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사나이’ 대박에 대학 졸업장 따윈 필요하지 않았다
영상 콘텐츠 제작사 두잇스튜디오 장명진 대표
“너 인성 문제 있어?”
2020년 인기를 끌었던 유튜브 예능 콘텐츠 ‘가짜 사나이’를 통해 만들어진 유행어다. SNS는 물론이고 광고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해당 유행어를 따라 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당시 ‘가짜 사나이’의 담당 PD였던 두잇스튜디오 장명진(36) 대표는 그때를 회상하며 웃음을 지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옆 사람이 ‘가짜 사나이’를 보는 모습을 목격한 날이 생생하다고. 여느 업계가 그러하듯 영상 콘텐츠에 늘 대박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장 대표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고집한다. 장 대표를 만나 영상 콘텐츠 제작자의 삶을 들었다.
◇싱어송라이터에서 PD로의 전향기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방끈을 싹둑 잘랐다. “대학을 갈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대신 오랜 꿈이었던 가수가 되기 위해 작곡을 배웠죠. 음악 스튜디오 막내 생활을 하면서 하루 2번씩 녹음실을 청소했고, 데뷔를 앞둔 아이돌 멤버가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모습도 지켜봤습니다. 물론 제 음반 작업도 꾸준히 했죠.”
2014년 데뷔곡인 ‘그린라이트를 켜줘’가 tvN 드라마 ‘아홉수 소년’의 OST로 등장했다. “음악을 알리는 방법으로 영상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영상 편집을 배웠어요. 커버곡이나 작곡법을 알려주는 내용으로 영상을 찍고 유튜브에 올렸죠.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섰다. 인터넷 방송(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방 11개짜리 음악 연습실을 꾸며서 방탈출 콘텐츠를 기획했어요. 암호를 만들어 자물쇠를 걸고, 귀신처럼 보이는 소품이 자동으로 떨어지는 장치도 만들었죠. 카메라 20대를 빌려서 이곳저곳에 설치하고 게스트를 초청했습니다. 임다, 이설 등 유명 BJ도 출연했어요.”
2020년 유튜브 채널 ‘피지컬 갤러리’ PD로 입사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첫 콘텐츠가 ‘가짜 사나이’였어요. 방송국의 1/10 수준의 제작비로 PD 3명이 영혼까지 갈아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만 들으면 혹사했다 싶겠지만,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갓 들어온 PD였지만 의견을 적극적으로 낼 수 있었고 그게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거든요. 음악 전공자로서 사운드 마스터링은 전담하다시피 했습니다.”
‘가짜 사나이’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조회수, 구독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고 주요 출연자들에게는 광고 제안이 쇄도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생각에 머리가 멍했습니다. 쏟아지는 댓글을 읽다가 밤을 새우는 날도 있었어요. 그때부터 어렴풋이 앞으로의 인생이 그려졌습니다. 음악은 취미로 남겨두고, PD로서 살아봐야겠다 싶었죠.”
웹 예능 ‘머니게임’, 코리안좀비 채널의 ‘파이트 클럽’, 유튜버 우마와 피지컬갤러리의 합작 예능 ‘우마게임’을 차례로 연출했다. 점점 더 큰 자극이 필요했다. “2023년이 되면서 이직을 준비했습니다.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자극을 얻고 싶었거든요. 같이 일하던 외주 제작사의 감독님 한 분이 회사를 직접 차려볼 것을 권유했어요. 오랜 고민 끝에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출연자를 위한 운동장을 만드는 PD
2023년 3월 두잇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가장 잘 아는 분야에서부터 출발했다. “홍대 한복판에서 음치가 노래를 불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우마게임에서 인연이 있었던 ‘뽀구미’와 함께 ‘비긴외계인’이라는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개인 방송 출신 유튜버 중엔 PD가 개입하면 능력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이들이 많은데요. 뽀구미는 오히려 날아다니더군요. 뽀구미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자며 다음 콘텐츠를 기획했습니다.”
초보 여성 레이서의 레이싱 도전기 ‘폐차레이서’를 기획했다. “이름 따라간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시즌1에서 아반떼N을 전손 폐차했습니다. 덕분에 이목을 끌었죠. 통합 조회수 420만회를 기록했습니다. 시즌2에서는 뽀구미의 성장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담았어요. 10대 중심 채널이었던 뽀구미는 폐차레이서를 통해 30~50대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예능 콘텐츠를 만드는 한편 SNS 광고 제작 일감도 부지런히 받았다. 다이어트 제품, 남성 화장품, 마사지기 등을 홍보하는 영상을 제작했다. “보통 광고 촬영 시간이 16~18시간 정도라면, 저희는 9시간 만에 촬영을 끝냅니다. 동선을 완벽하게 통제하려고 하면 오히려 모델이 어렵다고 느껴요. 중간에 끊지 않고 쭉 촬영했을 때, 쓸 만한 장면이 더 많습니다. 노래로 치면 한 마디 한 마디 녹음하는 게 아니라, 한 곡을 쭉 불러보게 하는 식이죠.”
OTT(넷플릭스, 웨이브 등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 진출은 목표가 아니다. 브랜디드 콘텐츠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일반적인 스튜디오나 프로덕션에서는 브랜디드 콘텐츠가 주 수익원입니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포맷이 많죠. 요즘은 토크형 예능이 주를 이루더군요. 콘텐츠 제작사가 자생하려면 IP(지식재산)를 바탕으로 2차, 3차 매출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가짜 사나이 2’는 영화화가 된 적이 있어요.”
뽀구미와 두잇 스튜디오는 폐차레이서 시즌3 제작을 논의하고 있다. “레이싱 콘텐츠를 계속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주류는 아니어도 마니아가 확실한 문화라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봤죠. 서브 컬처(하위 문화)라고 하더라도 한 분야를 선점하면 부가가치를 충분히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두잇 스튜디오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는 사례죠.”
◇콘텐츠 성적표는 실력·경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두잇 스튜디오는 2024년 9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가 주최하는 창업 경진대회 디데이 본선 무대에 올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지난 2년은 초석을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10월엔 뽀구미와 전속 계약을 맺었어요. 콘텐츠 제작과 MCN 그리고 2차 부가 사업 등 3가지 갈래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물론 핵심은 영상 콘텐츠다. “가짜 사나이를 제작했던 2020년과 비교하면 분명 연출자로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콘텐츠 시장은 참 냉정합니다. 실력 있는 제작자가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흥행하는 건 아니에요. 좋은 콘텐츠는 너무 많으니까요. 제 나름의 철칙은 트렌드를 쫓아가지 말자는 겁니다. 당장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라고 해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콘텐츠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콘텐츠라야 대중을 설득할 수 있으니까요.”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