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축하·위로의 상징'...스파클링 와인에 얽힌 과학과 기술의 발달사
이철형 / 와인소풍 대표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없다. 필자는 모든 새로운 것은 오랜 기간 지식과 기술이 축적돼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스파클링 와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지식과 과학과 기술의 산물이다. 그 발달사를 보면, 우연들이 모여 필연이 되고 이것저것이 융합하고 통합해 탄생됐다.
스파클링 와인은 포도즙을 발효하면 생기는 이산화탄소를 잡아 넣은 와인이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도 발효 현상에 의해서 거품은 생겼다. 김치를 잘 담그면 특정 시점이 지나 일정 기간 동안 거품이 생겨 신맛과 함께 사이다와 같은 청량감을 선사하는 것과 같다.
와인도 갓 만들었을 때는 입안에서 약한 발포감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거품이 사라진 스틸 와인이 됐을 것이다. 마치 생막걸리가 오래되면 점차 거품이 약해지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본론으로 돌아가자. 스파클링 와인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
와인의 역사가 8000년이라고 하니, 와인을 거품과 함께 마신 것도 좀 과하게 표현하면 8000년이 된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는 발포성 와인과 비발포성 와인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현상을 즐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1857년 파스퇴르가 발효가 효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규명할 때까지는 약간의 거품이 남아 있는 와인과 거품이 빠진 와인을 구분하지 않고 마신 셈이다.
문서상으로 가장 빠른 스파클링 와인의 기록은 1531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네딕틴 수도회(Benedictine)에 속하는 프랑스 성 힐레르 수도원(the Abbey of Saint-Hilaire)의 수도사들이 블랑케트(blanquette)라는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날 앤세스트럴 방식(선조들의 방식)이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발효 중인 와인을 다른 용기에 담은 뒤에도 발효가 지속돼 용기에 거품이 남아 있게 되는 방식으로 거품을 의도적으로 지켜내 마신 것이 이 즈음이다.
다음으로 빠른 것은 1662년 영국 과학자 크리스토퍼 머렛(Christopher Merret)이 스틸 와인에 설탕을 첨가해 2차 발효하게 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설탕을 넣어 스파클링 와인을 만든 최초의 기록이다.
그는 1662년 12월 17일 영국 왕립학회에 '설탕과 당밀을 이용한 2차 발효'에 관한 문서(논문)를 제출하기도 했다. 원래 이 발효법은 사이다(애플 와인) 생산자들이 먼저 발견했다고 한다. 그들은 사과주의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사용했다.
프랑스는 영국으로 와인을 수출했는데 영국인들이 단맛나는 와인을 좋아해 설탕을 넣게 됐고, 그 과정에서 2차 발효가 일어나는 현상을 발견했다는 설도 있다. 설탕을 이용한 2차 발효법이 개발된 곳이 프랑스가 아니라 주요 와인 소비 시장이었던 영국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스파클링 와인은 2차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거품으로 인한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이 또한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영국은 1620년대에 석탄을 연료로 하는 용광로에서 만든 튼튼한 유리병에 프랑스에서 가져온 와인을 옮겨 담을 수 있었다. 그 이전까지는 프랑스에서는 숯을 연료로 하는 용광로를 이용해서 만든 유리병을 사용했는데 석탄을 연료로 만든 병보다 약했다. 석탄을 연료로 사용할 경우 온도가 높아 제조 과정에 망간과 철 성분을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유리에 색을 내기 위해 망간과 철을 사용했는데 부수적으로 병까지 튼튼해진 것이다.
병 입구를 코르크로 막기 시작한 것도 영국이다. 프랑스는 영국보다 늦은 17세기 말이 되어서야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있는 곳에 필요한 용기와 마개의 개발과 활용이 있었으니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속담이 여기서도 통한다.
스파클링 와인을 발명했다고 알려진 돔 페리뇽은 포도재배 기술을 개선하고 블렌딩 기술을 개발했다. 레드 품종으로 껍질을 침용하지 않고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내는 등의 기술 진보를 이룩했다.
그가 스파클링 와인을 만든 것은 17세기 후반 프랑스의 오트빌 수도원(the Abbey of Hautvillers)에서 봄이 되면 셀러에서 와인병이 터지거나 마개가 터져 나오는 현상을 방지하러 갔다가 찾아낸 제조기술이다.
재미난 것은 그는 1668년도에 이 수도원에 부임했는데 연구나 기술 개발 담당이 아니라 재정 담당이었다는 점이다. 재정 확보를 위해 스틸 와인을 안전하게 만들어 팔 수 있어야 했는데 제품을 잘 만들려고 연구하다가 스파클링 와인을 개발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프랑스에서 최초로 스파클링 와인이 만들어진 것은 1695년 경으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스파클링 와인 생산 회사인 루이나르(Ruinart)는 1729년 설립되었다. 그 이후 현존하는 모엣이나 루이 로드레, 뵈브 끌리꼬, 하이직 같은 다른 유명한 샴페인 회사들이 나타났다.
영국 크리스토퍼 머렛이 개발한 방식을 프랑스 스파이(?)가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가져오듯 몰래 베껴 프랑스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품이나 개념이 있어야 해당 단어도 생겨나고 그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이 개발국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스파클링 와인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확산한 것은 18세기다. 이때부터 스파클링 와인 제조기술이 발달했고, 19세기에 파리 궁전 파티에서 샴페인이 유행하면서 생산자들도 대거 생겨났다.
샹파뉴 지방은 부르고뉴와 경쟁 관계였다. 하지만 같은 품종으로 만든 스틸 와인으로는 도저히 이겨낼 자신이 없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 것이 오늘날의 샴페인이다. 경쟁을 승화시켜 전혀 다른 세계를 연 것이다.
19세기 중·후반에는 각국의 와인생산자들이 샹파뉴 지역을 방문, 기술을 배워서 각자의 국가로 돌아가서 와인을 만들게 되면서 오늘날 각 국가의 스파클링 와인이 탄생했다. 당시 샹파뉴 지방을 방문한 와인 생산자들은 '이노베이터'나 '얼리어답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2차 발효 기술은 영국이 먼저 개발했다. 하지만 이를 이용해 실제로 산업화한 것은 프랑스였다. 안타깝게도 포도가 잘 재배되지 않는 영국의 기후 환경 탓이 크다. 기후 변화 영향으로 지금은 영국에서도 와인을 생산한다.
19세기에 스파클링 와인이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석탄을 연료로 한 용광로에서의 유리병 개발, 코르크와 와이어 케이지(코르크 마개를 잡아주는 철망)의 발명, 병속의 효모 앙금을 제거하는 데고르쥬망 기술의 개발, 발효가 효모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각 국가에서 와인 생산자들이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면서 오늘날 이탈리아의 프로세코, 스페인의 까바가 그 나라에서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됐다.
스파클링 와인의 비약적 발전의 배경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설탕의 개발과 확산
2. 발효의 원인인 효모의 발견과 발효의 원리 규명
3. 석탄을 연료로 한 압력에 견디는 강한 유리병의 개발
4. 코르크 마개의 개발과 사용
5. 병속의 침전물을 제거하는 데고르쥬망 기술과 효모 앙금을 병 입구로 모으는 리들링 기술 개발
6. 코르크 마개를 눌러주는 철망(뮈즐렛 Muselet)의 개발
7. 신기한 스파클링 와인에 대한 귀족와 왕족들의 호기심
등이 작용하여 샴페인을 중심으로 스파클링 와인이 축제와 축하와 위로의 상징이 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