우 휴 그랜트와 함께한 [노팅힐](1999)이다. [노팅힐]은 세계적인 여배우와 런던 북부 노팅힐에서 작은 여행 서적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의 극적인 로맨스를 그렸다. [귀여운 여인]을 비튼 듯한 스토리의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파파라치로 대변되는 황색언론의 추적과 감시 속에서 사랑은 물론 자신의 진정한 삶을 되찾아가는 인물을 통해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었다.


할리우드의 기대를 뛰어넘다
줄리아 로버츠는 2000년 [에린 브로코비치]를 통해 ‘로맨틱코미디의 여왕’이라는 대중의 선입견을 깼다. 이 영화는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평범한 여성이 미국의 에너지 대기업 PG&E와 벌인 법적 분쟁이라는 실제 사건을 다루었다. 줄리아 로버츠는 세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으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여성 에린 브로코비치를 연기했다. PG&E 공장에서 유출되는 유해 성분이 마을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린 브로코비치가 거액의 소송전에 나서면서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통해 줄리아 로버츠의 단단한 연기 내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줄리아 로버츠는 2010년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영광을 완전히 재현하지는 못했다. 다양한 장르와 스토리를 넘나드는 작품에 다수 출연했으나 대중적 흥행 면에서 남는 아쉬움은 작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7년 개봉한 영화 [원더]는 그의 존재감을 다시금 알린 작품이다. 줄리아 로버츠는 [원더]에서 선천적 안면 기형으로 고통받는 아들의 어머니로 출연해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아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슈퍼맘 캐릭터를 특유의 따뜻한 눈빛으로 그려낸 것. 모자가 함께한 장면들에서 그는 감정선을 세밀하게 조율하며 영화의 감동을 극대화했다.
줄리아 로버츠는 [에린 브로코비치]를 통해 골든글로브는 물론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성과를 얻었고, 미국배우조합상과 LA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다. 또 그는 당시 ‘세계 최고 출연료를 받는 배우’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여배우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 ‘2000만 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리며 무려 2000만 달러가 넘는 출연료를 받게 된 것. 미국의 대표적 엔터테인먼트 매거진 [피플]이 매년 꼽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목록에 1991년 이후 무려 다섯 차례나 이름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도전은 계속된다
어느덧 50대 중후반에 접어든 줄리아 로버츠가 올해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그가 선택한 작품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연출자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새 스릴러 영화 [애프터 더 헌트]다. 줄리아 로버츠는 이 작품에서 앤드루 가필드 등과 호흡을 맞춘다. 이번 영화는 로맨틱코미디 영화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뒤 잇단 스릴러 영화를 통해 탄탄한 연기력을 입증하고 있는 줄리아 로버츠의 새로운 선택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기대를 갖게 한다.
줄리아 로버츠는 지난해 초 이선 호크, 마허셜라 알리 등과 함께 출연한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를 공개하면서 진행한 미국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 인터뷰를 통해 “내가 하지 않기로 선택한 일들이 나를 대변한다는 것은 내 경력이 말해 준다. 사실상 무언가를 하기로 선택하지 않고, 하지 않기로 선택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신중한 선택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다. 실제로 그는 할리우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보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자극적인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소문과 루머에도 흔들림 없이 연기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배우가 바로 그다. 그런 줄리아 로버츠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스크린에 복귀할지 관심이 쏠린다. 영화와 연기에 남다른 신념을 지닌 그의 새로운 모습에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4월호
글 윤여수(맥스무비 기자)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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