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한강 “슬펐다는 독후감 들려줄 때 제일 좋아요”
‘한겨레’에 비친 한강의 문학 여정 30년
‘한겨레’에 한강에 관한 기사가 처음 실린 것은 30년 전인 1994년 11월이었다. 한강은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로 등단한 데 이어 그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해 소설가로도 등단한 상태였다. 소설 등단에서 채 1년도 되기 전인 그 무렵까지 한강은 무려 여섯 편의 중단편을 발표함으로써 단연 눈길을 끌었다. 갓 등단한 작가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처럼 많은 수의 작품을 발표한다는 건 그만큼 습작품이 많았다는 뜻일 테고, 그에게 그토록 청탁이 몰렸다는 사실은 그만큼 작품들의 질이 고르게 높았다는 방증일 터였다.
이 기사는 당시 두각을 나타낸 세 여성 작가의 단편들을 함께 다루면서 이들이 90년대 한국 소설에서 담당할 몫에 대한 기대를 담는 내용이었다. 한강의 작품으로는 계간지 ‘리뷰’ 창간호에 발표한 단편 ‘여수의 사랑’을 소개했다. 이듬해에 낸 그의 첫 단편집 표제작이 되는 그 작품을 두고 기사는 “나이답지 않게 안정된 문장과 능숙한 이야기 솜씨”를 들며 “90년대 한국 소설을 더 한층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예상을 내놓았다.
25살, “슬픈 게 좋지 않아요?”
한강을 단독으로 다룬 첫 기사는 1995년 7월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 서평이었다. 신인 작가의 첫 책으로는 이례적으로 문화면 머리에 올린 그 기사는 “20대 중반이라는 작가의 나이와 그의 소설들이 뿜어내는 때 이른 조락의 정조가 연출하는 불일치”에 대한 당혹감으로 시작했다. 소설집 속 주요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진한 외로움과 피로의 기색”을 보이며, “고통과 상실” “절망과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그들이 영위하는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을 보여주는 상황 설정과 함께, 그런 상황을 상징하는 서정적인 자연 묘사를 높게 평가했다. 그런 맥락에서 인용한 단편 ‘저녁빛’의 한 대목이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것이 한강의 대표 장편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정점에 이른 ‘혼의 미학’을 앞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재인은 검푸른 버드나무숲이 저녁 바람을 휘감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잎사귀마다 누군가의 넋이 걸려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누군가의 넋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 흐느끼는 듯이, 애원하는 듯이, 두 팔을 모아 높이 쳐들고 용서를 비는 듯이 숲은 흔들리고 있었다.”
‘여수의 사랑’은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명작선에 포함되면서 2012년에 재판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작가는 이때 ‘저녁빛’을 수록작에서 뺐다. 아무려나 1995년 첫 소설집을 내고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위해 신문사를 찾은 한강에게 기자는 물었더랬다. 약관의 젊은 작가가 어째서 이토록 도저한 절망과 곤핍에 함몰되어 있는가? 이 미욱한 질문에 한강은 짐짓 웃으며 답을 들려 주었거니와,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진 한강 문학의 핵심이 바로 그 답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어둡고 슬픈 게 좋지 않아요? 전 제 소설을 읽은 사람이 슬펐다는 독후감을 들려줄 때가 제일 좋아요.”
슬픈 눈빛 물려준 부친 한승원
인간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그것을 시적인 문체와 미학적 틀에 녹여 내는 것이 한강 문학의 힘이라는 것을 노벨상 수상은 새삼 확인시켰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또한 한강의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의 발언이다. 한승원은 2018년 3월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라는 산문집을 내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책에 실린 글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주는 편지’와 관련해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사에 기록되어 있다.
“아들딸들이 모두 문학을 하니, 그들 앞에 제가 전범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들딸에게 주는 편지에서도 밝혔지만, 유식학(唯識學)에서는 내 눈빛이 하늘의 별빛과 달빛을 만든다고 합니다. 저는 제 자식들에게, 자신만의 독특한 슬픈 눈빛을 지니라고 당부합니다. 그 눈빛으로 자신만의 풍경을 창조하라고요.”
한강의 눈매는 부친 한승원을 닮아서 다소 슬프게 처져 보인다. 그런 외형만이 아니라 미학적 관점으로서의 슬픈 눈빛 역시 아버지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졌음을 이 발언에서 확인하게 된다.
한강의 첫 장편 ‘검은 사슴’(1998)을 다룬 기사는 열악한 작업 조건과 폐광의 위기에 맞닥뜨린 “탄광촌의 실상이 작가의 충실한 취재에 의해 상세히 제시된다”는 점에 주목했는데, 실제로 한강은 등단하기 전 잡지사 기자로 탄광촌과 광부를 취재한 경험이 있다. ‘여수의 사랑’에 이은 두 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2000) 표제작은 ‘채식주의자’ 연작의 씨앗이 된 작품이다. 이 책을 다룬 기사는 한강 소설 세계의 지속성과 변화를 살펴봤는데, 주인공들의 절망과 불행감이 부각된다는 점이 연속성을 이룬다면 “형식과 화법의 변화”는 소설 스타일의 변모와 심화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찾으려는 노력”을 알게 한다고 썼다.
“도발적 소재, 표현” 응원 당부
한강은 ‘채식주의자’ 연작의 두 번째 작품인 ‘몽고반점’으로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기사에서는 그의 부친 한승원이 1988년 ‘해변의 길손’으로 제1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이 상의 2대 수상이 최초 기록이라는 사실을 특기했다. 심사위원들은 예술가 소설의 전범으로 이 작품을 평가했고, 수상자 한강은 “죽음과 추악함까지도 끌어안는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었다”며 “소재와 표현이 다소 도발적이어서 독자들이 어떻게 읽을지 걱정되기도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몽고반점’은 ‘채식주의자’ 연작을 이루는 세 작품 중 가장 많은 논란을 낳는 작품인데, 작가는 “아름다움의 극단을 밀고 나가다 보면 현실원칙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며 독자들의 이해와 응원을 당부했다.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에 이어지는 ‘나무 불꽃’을 더해 연작 세 편으로 이루어진 단행본 ‘채식주의자’는 2007년 10월30일에 초판이 출간되었고 한겨레 서평 기사는 11월3일 치로 실렸다. 오토바이 뒤에 개를 매단 채 죽을 때까지 달린 뒤 그 개를 먹어치웠던 어른들에 관한 어릴적 기억이 주인공 영혜의 육식 거부의 바탕을 이루며, 그런 영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물리력을 동원해서까지 육식을 강요하는 가족들을 통해 육식으로 대표되는 폭력과 억압을 고발한 작품이었다. 연작 첫 편 ‘채식주의자’는 평범하다 못해 진부한 인물인 영혜 남편의 시점으로 서술되지만, 사이사이에 영혜 자신의 독백으로 처리된 단락들이 긴장감을 높이는데, 그 가운데 이런 대목에 소설의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 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두 번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2002)에 이은 한강의 세 번째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는 2010년에 출간되었고 이듬해인 2011년에는 네 번째 장편 ‘희랍어 시간’이 나왔다. “상처 입은 인물들의 내면을 부조하는 이미지와 감각 그리고 문장의 리듬이 소설이라기보다는 시를 읽는 느낌을 준다”는, ‘희랍어 시간’에 관한 기사의 결론은 노벨상 선정 사유를 포함해 한강 소설에 관한 일반적 평가와 통한다 하겠다. 이 무렵 한강의 신작 출간은 매우 활발해서 다시 이듬해인 2012년에는 세 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이 나왔다. 이 책을 다룬 기사에서 주목한 것은 상처와 절망이라는 한강 소설의 기조로부터 “회복과 재생을 향한 미약한 몸짓”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표제작에 이름을 빌려준 도롱뇽의 잘린 앞발이 다시 돋아나는 장면, 그리고 책 속 수록작 제목인 ‘회복하는 인간’에서 그런 몸짓이 보였다.
‘노벨상의 예고편’ 부커상 수상
한강은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으며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수상 직전인 2016년 3월 파리도서전에 참가했을 때 스스로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으로 소개한 것은 2014년작인 ‘소년이 온다’였다. 이 소설을 다룬 기사(2014년 5월26일 치)는 이 작품이 장편으로서는 비교적 짧은 분량임에도 “읽어 내기가 결코 녹록하지는 않다”는 경고(?)의 말로 시작한다. “작가 특유의 시적이고 압축적인 문장이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데다 80년 5월 광주라는 소재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든 압박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냐 하는) 고통스러운 질문을, 일상의 균열과 한밤의 악몽을 피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으리라”고 기사는 썼지만, 그것이 거꾸로 이 책을 모두가 읽어야 한다는 강력한 권고임은 물론이다. 작가의 인터뷰 발언이 아팠다. “소설을 쓰는 동안, 아니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할 때부터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2016년 5월 ‘채식주의자’의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을 계기로는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노벨상으로 상징되는 문학 세계화에 큰 진전을 이룬 쾌거”라는, 김성곤 당시 한국문학번역원장의 발언은 일종의 예언이 되었다. 한강은 무려 1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소설이 질문의 연속이라고 소개하며 “상이란 게 그리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얼른 내 방에 틀어박혀서 지금 쓰는 소설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문학상의 궁극이라 할 노벨상을 품에 안고서도 언론 노출을 피하고 있는 지금 그의 심정을 짐작하게 하는 발언이다. 그는 또 “독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 소설만이 아니라 제가 정말 좋아하는 한국의 동료·선후배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도 같이 읽어 주셨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노벨상 발표 직후 스웨덴 한림원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한국문학과 함께 자랐다”며 “모든 작가가 하나의 집단”이며 “그들의 모든 강점이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한 말과 통하는 대목이다. 한편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일약 “한국문학 세계화의 희망”(2016년 5월18일 치 2면)으로 떠오른 번역자 데버라 스미스는 6월15일 서울국제도서전에 초청돼 한국 기자들과 만나 ‘채식주의자’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채식주의자’는 부드러움과 공포를 동시에 갖춘 작품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었어요. 문장의 질과 이미지 환기 능력, 어조와 분위기 조성 등이 두루 매력적이었지요.”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다”
시적인 자전 에세이로도 읽히는 ‘흰’이 나온 게 2018년이었고 역시 데버라 스미스가 번역한 이 작품으로 한강은 다시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다음 작품이자 지금으로서는 그의 마지막 소설인 ‘작별하지 않는다’는 2021년에 나왔는데, 한강은 그 작품을 쓰는 데 무려 7년이 걸렸다고 최근 스웨덴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작품 자체의 까다로움도 있었겠지만, 문학상 수상 같은 외적인 변수가 그의 시간과 신경을 빼앗은 탓이었다. 같은 인터뷰에서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한 사실이 그 점을 알게 한다. 2021년 9월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기자간담회는 코로나의 여파도 있어서 온라인으로 열렸다. 그 간담회에서 한 발언에 한강 문학의 다음 행선지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저도 변형되었고, 그 소설을 쓰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어요. 그 소설을 쓰는 동안 제게 왔던 악몽과 질문은 제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되었죠. 그런데 이 소설을 쓰면서는 저 자신이 많이 회복되었어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는 악몽이나 죽음이 제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이 소설을 쓰면서는 저 자신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어요. 이 소설이 나를 구해 줬지,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죽음에서 삶으로 나왔기 때문에, 다음 소설은 이 소설과는 다른 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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