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페이 출범 주역, 삼성전자 사표 내고 작정하고 개발한 것
올링크 김경동 대표
스마트폰 결제를 할 때 가장 불편한 점은 각 결제와 포인트 적립마다 근거리 무선통신(NFC), QR 코드, 바코드 등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매장별로도 애플리케이션(앱)이 달라 매번 다른 앱을 실행해야 한다. 결제 코드가 화면에 뜨기까지 로딩 시간이 오래 걸려 종종 계산을 기다리는 뒷사람 눈치가 보일 때도 있다.
삼성전자 재직 당시 삼성페이를 기획한 주역이었던 올링크 김경동 대표(42)는 이 불편을 해결하고 싶었다. 세상에서 제일 간편한 통합 결제용 리더기를 만들기로 한 계기다. 김 대표를 만나 개발기를 들었다.
◇창업을 위해 6개월 만에 ‘컴퓨터의 신’이 되다
어렸을 때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 “주변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고 머릿속은 늘 새로운 물건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했어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발명했죠. 4학년 때 발명한 두 가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낙서해도 흔적을 지울 수 있는 벽지였어요. 지금같이 오염이 잘 지워지는 실크 벽지가 없던 시절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나름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해요. 액자 거울을 만든 적도 있어요. 액자와 거울이 양면에 붙어있어 용도에 따라 버튼을 눌러 전환할 수 있는 인테리어 거울이었죠.”
발명왕이었던 초등학생은 2001년 강원대 메카트로닉스 공학과에 입학했다. 입학하자마자 창업 동아리에 들어갔다. “만드는 걸 좋아해 메카트로닉스 공학과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제 생각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곳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전공 공부를 제쳐두고 무작정 창업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꾼다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깨달았어요. 나도 창업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죠.”
창업에 눈뜬 20살 새내기는 첫 창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오늘날의 메타버스 기술을 접목한 쇼핑몰이었어요. 당시 명동 거리만 거닐어도 우리나라 패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기 가장 인기 있는 스타일을 가게에 비치하니까요. ‘명동 쇼핑 거리를 온라인으로 구현하면 어떨까’ 싶었죠. 당시 유행했던 아바타를 활용해 온라인으로 매장을 돌아볼 수 있는 쇼핑몰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알아주는 컴맹이라 쇼핑몰 만드는 것 자체가 난관이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친구에게 60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이트 개발을 의뢰했지만, 성과가 없더군요. 결국 6개월을 기다리다 지쳐 제가 직접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프로그램 하나를 실행하지 못할 정도로 컴맹이었던 제가 밤낮으로 개발 공부에 매진한 결과 6개월 만에 컴퓨터의 신이 됐어요. 서버, 클라이언트 등 모든 개발 종류를 통달할 정도였으니까요.”
◇낮은 학점으로 지원 못 한 삼성에 입사한 비결
사업 기획부터 시스템 개발까지 직접 담당해 창업에 성공했지만,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쇼핑몰 이용자가 꾸준히 늘며 매달 100만원 이상의 쏠쏠한 수입을 벌었어요. 20여년 전의 100만원은 당시 대학생에게 꽤 큰 돈이죠. 그런데 얼마 못 가 명동 상인회의 반대에 부딪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사업을 접고 학교로 돌아와 막연히 남들처럼 취업 준비를 시작했어요.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었지만, 지방대 출신에 3점이 채 안 되는 학점, 영어 성적조차 없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기업은 나 같은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구나’ 생각했죠.”
대학 졸업 후 병역특례로 전자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사이버패스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했다. “입사 2년 만에 대리로 진급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서비스 기획자인데도 프로그램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주더군요. 하지만 한 대기업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제가 중점을 뒀던 온라인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렸어요. 상실감을 느꼈죠. 그럼에도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결제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결제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죠.”
퇴사를 고민하던 순간, 우연히 삼성카드 입사 제안을 받았다. “대학 시절 학점이 낮아 입사 지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삼성그룹이라 놀랐죠. 기회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해 결국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29살이었던 저에게 계약 연봉만 기존 연봉의 2배에 가깝게 제시했으니 인생 역전과 같았죠.”
삼성카드에 입사해 삼성 미래사업TF에서 일했다. 이곳에서 직장 생활의 정점을 찍었다. “한국 최초의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아마존 원클릭 결제 같은 서비스를 만드는 게 취지였죠. 지금은 익숙해진 ‘간편 결제’라는 말은 제가 만든 서비스에서 시작됐어요. 그 결과 삼성그룹의 메인이라 불리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로 자리를 옮길 기회가 생겼습니다. 연봉은 줄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업부에서 일하고 싶어 과감히 결정했어요. 돈보다 커리어가 중요했거든요.”
삼성전자에서 삼성페이 출시를 주도했다. 2015년 서비스를 시작한 삼성페이는 출시 2년 반 만에 국내 가입자 수 1000만명을 돌파하며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기획력을 인정받아 34살의 나이에 차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누구보다 빠른 승진이었죠. 내부에서 ‘말이 안 되는 속도’라고 칭할 정도였어요. 통상 신입사원이 차장이 될 때까지 15년이 걸리거든요. 하지만 4년 후 결국 사직서를 냈습니다. 저와 회사의 방향성이 달랐거든요. 저에겐 당장 개발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넘쳐났지만, 기업은 서비스 출시를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죠. 큰 조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적이라고 판단하고 2019년 9월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진짜 ‘간편’ 결제와 돈을 버는 영수증 ‘올수증’
삼성페이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지만, 늘 더 간편한 결제 방식을 고민했다. “간편 결제로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든 결제와 포인트 적립이 가능해진 건 혁신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개선할 사항이 많았어요. 특히 소비자가 매장별로 각기 다른 앱에 접속해 바코드, QR 코드 등 매번 결제 방식을 바꿔야 하는 점이 가장 불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스마트폰 이용자가 공통적으로 이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간편결제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이 문제를 인프라(리더기) 확충 차원으로 접근하고 싶었어요.”
점주 입장에서도 결제 리더기 설치 비용이 부담이라고 생각했다. “기존 간편 결제는 리더기를 매장에서 따로 구비해야 했습니다. 리더기나 스캐너는 각 20만원 정도로 소상공인에게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닙니다. 비용도 저렴하면서 다양한 서비스를 담을 수 있는 리더기가 필요했어요.”
보안 문제도 있었다. “삼성페이처럼 NFC 기술을 이용하지 않는 바코드나 QR 코드는 보안에 취약한 아날로그적인 방식입니다. 정보가 화면에 그대로 보여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큐싱(QR 코드와 피싱의 합성어)이라는 단어가 존재할 정도죠. QR 코드를 스캔하면 가짜 금융기관 사이트로 유도해 돈을 빼돌리는 거죠.”
2019년 10월 올링크를 설립하고 기존 리더기의 단점을 보완한 서비스 개발에 들어갔다. “결제뿐만 아니라 건물 출입, 멤버십 서비스까지 모든 모바일 기기의 정보를 연결하는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스마트폰과 포스기, 키오스크 등 매장에 설치된 단말기들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NFC 태그 리더기 ‘터치 도넛’을 개발했어요. 터치 도넛에 스마트폰을 접촉해 기존 단말기로 정보를 보내는 거죠. 가격은 5000원으로, 기존 리더기 구입 비용의 1/40 정도입니다.”
2023년 전자 영수증 서비스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올링크의 NFC 기술을 영수증에 적용했습니다. 전자 영수증은 환경 오염을 줄인 새로운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점주가 종이 전단 대신 전자 영수증 디자인을 커스텀해 매번 다른 광고를 삽입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근처 가게와 광고 협업도 가능하죠. 소비자도 회원 가입할 필요 없고, 보안 걱정으로 매번 종이 영수증을 찢어버리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환경공단의 ‘탄소중립실천포인트' 정책을 활용해 전자 영수증 발급할 때마다 100원의 포인트를 받을 수 있어요. 돈을 버는 영수증인 셈입니다. 기존 종이 영수증의 한계를 극복해 ‘페이퍼리스’(paperless)를 실현하고 싶어요.”
◇미래의 결제 문화를 바꾸는 솔루션, 올링크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곳에 활용이 가능한 리더기 아이디어를 제시한 결과,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22년 중소벤처기업부 ‘아기유니콘 200 육성사업’에 선정된 데 이어 같은 해 스타트업 최초 모바일 기술대상 대통령상, 2024 호반혁신기술공모전 대상 등을 받았다. 지난 7월에는 전주에서 열린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올해 9월 전주한옥마을에서 전자 영수증 시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환경오염도 줄이고, 마케팅 역량과 자원이 부족한 소상공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였어요. 우리나라 영수증 문화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해 69개국에 적용하는 NFC 기술 특허 138개를 출원했다. 2021년부터 국내 대기업, 공공기관과 제휴 서비스를 출시했다. “SK의 결제 서비스 SK pay, 효성 TNS와 함께한 ATM 서비스, 부산에서의 모바일 성인인증 서비스, GS 건설과 건물 출입 서비스를 기획했습니다. 결제 분야의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해 기술력을 바탕으로 여러 기업과 협업을 이어 나갈 예정이에요.”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아이디어 못지않게 매출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우리나라에선 실질적으로 매출이 있는 기업이 인정받습니다. 저희는 기술력을 우선시하는 IT 기업이라 서비스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서 매출이 없다고 주변에서 평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신약 개발을 하는 바이오 기업도 아닌데 실적이 안 나와 기술력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요. 그래서 창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수익 구조를 탄탄히 해야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매출이라는 목적의식 없이 계속 시도하다가 전체적인 방향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하거든요. 스스로 매번 사업 구조를 검증해야지만 세상이 알아줄 겁니다.”
/진은혜 에디터, 이소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