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 메모 300억은 ‘뇌물’…노소영 자충수였다”
이현준 기자 2024. 10. 18. 09:01
[직격인터뷰] ‘노태우 비자금’ 수사 검사 함승희
"처음부터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수사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은 '성역 없는 사정'을 강조했다. 이전까지 청탁과 정부의 조직적 압력에 시달리던 일선 검사였던 나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가 주목한 게 '월계수회'였다."
노태우 대통령 당선에 공헌한 사조직 말인가.
"그렇다. 노태우 정권 최고 실세였던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조직한 단체였는데 안영모가 총무 역할을 했다. 그를 잡으면 전 정권의 불법행위를 잡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수사를 시작했다. 자금 흐름을 추적하다 보니 상업은행 서울 효자동지점 이현우 계좌, 정확히는 '청송회'라는 이름의 차명 계좌에 수백억 원의 돈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당시 계좌에 들어 있던 돈이 500억 원이라고 기억하는데.
"500억 원은 넘는다. 사실 계좌가 몇 개 더 있었다. 제일 많은 게 600억 원 정도였고. 입금자를 보니 대우,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다 있더라. 대통령 경호실장이 무슨 수로 그런 거액을 모았겠나. 노 전 대통령 관련한 비자금이라는 걸 직감했다. 꼬리를 따라가다 보니 머리를 잡게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하진 않았나.
"애초 노 전 대통령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1차 목표가 뭔가. 안영모와 관련된 정관계 인사의 뇌물 수수 혐의를 밝히는 게 목적이었다. 박철언, 김종인, 이원조 등 그런 핵심 인사들을 먼저 잡아넣어야지, 전직 대통령 계좌를 찾았다고 그동안 하던 것을 다 내팽개치고 거기 달라붙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안영모가 비자금을 조성한 방식은 어땠나.
"당시엔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어려웠다. 대출금리도 15~20% 수준으로 높았고. 은행장 지위를 이용해 대출을 용이하게 해주고 대출 금액의 5~10%를 '리베이트'로 받아 비자금을 조성했던 거다."
"내가 점쟁이가 아니고서야 양쪽의 말만 듣고 판단할 수는 없는 거고, 결국 증거가 중요하다.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판사가 어떤 판결을 내릴 땐 '자유심증주의(증거의 증명력을 적극적·소극적으로 법정(法定)하지 않고, 이를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일임하는 주의)'에 따라야 한다. 다만 자유심증은 논리와 경험에 맞아야 한다. 재판부는 300억 원을 노 전 대통령이 SK그룹 측에 준 것으로 봤는데, 이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어째서 그런가.
"300억 원을 현금으로 줬다고 치자. 현실적으로 이를 어디에 감추나. 300억 원이면 당시 사과 궤짝으로 최소 200~300개 분량이다. 설령 감췄다 해도 이를 선경 측이 지정한 어느 은행으로 옮겨야 할 텐데, 은행에 그런 공간이 있지도 않고 누가 옮기겠나. 그러면 수표를 줬다고 치자. 300억 원어치 수표를 끊으려면 계좌에 300억 원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계좌번호가 뭔지, 적어도 누구 명의의 계좌였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닌가. 여러모로 논리와 경험에 어긋나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왜 그렇게 판단했을까.
"그 나름대로 이유는 있겠으나 이런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의도가 궁금하다. 타당함을 떠나 재판부에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재판부가 300억 원을 노태우 비자금으로 인정하면서도 딸에게 1조3808억 원의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이게 말이 되나. 흔히 비자금이라고 말하지만 이를 법률용어로 바꾸면 '범죄수익'이다. 즉 뇌물, 마약, 성매매 알선, 도박 등 범죄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라는 뜻이다. 이걸로 본인은 물론, 대를 이어 잘살게 해주는 게 과연 맞는가. 노 관장이 재산분할로 받게 된 돈의 씨앗이 비자금이라고 한다면, 이를 법이 인정해 주는 게 맞느냐는 말이다. 재판부는 이혼소송 중 재산분할이라는 미시적 문제에 중점을 두고 판결한 듯한데, '법에 의한 정의'라는 더 큰 대의를 생각해서 판결해야 한다고 본다."
300억 원 비자금이 부정한 돈임을 확신하는가.
"당연한 것 아닌가. 그 돈이 뇌물이 아닐 가능성은 단 0.1%도 없다. 당시 300억 원이면 지금으로 치면 한 3000억 원 될 거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대부분 군인으로, 잠시 정치인을 하던 사람이 그 큰돈을 어떻게 마련했겠나."
● 이혼소송 중 수면으로 떠오른 ‘노태우 비자금’
● “31년 전 비자금이 다시… 역사의 진실은 드러난다”
● 안영모 조사하다 노태우까지…“꼬리 잡으려다 머리 잡았다”
● 발견한 비자금이 500억 원? “훨씬 더 많다”
● ‘성역 없이 수사하라’더니 이원조 건드리자 ‘외압’
● 1988년 취임, 1995년 본격 수사…“은닉·세탁 시간 충분”
● 최-노 2심 판결, ‘자유심증주의’ 원칙 맞지 않았다
● “숨겨진 비자금 더 많을 것, 소급입법으로 환수해야”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
5월 30일 서울고등법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과 함께 재산분할금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22년 12월 1심이 인정한 위자료(1억 원)와 재산분할(665억 원) 금액보다 20배 많았다. 이 금액은 국내 이혼소송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였다. 가히 '세기의 이혼소송'이라고 할 만했다.
이 판결은 노 관장이 제출한 모친 김옥숙 여사의 자필 메모가 큰 영향을 미쳤다. 공판 과정에서 노 관장은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 원이 SK에 유입돼 태평양증권 인수와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김 여사가 '맡긴 돈'이라고 남긴 메모와 50억 원짜리 약속어음 6장이 찍힌 사진을 제시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300억 원이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 쪽으로 건네졌는데, 최 선대회장은 이에 대한 담보로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의 액면가 50억 원짜리 어음 6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돈이 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고 판단해 SK 주식 등 최 회장의 재산을 분할 대상이라고 봤다. 사돈인 노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SK가 성장한 만큼 딸인 노 관장의 기여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최 회장 측은 "비자금을 받은 적이 없고 300억 원은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활동비를 지원하기 위해 건넨 어음"이라며 "돈을 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재판 결과 노 관장은 웃었지만, 이 재판으로 '노태우 비자금'이 다시 세간에 회자되면서 후폭풍은 커지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불법 증여' '비자금 국고 환수' 주장이 터져 나왔고, 국정감사장에서는 "검찰과 국세청이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민단체의 고발도 잇따랐다.
‘노태우 비자금'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검사 함승희(73)였다. 1993년 나라를 뒤흔든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이 그 발단이었다.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이던 그는 그해 4월 안영모 동화은행장 비자금 조성 및 대출 커미션 수수 사건을 수사하다 거액의 뭉칫돈이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민주자유당 김종인·이원조 의원, 이현우 전 대통령 경호실장(이하 직함 생략) 등 노 전 대통령 측근 인사들로 흘러들어갔음을 발견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었다.
10월 4일 기자는 그가 고문으로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법무법인 대륙아주 사무실을 찾아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아직도 이 문제로 내가 조명되는 게 놀랍다"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거 참…. 후손들의 이혼소송이라는, 어찌 보면 참 '엉뚱한' 계기로 노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가 다시 불거지게 됐잖아요? 아무리 숨기고, 왜곡하려고 해도 역사의 진실은 드러난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5월 30일 서울고등법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과 함께 재산분할금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22년 12월 1심이 인정한 위자료(1억 원)와 재산분할(665억 원) 금액보다 20배 많았다. 이 금액은 국내 이혼소송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였다. 가히 '세기의 이혼소송'이라고 할 만했다.
이 판결은 노 관장이 제출한 모친 김옥숙 여사의 자필 메모가 큰 영향을 미쳤다. 공판 과정에서 노 관장은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 원이 SK에 유입돼 태평양증권 인수와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김 여사가 '맡긴 돈'이라고 남긴 메모와 50억 원짜리 약속어음 6장이 찍힌 사진을 제시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300억 원이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 쪽으로 건네졌는데, 최 선대회장은 이에 대한 담보로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의 액면가 50억 원짜리 어음 6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돈이 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고 판단해 SK 주식 등 최 회장의 재산을 분할 대상이라고 봤다. 사돈인 노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SK가 성장한 만큼 딸인 노 관장의 기여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최 회장 측은 "비자금을 받은 적이 없고 300억 원은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활동비를 지원하기 위해 건넨 어음"이라며 "돈을 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재판 결과 노 관장은 웃었지만, 이 재판으로 '노태우 비자금'이 다시 세간에 회자되면서 후폭풍은 커지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불법 증여' '비자금 국고 환수' 주장이 터져 나왔고, 국정감사장에서는 "검찰과 국세청이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민단체의 고발도 잇따랐다.
‘노태우 비자금'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검사 함승희(73)였다. 1993년 나라를 뒤흔든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이 그 발단이었다.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이던 그는 그해 4월 안영모 동화은행장 비자금 조성 및 대출 커미션 수수 사건을 수사하다 거액의 뭉칫돈이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민주자유당 김종인·이원조 의원, 이현우 전 대통령 경호실장(이하 직함 생략) 등 노 전 대통령 측근 인사들로 흘러들어갔음을 발견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었다.
10월 4일 기자는 그가 고문으로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법무법인 대륙아주 사무실을 찾아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아직도 이 문제로 내가 조명되는 게 놀랍다"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거 참…. 후손들의 이혼소송이라는, 어찌 보면 참 '엉뚱한' 계기로 노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가 다시 불거지게 됐잖아요? 아무리 숨기고, 왜곡하려고 해도 역사의 진실은 드러난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500억~600억 원 차명계좌가 여러 개"
1993년 수사 당시 이원조, 이현우, 김종인 등 노 전 대통령 측근의 비자금 조성을 발견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이 연루됐다고 생각했나.
"처음부터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수사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은 '성역 없는 사정'을 강조했다. 이전까지 청탁과 정부의 조직적 압력에 시달리던 일선 검사였던 나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가 주목한 게 '월계수회'였다."
노태우 대통령 당선에 공헌한 사조직 말인가.
"그렇다. 노태우 정권 최고 실세였던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조직한 단체였는데 안영모가 총무 역할을 했다. 그를 잡으면 전 정권의 불법행위를 잡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수사를 시작했다. 자금 흐름을 추적하다 보니 상업은행 서울 효자동지점 이현우 계좌, 정확히는 '청송회'라는 이름의 차명 계좌에 수백억 원의 돈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당시 계좌에 들어 있던 돈이 500억 원이라고 기억하는데.
"500억 원은 넘는다. 사실 계좌가 몇 개 더 있었다. 제일 많은 게 600억 원 정도였고. 입금자를 보니 대우,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다 있더라. 대통령 경호실장이 무슨 수로 그런 거액을 모았겠나. 노 전 대통령 관련한 비자금이라는 걸 직감했다. 꼬리를 따라가다 보니 머리를 잡게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하진 않았나.
"애초 노 전 대통령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1차 목표가 뭔가. 안영모와 관련된 정관계 인사의 뇌물 수수 혐의를 밝히는 게 목적이었다. 박철언, 김종인, 이원조 등 그런 핵심 인사들을 먼저 잡아넣어야지, 전직 대통령 계좌를 찾았다고 그동안 하던 것을 다 내팽개치고 거기 달라붙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안영모가 비자금을 조성한 방식은 어땠나.
"당시엔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어려웠다. 대출금리도 15~20% 수준으로 높았고. 은행장 지위를 이용해 대출을 용이하게 해주고 대출 금액의 5~10%를 '리베이트'로 받아 비자금을 조성했던 거다."
"성역 없는 사정은 허구"
수사는 순항했다. 검찰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역시 함승희"라며 찬사와 격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수사의 칼날이 이원조에 이르자 생각지도 못한 수사 방해와 외압이 들어왔다는 게 함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원조는 제일은행 출신으로 전두환 정권에서 대통령경제비서관, 노태우 정권에서 은행감독원(현 금융감독원) 원장을 지내며 '금융계의 황제'로 불린 인물이었다. 1993년 4월 수사가 시작되자 이원조는 다음 달 돌연 일본으로 출국했고, 수사는 안영모와 김종인을 구속하는 선에서 접어야 했다. 잘나가던 특수부 검사였던 그는 1993년 10월 대전지검 서산지청장으로 발령났고, 이듬해 10월 변호사 개업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동생 전경환 씨를 구속하고, '범죄와의 전쟁' 때에는 280명의 조직폭력배를 구속한 '최고의 특수부 검사'(홍준표 대구시장의 표현)는 그렇게 검찰을 떠났다.
1998년 2월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검찰 수뇌부는 함 변호사가 1993년 10월 초 대전지검 서산지청장으로 이동하자 비밀리에 본 사건을 내사 종결했고, 이원조는 1994년 10월 15일 귀국했다.
사건은 그렇게 묻히는 듯했으나 1995년 수사 축소 외압 사실을 밝힌 그의 언론 인터뷰(‘월간조선' 1995년 6월호)로 '노태우 비자금'은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해 10월 19일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예금조회표 등 물증을 제시하며 폭로했고, 결국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성명을 통해 "재임 기간 동안 약 5000억 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했고, 남은 돈은 1700억 원"이라고 인정하며 노태우 비자금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함 변호사는 당시 수사에 대해 "성역 없이 수사하라더니 이원조가 성역이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 정도의 성역이었나.
"언터처블(untouchable)이었다. 김종인, 박철언 수사할 때만 해도 청와대·검찰에선 격려의 말이 내려오고, 여론은 칭찬 일색이었는데, 이원조에 이르니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인사인 이원조를 왜 지키려 했을까.
"애초 YS는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을 통해 군사정권 세력과 손을 잡아서 대통령이 된 것 아닌가. 당시는 선거자금법, 정치자금법, 선거공영제가 전무하던 때였다. 선거를 치르려면 국고 보조 없이, 순전히 자기들 돈을 써야 했다. 그런데 선거가 한두 푼 드는 일인가.
YS가 대통령선거에 임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자금력이 달리니 누군가에게서 받아야 했을 거 아닌가. 당연히 노 전 대통령 쪽이 줬겠지. 여기서 선거자금 지원을 맡은 자가 바로 이원조였다. 은행권을 자기 세력에 뒀기에 은행장들에게 돈을 걷어 선거자금을 마련했고, 그중 하나가 안영모의 동화은행 비자금이다. 그래서 1993년 안영모를 수사하다 보니 이원조에 이르게 된 것이고…. 물론 이원조로서는 억울할 만하다. 대선 자금 모아서 대통령 당선시켜 줬더니 자신을 수사한다니까. 당연히 '혼자는 안 죽겠다'고 했을 것이고, 당시 출범한 지 3개월 남짓 된 YS 정부로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9월 5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노태우 정권 관련 세력은 YS 정권이 모두 전멸시켰다"고 말했는데.
"그렇지 않다. 이원조는 자신들에게 돈을 댄 인물이니 보호한 것이다. 내가 말한 'YS 정권이 전멸시켰다'고 한 세력은 YS 정권과 관련이 없는, 완전한 노태우 정권 실세와 실력자를 말한다. 물론 YS 정권이 군사정권을 몰아냈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YS는 우리나라에서 보수세력을 궤멸시켰다고 볼 수 있다. 민주화 세력이 '3당 합당'에 의해 보수가 됐고, 그 세력이 지금 보수 원로로 있다. 하지만 애초 보수가 아니었는데, 새로운 보수가 될 수 있나. 그저 또 하나의 '권력'이 된 것이고, 그러니까 이원조 수사를 막은 거다. '성역 없는 사정'은 결국 허구였다."
1998년 2월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검찰 수뇌부는 함 변호사가 1993년 10월 초 대전지검 서산지청장으로 이동하자 비밀리에 본 사건을 내사 종결했고, 이원조는 1994년 10월 15일 귀국했다.
사건은 그렇게 묻히는 듯했으나 1995년 수사 축소 외압 사실을 밝힌 그의 언론 인터뷰(‘월간조선' 1995년 6월호)로 '노태우 비자금'은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해 10월 19일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예금조회표 등 물증을 제시하며 폭로했고, 결국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성명을 통해 "재임 기간 동안 약 5000억 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했고, 남은 돈은 1700억 원"이라고 인정하며 노태우 비자금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함 변호사는 당시 수사에 대해 "성역 없이 수사하라더니 이원조가 성역이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 정도의 성역이었나.
"언터처블(untouchable)이었다. 김종인, 박철언 수사할 때만 해도 청와대·검찰에선 격려의 말이 내려오고, 여론은 칭찬 일색이었는데, 이원조에 이르니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인사인 이원조를 왜 지키려 했을까.
"애초 YS는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을 통해 군사정권 세력과 손을 잡아서 대통령이 된 것 아닌가. 당시는 선거자금법, 정치자금법, 선거공영제가 전무하던 때였다. 선거를 치르려면 국고 보조 없이, 순전히 자기들 돈을 써야 했다. 그런데 선거가 한두 푼 드는 일인가.
YS가 대통령선거에 임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자금력이 달리니 누군가에게서 받아야 했을 거 아닌가. 당연히 노 전 대통령 쪽이 줬겠지. 여기서 선거자금 지원을 맡은 자가 바로 이원조였다. 은행권을 자기 세력에 뒀기에 은행장들에게 돈을 걷어 선거자금을 마련했고, 그중 하나가 안영모의 동화은행 비자금이다. 그래서 1993년 안영모를 수사하다 보니 이원조에 이르게 된 것이고…. 물론 이원조로서는 억울할 만하다. 대선 자금 모아서 대통령 당선시켜 줬더니 자신을 수사한다니까. 당연히 '혼자는 안 죽겠다'고 했을 것이고, 당시 출범한 지 3개월 남짓 된 YS 정부로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9월 5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노태우 정권 관련 세력은 YS 정권이 모두 전멸시켰다"고 말했는데.
"그렇지 않다. 이원조는 자신들에게 돈을 댄 인물이니 보호한 것이다. 내가 말한 'YS 정권이 전멸시켰다'고 한 세력은 YS 정권과 관련이 없는, 완전한 노태우 정권 실세와 실력자를 말한다. 물론 YS 정권이 군사정권을 몰아냈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YS는 우리나라에서 보수세력을 궤멸시켰다고 볼 수 있다. 민주화 세력이 '3당 합당'에 의해 보수가 됐고, 그 세력이 지금 보수 원로로 있다. 하지만 애초 보수가 아니었는데, 새로운 보수가 될 수 있나. 그저 또 하나의 '권력'이 된 것이고, 그러니까 이원조 수사를 막은 거다. '성역 없는 사정'은 결국 허구였다."
"뇌물로 '확정'된 돈만 추징된 것"
1995년 10월 27일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 조성 사실을 인정한 후 11월 16일 구속된다. 이어진 수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3400억~3500억 원을 받고 대통령 당선 축하금 등 1100억여 원을 합해 모두 4500억~4600억 원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은 이 금액 중 2708억 원을 뇌물로 판단하고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해 징역 17년,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추징금을 납부할 돈이 없다"며 '맡긴 재산을 돌려달라'는 명목으로 동생 노재우 씨와 사돈 신명수 신동방그룹 회장과 민·형사 소송을 벌였다. 결국 노 씨가 150억 원, 신 회장이 80억 원을 대납하기로 합의를 보면서 노 전 대통령은 2013년 9월 추징금을 완납한다.
하지만 추징금을 납부할 돈이 없다고 한 노 전 대통령의 말과 달리 발견되지 않은 돈이 더 있을 거라는 정황이 나왔다. 김옥숙 여사가 장남 노재헌 씨가 관련된 공익법인에 100억 원대에 달하는 거액 자금을 기부한 것. 노 씨는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과 '보통사람들의 시대 노태우 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공시에 따르면, 김 여사는 2016년 10억 원을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한 2021년까지 총 147억 원을 '동아시아문화센터'에 기부했다. 2020년엔 95억 원을 기부했다. 지난해엔 '보통사람들의 시대 노태우 센터'에 5억 원을 기부해 김 여사의 기부액은 총 152억 원에 이른다. 김 여사는 평생 소득 활동을 한 적이 없어 이 자금 출처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편법 증여' 논란도 일고 있다. 함 변호사는 이에 대해 "추징되지 않은 노태우 비자금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추징되지 않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더 있을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대법원이 뇌물로 '확정'된 액수에 추징을 선고했다는 점이다. 즉 발견된 돈 가운데 뇌물로 인정된 것만 추징한 거다. 예컨대 현직 대통령일 때 '돈세탁'을 했다면 이에 대해선 추징하기 어렵다. 1993년 수사할 때만 해도 대우·삼성 등 굵직한 몇몇 기업의 뇌물만 조사했고, 중견기업들은 조사하지 못했다. 아예 발견하지 못한 돈이 꽤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수사한 시기와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본격 수사가 시작된 시기는 '2년'의 차이가 난다. 이는 자금을 은닉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본다."
2년의 차이라면….
"1993년 수사할 때 나는 노태우 비자금의 존재만 확인했을 뿐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 전 정권 관련 비리를 파헤치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본격 수사는 1995년 10월 시작된다. 노 전 대통령 임기는 1988년 2월부터 1993년 2월까지였다. 퇴임 후부터 수사까지 기간은 약 3년이다. 취임부터 계산하면 8년이다. 이 기간은 돈세탁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번에 이혼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김옥숙 메모'에 적힌 돈 904억5000만 원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전 굴리던 돈이다. 요즘 세간에 '왜 이 돈을 발견하지 못했냐'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수사 자체가 몇 년 뒤 이뤄졌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만약 1993년 수사가 중단되지 않았다면 더 완벽하게 노태우 비자금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추징금을 납부할 돈이 없다"며 '맡긴 재산을 돌려달라'는 명목으로 동생 노재우 씨와 사돈 신명수 신동방그룹 회장과 민·형사 소송을 벌였다. 결국 노 씨가 150억 원, 신 회장이 80억 원을 대납하기로 합의를 보면서 노 전 대통령은 2013년 9월 추징금을 완납한다.
하지만 추징금을 납부할 돈이 없다고 한 노 전 대통령의 말과 달리 발견되지 않은 돈이 더 있을 거라는 정황이 나왔다. 김옥숙 여사가 장남 노재헌 씨가 관련된 공익법인에 100억 원대에 달하는 거액 자금을 기부한 것. 노 씨는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과 '보통사람들의 시대 노태우 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공시에 따르면, 김 여사는 2016년 10억 원을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한 2021년까지 총 147억 원을 '동아시아문화센터'에 기부했다. 2020년엔 95억 원을 기부했다. 지난해엔 '보통사람들의 시대 노태우 센터'에 5억 원을 기부해 김 여사의 기부액은 총 152억 원에 이른다. 김 여사는 평생 소득 활동을 한 적이 없어 이 자금 출처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편법 증여' 논란도 일고 있다. 함 변호사는 이에 대해 "추징되지 않은 노태우 비자금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추징되지 않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더 있을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대법원이 뇌물로 '확정'된 액수에 추징을 선고했다는 점이다. 즉 발견된 돈 가운데 뇌물로 인정된 것만 추징한 거다. 예컨대 현직 대통령일 때 '돈세탁'을 했다면 이에 대해선 추징하기 어렵다. 1993년 수사할 때만 해도 대우·삼성 등 굵직한 몇몇 기업의 뇌물만 조사했고, 중견기업들은 조사하지 못했다. 아예 발견하지 못한 돈이 꽤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수사한 시기와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본격 수사가 시작된 시기는 '2년'의 차이가 난다. 이는 자금을 은닉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본다."
2년의 차이라면….
"1993년 수사할 때 나는 노태우 비자금의 존재만 확인했을 뿐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 전 정권 관련 비리를 파헤치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본격 수사는 1995년 10월 시작된다. 노 전 대통령 임기는 1988년 2월부터 1993년 2월까지였다. 퇴임 후부터 수사까지 기간은 약 3년이다. 취임부터 계산하면 8년이다. 이 기간은 돈세탁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번에 이혼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김옥숙 메모'에 적힌 돈 904억5000만 원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전 굴리던 돈이다. 요즘 세간에 '왜 이 돈을 발견하지 못했냐'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수사 자체가 몇 년 뒤 이뤄졌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만약 1993년 수사가 중단되지 않았다면 더 완벽하게 노태우 비자금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뇌물로 잘살게 해주는 판결이 말이 되나"
김 여사의 '메모' 이야기가 나오면서 인터뷰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로 흘렀다. 노 관장 손을 들어준 2심 판결에 대해 함 변호사는 "판결 근거야 분명히 있겠으나 의구심이 남는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점쟁이가 아니고서야 양쪽의 말만 듣고 판단할 수는 없는 거고, 결국 증거가 중요하다.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판사가 어떤 판결을 내릴 땐 '자유심증주의(증거의 증명력을 적극적·소극적으로 법정(法定)하지 않고, 이를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일임하는 주의)'에 따라야 한다. 다만 자유심증은 논리와 경험에 맞아야 한다. 재판부는 300억 원을 노 전 대통령이 SK그룹 측에 준 것으로 봤는데, 이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어째서 그런가.
"300억 원을 현금으로 줬다고 치자. 현실적으로 이를 어디에 감추나. 300억 원이면 당시 사과 궤짝으로 최소 200~300개 분량이다. 설령 감췄다 해도 이를 선경 측이 지정한 어느 은행으로 옮겨야 할 텐데, 은행에 그런 공간이 있지도 않고 누가 옮기겠나. 그러면 수표를 줬다고 치자. 300억 원어치 수표를 끊으려면 계좌에 300억 원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계좌번호가 뭔지, 적어도 누구 명의의 계좌였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닌가. 여러모로 논리와 경험에 어긋나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왜 그렇게 판단했을까.
"그 나름대로 이유는 있겠으나 이런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의도가 궁금하다. 타당함을 떠나 재판부에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재판부가 300억 원을 노태우 비자금으로 인정하면서도 딸에게 1조3808억 원의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이게 말이 되나. 흔히 비자금이라고 말하지만 이를 법률용어로 바꾸면 '범죄수익'이다. 즉 뇌물, 마약, 성매매 알선, 도박 등 범죄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라는 뜻이다. 이걸로 본인은 물론, 대를 이어 잘살게 해주는 게 과연 맞는가. 노 관장이 재산분할로 받게 된 돈의 씨앗이 비자금이라고 한다면, 이를 법이 인정해 주는 게 맞느냐는 말이다. 재판부는 이혼소송 중 재산분할이라는 미시적 문제에 중점을 두고 판결한 듯한데, '법에 의한 정의'라는 더 큰 대의를 생각해서 판결해야 한다고 본다."
300억 원 비자금이 부정한 돈임을 확신하는가.
"당연한 것 아닌가. 그 돈이 뇌물이 아닐 가능성은 단 0.1%도 없다. 당시 300억 원이면 지금으로 치면 한 3000억 원 될 거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대부분 군인으로, 잠시 정치인을 하던 사람이 그 큰돈을 어떻게 마련했겠나."
"부정한 돈은 3대가 지나도 환수해야"
다만 함 변호사는 "재판에서 '김옥숙 메모'를 밝힌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며 향후 숱한 추징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실제 세무·사법 당국과 정치권·시민사회 등 각계에서 노 관장 일가에 대한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8월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강민수 국세청장은 "재판 과정에서 나온 것이든, 소스가 어디든 과세해야 할 사안이면 당연히 과세해야 한다"고 밝혔고, 9월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김 여사의 메모에 적힌 자금 목록에 대해 "세금 포탈이 확인되면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0월 8일 국정감사에 비자금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노 관장과 노 이사장, 김 여사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당사자들은 출석하지 않았다. 이날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검찰과 국세청이 2007~2008년 노 전 대통령 일가의 214억 원 규모 비자금 존재를 알고도 묵인했다"며 "김 씨는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차명으로 농협중앙회에 210억 원의 보험료를 납입했다. 이는 김 씨가 1998년 '904억 원 메모'를 작성한 직후로, 더는 돈이 없다고 호소하며 추징금 884억 원을 내지 않던 시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5·18 기념재단은 10월 14일 노 관장, 노 이사장, 김 여사를 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히면서 "노 관장은 메모를 법원에 제출해 그동안 부정 축재 은닉 재산의 실체를 스스로 인정했다"며 "은닉재산을 상속받고도 재산의 존재를 은폐하고 상속세도 포탈했다"고 주장했다.
노 관장이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김옥숙 메모'를 꺼낸 것을 '악수(惡手)'로 보나.
"자충수로 본다. 그걸 꺼내면 당연히 세간에 오르내릴 게 뻔한 일 아닌가. 천문학적 재산을 분할받았다고 해도 그 돈이 자기 돈이 돼야 의미가 있지…. 만약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면 더 어리석었다. 지금이라도 300억 원이 '받을 돈'이었고, 실제 받진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범죄수익이 되진 않으니 그나마 빠져나갈 구멍은 생기는데…. 내가 안 먹어도 좋으니 상대를 혼내주고 싶다면 지금 주장을 고수하고, 일만 커진다 싶으면 발을 빼는 게 맞지 않겠나."
노태우 비자금 재수사 및 추징·환수를 촉구하는 여론이 거세다. 일각에선 1000억 원이 넘는 미추징 비자금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철저히 수사해 환수해야 한다. 설령 3대가 지났더라도 부정한 돈으론 절대 잘 먹고 잘살아선 안 된다는 법 원칙을 세워야 한다. 미국만 해도 범죄 수익에 대해선 일단 혐의자의 전 재산을 몰수하고, 혐의자가 부정하게 번 돈이 아님을 소명한 금액은 돌려준다. 반면 한국에선 현행법상 수사·판결을 통해 범죄수익으로 인정된 부분만 몰수한다. 그러다 보니 범죄자가 뇌물죄로 추징금을 내고, 징역을 살고 나와도 나중에 보면 이전보다 더 잘산다. 숨긴 돈으로 호의호식하는데, 이게 과연 정의일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비자금도 노 전 대통령이 과거에 인정한 4500억~4600억 원의 비자금 외의 돈, 즉 스스로 밝힌 돈 외에 따로 챙겨둔 돈이다."
환수가 가능할까.
"법 정의와 헌법이 규정한 '소급금지원칙' 간 균형을 잡아야 할 것 같다.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 사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을 회수할 때도 소급입법을 통해 수사한 것이다. 요즘 국회가 위헌적인 법도 마구 만들어내는데 그 정도야 못할 게 뭐 있겠나(웃음)."
8월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강민수 국세청장은 "재판 과정에서 나온 것이든, 소스가 어디든 과세해야 할 사안이면 당연히 과세해야 한다"고 밝혔고, 9월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김 여사의 메모에 적힌 자금 목록에 대해 "세금 포탈이 확인되면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0월 8일 국정감사에 비자금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노 관장과 노 이사장, 김 여사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당사자들은 출석하지 않았다. 이날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검찰과 국세청이 2007~2008년 노 전 대통령 일가의 214억 원 규모 비자금 존재를 알고도 묵인했다"며 "김 씨는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차명으로 농협중앙회에 210억 원의 보험료를 납입했다. 이는 김 씨가 1998년 '904억 원 메모'를 작성한 직후로, 더는 돈이 없다고 호소하며 추징금 884억 원을 내지 않던 시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5·18 기념재단은 10월 14일 노 관장, 노 이사장, 김 여사를 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히면서 "노 관장은 메모를 법원에 제출해 그동안 부정 축재 은닉 재산의 실체를 스스로 인정했다"며 "은닉재산을 상속받고도 재산의 존재를 은폐하고 상속세도 포탈했다"고 주장했다.
노 관장이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김옥숙 메모'를 꺼낸 것을 '악수(惡手)'로 보나.
"자충수로 본다. 그걸 꺼내면 당연히 세간에 오르내릴 게 뻔한 일 아닌가. 천문학적 재산을 분할받았다고 해도 그 돈이 자기 돈이 돼야 의미가 있지…. 만약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면 더 어리석었다. 지금이라도 300억 원이 '받을 돈'이었고, 실제 받진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범죄수익이 되진 않으니 그나마 빠져나갈 구멍은 생기는데…. 내가 안 먹어도 좋으니 상대를 혼내주고 싶다면 지금 주장을 고수하고, 일만 커진다 싶으면 발을 빼는 게 맞지 않겠나."
노태우 비자금 재수사 및 추징·환수를 촉구하는 여론이 거세다. 일각에선 1000억 원이 넘는 미추징 비자금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철저히 수사해 환수해야 한다. 설령 3대가 지났더라도 부정한 돈으론 절대 잘 먹고 잘살아선 안 된다는 법 원칙을 세워야 한다. 미국만 해도 범죄 수익에 대해선 일단 혐의자의 전 재산을 몰수하고, 혐의자가 부정하게 번 돈이 아님을 소명한 금액은 돌려준다. 반면 한국에선 현행법상 수사·판결을 통해 범죄수익으로 인정된 부분만 몰수한다. 그러다 보니 범죄자가 뇌물죄로 추징금을 내고, 징역을 살고 나와도 나중에 보면 이전보다 더 잘산다. 숨긴 돈으로 호의호식하는데, 이게 과연 정의일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비자금도 노 전 대통령이 과거에 인정한 4500억~4600억 원의 비자금 외의 돈, 즉 스스로 밝힌 돈 외에 따로 챙겨둔 돈이다."
환수가 가능할까.
"법 정의와 헌법이 규정한 '소급금지원칙' 간 균형을 잡아야 할 것 같다.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 사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을 회수할 때도 소급입법을 통해 수사한 것이다. 요즘 국회가 위헌적인 법도 마구 만들어내는데 그 정도야 못할 게 뭐 있겠나(웃음)."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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