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원이 지탱해 온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

안교재 유연에이에프 대표·경기조정협회장 2026. 1. 15.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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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경험 등이 산업의 토대
클러스터 이전 단순한 이동 아냐
단기 효율보다 기반 안정성 먼저
준비 미흡땐 균형발전 훼손 위험

안교재 유연에이에프 대표·경기조정협회장

반도체 산업은 수원에 뿌리를 둔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다. 수원과 경기 남부권은 단순히 공장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다. 설계와 공정, 장비와 소재, 유지보수와 긴급 대응까지 수많은 기능이 촘촘히 연결돼 작동해 온 유기적 공간이다. 이 집적된 구조 속에서 기업과 협력사, 인력이 함께 성장했고 그 축적이 오늘날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토대가 되었다.

반도체 산업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불량 비율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한 반복된 시행착오, 공정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현장을 지켜온 협력사들의 경험, 그리고 문제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노하우와 신뢰가 지금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반도체 산업이 첨단 기술 산업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산업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제기되는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 논의는 단순한 입지 선택의 문제로 다뤄질 수 없다. 반도체는 공장 하나를 세운다고 곧바로 생산이 시작되는 산업이 아니며, 위치를 바꾼다고 즉시 성과가 따라오는 산업도 아니다. 한 번 균형이 흔들리면 정상 궤도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회복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논쟁에서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디로 가야 유리한가’가 아니라, ‘산업이 충격을 받아도 다시 작동할 수 있는 구조인가’이다.

반도체 산업은 사용하는 자원의 규모만 보아도 이미 ‘대도시’에 가깝다.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하나가 소비하는 전력은 중대형 신도시 한 곳의 사용량에 맞먹고, 공정에 필요한 수자원 역시 수십만 명이 생활하는 도시의 하루 사용량과 비교될 정도다. 전기와 물은 단순한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이 흔들리는 순간 산업 전체가 멈출 수 있는 생명줄이다. 반도체 산업을 다룬다는 것은 산업단지를 넘어 도시 하나를 안정적으로 경영하는 문제를 함께 다루는 일이다.

이 지점에서 행정이 고민해야 할 기준은 ‘국제경쟁력’이라는 결과 지표만이 아니다. 예기치 않은 충격에도 산업이 무너지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구조, 즉 ‘회복탄력성’이 중요하다. 국가 기간산업을 다룰 때 단기 효율이나 속도보다 전력·수자원·인력·공급망 등 기반의 안정성을 먼저 살펴야 하는 이유다.

반도체 산업은 특정 기업의 단독 역량으로 성패가 갈리지 않는다. 수원을 비롯한 경기 남부권에는 수천 개의 협력사와 복잡한 공급망이 존재한다. 이 협력 구조는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불량과 공정 이상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된 산업의 안전장치다. 이러한 생태계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외국에 의존하던 반도체 산업 구조를 스스로의 힘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준비되지 않은 산업 부지 이전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이 안전장치를 해체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 협력사와 인력, 전력과 수자원 공급 체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급격한 이전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을 오히려 훼손할 위험이 크다.

지역 균형발전은 반드시 필요한 방향이다. 다만 그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방식이다. 단번에 옮기는 이전이 아니라, 기능을 분화하고 역할을 나누며 산업 생태계가 스스로 확산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균형발전이다. 기존 집적지를 단번에 비우는 이전이 아니라,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다핵 구조를 만드는 것이 도시를 경영하는 행정의 책임이다.

수원은 반도체 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품고 있는 도시다. 산업의 뿌리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를 상대로 미래를 설계하는 핵심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전이 필요하다면 그 논의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산업이 버틸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지키며 확산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결단이 아니라, 도시 하나를 경영하듯 산업 하나를 책임 있게 관리하는 자세다. 그것이 수원이 지탱해 온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안교재 유연에이에프 대표·경기조정협회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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