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투자’, 과학인가 점성술인가 [자본시장 이야기]
연초에 반도체주나 기술주를 매수한 투자자는 상반기 내내 행복했을 터이다. 그러나 여름의 가격 폭락에 매도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면 상당 규모의 수익을 까먹었을 수 있다. 값이 오를 종목 선택은 투자 성과에 필요한 조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언제, 얼마만큼 사고팔지에 대한 세밀한 전략이 없다면 성과를 낼 수 없다.
유명 투자자들은 자신의 확고한 투자 철학을 관철하기 위한 일관된 전략으로 큰 성과를 낸 사람들이다. 워런 버핏 같은 유명 투자자들의 철학과 투자 원칙은 꽤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차트를 분석해서 얻은 정보를 기초로 투자하는 ‘기술적 투자자’들은 그리 드러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기술적 분석가들은 점을 치는 대신 차트에서 투자자들의 심리를 읽는다. 그리고 어떤 세력이 시장을 주도하며 가격 형성을 주도하는지 찾아내려 애쓴다. 가격만 보는 초보자들과 달리 거래량 변화에서도 유익한 정보를 얻어낸다. 이들은 차트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투자할 주식을 선택하고, 매수와 매도 타이밍 전략을 수립한다. 이 기술적 투자의 대가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해 짧게나마 살펴보도록 하자. 간략하지만 가볍지 않은 교훈들이다.
주식 투자자라면 ‘싸게 사서 비싸게 팔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너무도 당연해 별다른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는 클리셰다. 그러나 기술적 투자자 중에는 값싼 주식은 쳐다보지도 않는 유명인이 다수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비싼 주식만 찾는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예로 들어보자. PBR이 작다는 것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의 가격이 장부가격 대비 낮은 수준이라는 말이다. 장부 가치를 당장 회사를 청산해서 받을 수 있는 가치(회사 가치의 최소치)로 본다면, 장부가보다 낮은 주가는 단지 시장에서 저평가된 결과다. 저평가된 주가는 언젠가 오른다. 적어도 가격이 펀더멘털 가치로 회복되는 효율적 시장에서라면 말이다. 그러니 이런 주식은 매수해야 한다. 앞으로 주가가 올랐을 때 유의미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정반대 해석도 가능하다. 지금의 낮은 주가는 저평가가 아니라 적정한 가격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이러한 해석의 바탕은 ‘시장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시장은 과소평가나 과대평가를 하지 않는다. 낮은 주가는 회사의 낮은 수익성이나 부실한 재무 상태 등이 반영된 ‘적정한 가격’이다. 다시 말해 주가가 낮은 건 그 회사가 형편없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PBR이 낮은 주식을, 싸다고 매수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주가가 오르리라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미투자대회 챔피언이었던 마크 미너비니는 주가의 200일 이동평균선이 하락하고 있는 (즉, 주가가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주식은 아예 처음부터 고려 대상에서 제외한다며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든다. 마트에서 잘 팔리는 우수한 상품은 할인 판매대에 오르지 않는다고.
비싼 주식만 골라서 사는 투자 전략은 생소하다. 이런 투자 전략은 어디에서 왔을까? 과연 시장에서 오랜 시간 혹독한 검증을 거치며 살아남은 전략일까? 질문을 쫓다 보면 제시 리버모어라는 전설적인 투자자와 만나게 된다. 그는 19세기에 태어나 1920년대 후반 대공황의 어려운 시기를 거치며 엄청난 부를 쌓은 투자자다. 굳이 그가 태어난 세기까지 얘기한 건, 비싼 주식만 골라서 사는 투자 전략이 아주 오랫동안 시장에서 살아남은 전략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추격 매매’ 또는 ‘돌파 매매’라 불리는 투자의 대가들은 자신들이 리버모어에게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밝힌다.
익절도 어렵지만 ‘손절’은 훨씬 어렵다
이들 투자 전략의 뼈대는 다행스럽게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주식이 있다. 가격이 몇 주 또는 몇 달 전부터 계속해서 오르는 추세다. 지금 사려면 (즉, ‘달리는 말에 올라타려면’) 꽤 많은 돈을 내야 한다. 대다수 투자자들은 어제 사지 않은 걸 후회하며 비싼 값에 고개를 내저을 터이다. 그러나 리버모어의 후예들은 기꺼이 비싼 가격을 지불한다. 이후에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예상이 빗나가 가격이 떨어지면?
이 전략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매수 후 가격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안전장치를 해둔다. 그것은 ‘손절매(loss cut, 손해가 더 커지기 전에 현재의 손실을 감수하고 매도)’다. 매수 가격의 몇 퍼센트, 예를 들어 10% 이상 가격이 떨어질 경우 매도해서 포지션을 정리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매수 가격이 1만원이었다고 치자. 가격이 9000원 밑으로 떨어지면 미련 없이 팔고 ‘나와야 한다’. 가격이 오르면 손절매 수준도 가격을 따라 위로 올려준다. 가격이 1만2000원이 되면 9000원이 아니라 매수가인 1만원을 새로운 손절 수준으로 정해놓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주가가 떨어져도 매수가에 사고판 셈이 되어 손실의 최고치를 0원으로 고정시킬 수 있다(거래비용은 무시한다). 가격 하락은 손절매로 방어하고, 가격 상승은 누릴 수 있는 영리한 투자다.
이번 역에서 내리더라도 버스와 전철은 또 온다. 손절매는 이번 역에서 내려 다음번 기차를 탈 기회를 제공해준다. 남은 현금을 아껴 다음 투자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수의 법칙’이 들어간다. 7~8번 실패하더라도 (그래서 손절로 작은 손실을 여러 번 입었다 하더라도), 두세 번의 성공에서 실패를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의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타율은 3할이면 된다. 매번 종목을 기막히게 고르는 점쟁이가 될 필요는 없다.
쉬운 것 같지만 이에 적용되는 기술적 투자 특유의 디테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장기이동평균선만으로 이후 가격이 오를 주식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쉬울 리 없다. 매수와 매도 시점을 결정하기도 어렵다. 자칫 달리는 말에 살짝 걸쳤다 헛디뎌서 매섭게 추락할 수도 있다. 달리는 말에서 언제 내려올지, 다시 말해 언제 얼마만큼을 팔아야 할지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다. 일찍 판 주식의 상승세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어야 할지도 모른다. 너무 늦게 팔아 수익의 상당 부분을 깎아먹을 수도 있다.
투자의 대가들이 모든 가능한 상황에 대한 나름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그 각각에 대응할 계획을 ‘미리’ 세워둔다는 말을 들으면 뭔가 비현실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테러 공격에 대비하려면 가능한 시나리오에 따른 대응책을 미리 준비해놓는 것이 필수다. 그들은 ‘매수할 때 이미’ 손절 수준을 정해둔다. 가격 하락을 맞닥뜨렸을 때 이리저리 망설이다 결국 손실을 더하는 최악의 결정을 방지해준다.
미너비니는 자신의 성공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손절매라고 단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손절 없이 투자하는 것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없다면 사고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주식투자를 해본 투자자라면 가격이 손절 수준으로 하락할 때 매도하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터이다. 이익을 확정하는 매도(익절)도 쉽지 않지만 손해를 줄이기 위한 매도(손절)는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손절 주문은 아예 컴퓨터가 기계적으로 내도록 만들어두는 경우가 많다. 매도할 때 인간의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기계적으로 주문을 낸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다.
기술적 분석이 학계에서 인기 없는 주제였던 이유가 있다. ‘효율적 시장’이 시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 것과 무관치 않다. 효율적 시장이란 주가 움직임이 랜덤한 프로세스를 따르는 탓에 예측이 불가능한 시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차트 분석과 동전 던지기는 다르지 않다.
따라서 차트를 분석해서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이는 랜덤워크 이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된다. 이에 대한 가장 간단한 형태의 실증분석은 이미 1960년대에 시작됐다. 주가의 움직임에 따라 ‘기계적으로’ 주문을 내는 방식, 즉 ‘필터룰’이 유의한 성과를 낼 수 있는지에 관한 연구다.
필터룰이란 주가가 매수가보다 X%만큼 오르거나 내릴 때 매수·매도할 것을 미리 정해놓은 투자 전략이다. 초기 연구는 이런 단순한 방식의 투자가 실제로 유의한 성과를 내고 있음을 보였다. 그러나 거래비용을 고려할 경우 투자수익은 더 이상 유의하지 않았다. 시장은 적어도 이런 단순한 전략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았다. 후일 효율적 시장에 대한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유진 파마 교수는 1966년 다우지수를 구성하는 주식 중 30개에 대해 수익을 내는 필터룰을 찾아낼 수 없었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1970년 논문에선 ‘기술적 분석은 의미 없다’고 결론 내렸다.
2000년에는 저명한 경제학자 앤드루 로 등이 ‘기술적 분석의 토대’라는 야심찬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기술적 분석의 어려움은 숫자보다 이미지로 구성된 복잡한 차트의 속성 자체에 있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기술적 분석에서 인기 있는 패턴을 이용해 주가 예측에 유의한 정보를 도출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였다.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저널오브파이낸스〉에 실린 이 논문은 기술적 분석에 대한 학계의 무관심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술적 분석은 이후에도 그다지 인기 있는 주제가 되지 못했다.
과거의 정보는 미래 예측에도 유용할까
인공지능(AI) 열풍이 휩쓸고 있던 2023년, 머신러닝(기계학습)을 이용해 기술적 분석의 효과를 다시 분석한 학자들이 있었다. 예일 대학의 브라이언 켈리 교수팀이었다. 이들은 차트를 그림 그대로 데이터로 입력한 후 ‘이미지 러닝 알고리즘’으로 분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주가 예측이 보다 정확해졌다. 수익성이 더 높은 투자 전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빅데이터 정보기술의 발달이 경제학계에도 차트 분석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여의도 증권가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기술적 분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차트를 보지 않는 친구들은 없었다. 그러나 차트를 이용한 액티브 투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란 친구들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기술적 분석의 ‘비법’이란 것을 알고 있다면, 너라면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겠니?”
나 혼자 알아야 비법이다. 투수가 직구를 던질 때 글러브 속에서 공을 다시 잡느라고 팔꿈치가 꿈틀한다는 걸 알아챘다면 그 정보는 타석에서 나 혼자만 이용하는 것이 좋을 터이다. 입을 꾹 다물고 다른 타자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도 못 치는 타자가 즐비하다면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된다. 차트라는 건 누가 아무리 ‘어떤 패턴은 무얼 의미해’라고 알려줘도 ‘나만의 비법’에서 ‘모두의 비법’으로 바뀔 수 있을 만큼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더욱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차트를 이용해서 얻은 정보는 과거의 것이다. 과거의 정보가 미래 예측에 유용할까?’ 그러나 차트에서 반복되는 인간 행위의 패턴을 발견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성과를 내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리버모어는 그런 패턴의 존재에 대해 ‘인간의 탐욕적 본성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공황 때나 지금이나 시장을 움직이는 커다란 동력은 탐욕이다. 이에 공포와 호기심, 자존심, 용기, 희망 등이 더해진다. 모두 인간의 행위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들이다. ‘지금’과 ‘과거’의 인간 행위가 딱히 다르다고 보기도 어렵다.
당신이 기술적 분석에 관심이 없다면 시중에 나와 있는 관련 서적들의 제목에 ‘대박’ ‘성공’ ‘돈’ ‘비법’ ‘부자’ 등의 키워드가 큼직한 글씨로 박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증권분석’이나 ‘현명한 투자자’에 비해 점잖지 못한 제목이지 않은가. 그러나 돈이라는 단어와 속물이라는 느낌을 연결시키는 것은 꽤 널리 퍼져 있는 돈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여줄 뿐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지 않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
효율적 시장 테마와 기술적 분석은 물과 기름 같다. 효율적 시장에 대한 증거들은 많고 강력하다. 누군가 시장 효율성에 대한 반례로 ‘시장의 이상 현상’을 찾아내면 경제학자들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그것을 설명하는 위험요인을 찾아내곤 했다. 수많은 이상 현상들이 시장에서 사라지는가 하면 새로운 이상 현상이 등장한다. 최근 파마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효율적 시장은 여전히 ‘가설’일 뿐이라며 ‘틀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파마는 오래전에 기술적 분석가들을 천문과학자(astronomer)가 아니라 ‘점성술사(astrologist)’라고 평가절하한 바 있다. 기술적 투자의 대가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윌리엄 오닐은 성공 투자에 도움을 줄 만한 이들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곳이 대학의 경제학과라며 랜덤워크나 효율적 시장 이론은 ‘상아탑의 학문적 헛소리’로 판명 났다고 깎아내렸다. 효율적 시장이라는 거대한 테제와 그에 대한 도전들. 시장은 오늘날에도 그 치열한 싸움 속에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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