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현대자동차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 대한 재매입(바이백) 옵션을 끝내 행사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0년 공장 준공 이후 16년간 일궈온 러시아 사업이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업계에서는 충격파가 거세게 번지고 있다.
1만 루블, 그러니까 딱 14만 원
현대차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서방의 대러 제재로 핵심 반도체와 전장 부품 수입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약 1년 9개월간 공장은 유휴 상태로 방치됐고, 버티다 버티다 2023년 12월 러시아 현지 업체 아트파이낸스(Art-Finance)에 공장 지분 100%를 단돈 1만 루블, 한화로 14만 원에 넘겼다.
당시 장부가 기준 현대차와 기아를 합산한 공장 자산 가치는 약 4,100억 원에 달했다. 말 그대로 헐값 매각이었다.

2년 안에 되살 수 있는 기회, 결국 날아갔다
당시 현대차는 매각 계약에 2년 이내 공장을 재매입할 수 있는 바이백 조항을 포함시켰다. 러시아 시장에서의 역대 성과를 감안한 ‘숨고르기 전략’이었다. 실제로 전쟁 전 현대·기아 브랜드는 러시아 시장에서 합산 점유율 20%를 넘기며 토요타를 압도하고 외국 브랜드 1위를 달렸다. 30년 누적 판매량만 530만 대에 육박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넘게 이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방 제재가 풀릴 기미가 없고, 그 사이 중국 브랜드들이 러시아 시장 점유율 60%를 장악해버렸다. 현대차가 돌아설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결국 지난 1월 31일, 바이백 옵션 만료 시한이 아무런 행사 없이 지나갔다.
2,800억 원 손실 확정, 업계는 “경악”
현대차는 이번 결정으로 장부가 기준 약 2,800억 원대 손실을 최종 확정하게 됐다. 단순 수치를 넘어 16년간의 현지 투자, 생산 인프라, 브랜드 자산이 통째로 증발한 셈이다.
현대차 측은 “서방의 대러 제재 지속과 시장 환경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완전 철수는 아니며, 기존 판매 차량에 대한 보증 수리와 부품 공급 등 고객 서비스는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한때 러시아를 지배했던 현대차, 이제는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준공 당시만 해도 현대차의 러시아 전략은 야심 찼다. 2021년에는 연간 생산 능력이 23만 4,000대에 달했고, 외국 브랜드 중 처음으로 점유율 1위 자리에 오르며 도요타마저 제쳤다. 러시아는 현대차그룹에 있어 유럽과 중국을 잇는 핵심 거점이었다.
그러나 전쟁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이제 현대차는 모스크바 번화가에 전시관만 겨우 남겨둔 채, 15년을 공들인 시장에서 조용히 퇴장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