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울트라 부자님, 순자산 2%만 내세요
지난 1월 옥스팜(빈곤과 불공정 무역에 대항하는 글로벌 민간단체 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3월 이후 약 4년 동안 세계 5대 부자의 자산이 114% 증가했다. 이들의 자산은 2020년 3월 4050억 달러에서 2023년 11월 8690억 달러로 늘었다. 한 시간에 1400만 달러씩 증가한 셈이다. 반면 전 세계의 50억명은 더 가난해졌다. 이 단체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1% 부자들이 전 세계 금융자산의 43%를 보유하고 있으며 2020년 이후 증가한 부의 3분의 2를 가져갔다.
세계화와 기술혁신을 배경으로 글로벌 기업을 소유한 극소수 부자의 경제적 권력이 엄청나게 커졌다. 그러나 억만장자들은 공제, 감면, 소득의 해외 이전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실제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세금을 내고 있다. 따라서 억만장자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부과해서 공정한 조세제도를 확립하고 부의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부유세’ 논의다.
지난 7월26~2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글로벌 부유세에 대한 의미 깊은 합의가 이루어졌다. 주요 20개국 재무장관이 국제적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억만장자에게 글로벌 부유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올해 G20 회의 의장국인 브라질의 페르난두 아다지 재무장관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투명하고 공정하며 공평한 세계적 조세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억만장자에게 세금을 제대로 걷는 데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다국적기업이나 억만장자들이 소득을 이 나라 저 나라로 자유롭게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저세율 국가나 조세도피처로 소득을 옮겨 세금을 거의 내지 않을 수 있다(역외 조세회피). 그러나 각국 정부는 이들의 돈을 자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세율 인하, 세금 감면 등 ‘바닥으로의 경주’를 감행해왔다. 국가들이 ‘경주’가 아니라 ‘협력’해야 공평한 글로벌 조세체계를 만들 수 있다.
초고액자산가 실효세율 0.3%에 불과
이미 지난 4월, G20 의장국인 브라질과 독일, 스페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4개국은 재무장관들의 이름으로 글로벌 부유세 도입을 공식 제안한 바 있다. 전 세계 억만장자 약 2800명에게 매년 순자산의 2% 이상 세금을 걷자는 것이다(2%의 경우, 세수는 약 1930억~2420억 달러로 추정). 이 방안은 2021년 세계 약 140개국이 다국적기업의 소득에 대해 ‘글로벌 최저한세’ 15%를 부과하기로 합의한 사례에 기반하고 있다. 최저한세는 기업이나 개인이 내야 하는 최소한의 세금을 의미한다. 납세자는 공제나 감면 덕분에 최저한세보다 낮은 세액이 산정될 경우, 그 차액을 납부해야 한다. ‘글로벌 최저한세’ 15%라면, 다국적기업은 저세율 국가에서 2%의 낮은 세율을 적용받아도 다른 나라들에서 나머지 13%의 세금을 내게 된다. 글로벌 부유세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렇게 걷은 세수를 세계적인 빈곤과 불평등 문제 해결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에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G20 차원에서는 오랫동안 글로벌 부유세가 논의되어왔다. 그러나 합의문이 나온 적은 없다. 지난 7월 나온 국제적 조세 협력에 관한 장관급 선언문이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 선언문에 따르면 G20 재무장관들은 누진과세(능력에 따른 세금 부담 원칙으로 고소득일수록 높은 세금을 부담)를 ‘불평등 개선’ ‘재정건전성’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성장’ 등의 핵심 수단으로 간주한다. 또한 과세는 국가 주권의 영역이지만 진보적 조세 개혁을 위해 효과적인 국제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G20은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다국적기업들의 조세회피(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세원 잠식과 소득 이전)에 대응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또한 각국의 세무 당국들이 해외에 계좌를 보유한 기업이나 개인의 금융 정보를 자동 공유하는 제도도 실현되어 있다.
이런 변화에 기초하여 재무장관들은 초고액자산가(utlra-high-net-worth individuals)에 대한 국제적 과세 및 각국의 협력이 공정한 조세체계 수립에 매우 중요하다고 뜻을 모았다. 이 합의문은 오는 11월에 열릴 리우데자네이루 G20 정상회의에 제출된다.
G20 재무장관의 합의로 이어진 글로벌 부유세 계획을 입안한 학자는 파리 경제대학의 가브리엘 주크만 교수다. 그는 부의 불평등 및 조세정책 전문가로 2023년 전미 경제학회가 40세 미만의 가장 뛰어난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억만장자의 순자산에 대한 2% 과세’는 올해 주크만이 G20 재무장관 회의에 제출한 보고서에 기반한 것이다. 주크만은 이 보고서(〈초고액자산가에게 조정된 최저한세를 부과하기 위한 제안〉)에서 누진적이지 못한 현재 조세체계의 문제를 지적하며 ‘국제적으로 조정된 최저세율’ 계획을 제시한다. 구체적으로는 순자산 10억 달러 이상 부자들의 순자산에 대해 국제 협력을 통해 연간 최저 2%의 최저한세를 매기자는 것이다. 초고액자산가들이 소득 대비 2% 이하의 세금(개인소득세·부유세·소비세 등 그들이 납부하는 세금을 모두 합산한 개념)을 내면, 그 차액을 추가로 징수당한다.
이는 최고소득 계층으로 갈수록 소득 대비 실효세율(납세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세율)이 오히려 낮아지는 ‘누진과세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것이다. 여러 선진국에서 초고액자산가들은 매년 그들의 부(순자산)를 불리며 막대한 소득을 얻는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난 소득 중 대부분은 과세 자체를 피해간다. 배당 시기나 자본이득의 실현을 (무한정으로) 늦추거나 혹은 해외나 본국의 조세회피처에 지주회사를 두는 방식 등으로 ‘과세 대상 소득은 거의 없다’고 세무 당국에 보고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초고액자산가들의 소득 대비 실효세율이 중산층보다 낮아졌다. 순자산 10억 달러 이상의 부를 보유한 초고액자산가의 ‘세전 자산수익률(실질치 기준)’은 지난 40년 동안 매년 약 7.5%였다. 그러나 그들의 부에 대한 실효세율은 0.3%에 불과했다. 〈그림〉은 선진국에서 소득 대비 실효세율이 최상위 부유층에서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낮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1억 달러 이상의 억만장자 급에서는 실효세율의 하락이 더욱 가팔라진다.
주크만 교수는 G20 보고서에서 초고액자산가들의 부에 최저세율 2%의 세금을 부과하는 경우, 이들의 세전 소득 대비 실효세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추정했다. 순자산 10억 달러 이상 억만장자의 소득 대비 실효세율은 22%에서 39%로 올라간다. 1억~10억 달러인 계층의 소득 대비 실효세율도 28%에서 34%로 상승한다.
이 과세 제도는 세금 제도의 누진성을 강화해서 부의 집중도 및 불평등 악화를 교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세계 GDP 대비 최상위 0.0001%의 부는 1987년 약 3%에서 2024년에는 약 13%까지 상승했다. 지난 40여 년 동안 4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이들 전 세계 억만장자는 약 14조2000억 달러 규모의 부를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부유세가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되려면 국제적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 제안에 참여하는 국가가 많을수록 억만장자들의 세금회피를 위한 국제적 이동은 어려워진다. 각국 정부들은 ‘바닥을 향한 경주’를 하지 않아도 된다.
억만장자 가장 많은 미국은 반대?
글로벌 부유세 실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금융 불투명성을 활용한 부의 은닉이다. 예컨대 미국 시민인 초고액자산가가 자신의 돈을 해외 금융기관으로 빼돌리고, 그 금융기관이 이 사실을 미국 국세청에 알리지 않는다면, 세금 부과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각국 정부들은 이러한 ‘금융 불투명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억만장자들의 돈을 자국으로 유치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은 최근 10여 년 동안 꾸준히 모색되어왔다. 미국이 2014년부터 시행한 FATCA(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 해외금융계좌신고법)는 미국 납세자가 자신의 소득과 자산을 해외에 은닉해 탈세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법률이다. 이 법률에 따르면 해외 금융기관은 자사 계좌를 가진 미국 시민의 금융 정보를 미국 국세청에 보고해야 한다.
또한 2017년부터 OECD 회원국 등 100개국 이상이 국제적 금융 정보 자동교환 시스템인 CRS(Common Reporting Standard)를 시행하고 있다. CRS에 의하면, 각국 금융기관은 자사에 등록된 외국인의 모든 계좌를 세무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또한 각 세무 당국은 이 정보를 계좌주 모국의 세무 당국과 공유한다.
이로써 소득이나 자산을 해외로 옮겨 탈세하는 ‘역외 조세회피’를 억제할 수 있다. 금융기관들이 외국인 계좌에 대한 비밀을 유지할 수 없게 함으로써 각국 사이의 금융 정보 공유가 자동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보고에 따르면 2014년 이후 10년 동안 역외 조세회피 규모가 약 3분의 1로 감소했다.
주크만에 따르면 국제 조세 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있다. 다국적기업의 소득에 대해 ‘누가 납세해야 하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다. 여러 나라에 법인을 두는 다국적기업의 경우, 해당 국가들의 세무 당국에 재무제표 등 사업 관련 항목들을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의 소득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세금을 부과받기도 어렵다.
이에 대해 주크만은 다국적기업의 소득에 대해 실질적 처분권을 가지는 ‘수익적 소유권(beneficial ownership)’을 명확히 규정하자고 주장한다. 다국적기업이 자산·부채·수익 등은 물론 그 소득의 실제 소유주까지 상세하게 보고하도록 하고, 이 정보를 국제적으로 공유하자는 것이다.
또한 주크만 교수는 각국 정부가 글로벌 부유세에 참가할 유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이 제도에 참가하지 않은 국가는 초고액자산가에 대해 정해진 글로벌 부유세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 그들의 돈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서다. 이런 경우 참가국이 그 차액(부유세 기준으로 덜 걷힌 금액)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도록 허용하면 어떨까? 이를 통해 더 많은 국가들이 글로벌 부유세에 참가할 유인을 높일 수도 있을 터이다.
글로벌 부유세 구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글로벌 부유세는 조세회피 규제나 개인소득세 누진성 확대, 그리고 상속세 인상 등과 비교할 때 억만장자에게 과세하는 더욱 효과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다만 G20 내 여러 유럽 국가들과 개도국들이 찬성하는 데 비해 억만장자가 가장 많은 미국 정부가 반대를 표명하고 있어서 국제적 합의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세금정책의 국제적 조율은 매우 어렵다”라며 미국이 누진과세를 지지하지만 억만장자의 자산에 과세하기 위한 국제적 협조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부 개도국과 비영리단체들은 국제 조세 협상의 담당 기구를 OECD에서 유엔으로 옮기자고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에도 반대했다. 실제로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부유세의 실행 방안은 합의가 쉽지 않아 G20 회의에서 논의가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억만장자들이 다른 계층보다 훨씬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불공정한 과세체계의 개혁을 위한 목소리는 계속 높아질 것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콘퍼런스에서 주크만 교수와 만나 토론을 진행한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그에게 한국의 감세 정책에 대해 말하며 “과연 부자들에 대한 이런 세금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그는 “한국인을 포함한 전 세계 시민들이 너무도 불공정한 현재의 조세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대답했다. 결국 글로벌 부유세가 실현될 수 있는가는 전 세계 시민들의 압력에 기초한 선진국 정부의 정치적 의지와 국제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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