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센 갯벌이 장화 '꿀꺽' 절대 혼자 걷지 마시라 [안면도 해안둘레길]
해안은 원석의 세상이다. 모래사장 몇 개 대충 이어져 그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굽이칠 때마다 매 순간이 놀랍다. 바닷물이 토닥토닥 만진 그 모양이 사람 미치게 한다.
우리나라 어디서건 고개만 돌려 보더라도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주변 땅보다 높이 솟은 게 산이라면 주변 물보다 높이 솟은 게 섬이다. 산과 섬. 어쩐지 이 둘이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산만큼 섬도 많다. 크고 작은 3,382개의 섬들 중 유인도는 464개, 무인도는 2,918개다. 이 많은 섬들 중 이번에 끌린 것이 안면도다. 원래 안면'곶'으로 육지였다가 조선 인조 1638년 운하 사업으로 섬이 된 사연이 있다고 하니 무척 신기했다. 그래서 불타는 여름, 직접 안면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닌 우리만의 길을 찾았다.
이 길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물 빠진 갯벌이나 크고 작은 자갈밭, 바위, 모래사장, 제방둑, 염생식물이 자라는 풀숲, 해안 암릉, 바다와 인접해 있는 밭 또는 산, 여의치 않을 때는 신발을 벗거나 장화를 신고 바닷물 속에 빠져 걷는 98km다.
안면도는 우리나라 여섯 번째로 큰 섬
차량을 가져 온다면 한갓진 드르니항에 주차하면 좋다. 이국적인 느낌의 드르니항의 이름은 '들르다'는 뜻의 우리말이다. 주차장도 넓고 해안경찰출장소가 옆에 있어 안심이 된다. 꽃게 모양을 한 대하랑꽃게랑 다리를 건너면 백사장항이다. 1970년 차량 통행이 가능한 안면대교와 안면연육교가 만들어지면서 통행이 가능해졌고, 태안의 랜드마크가 된 대하랑꽃게랑(인도교) 다리도 2013년에 추가로 만들어졌다.
안면도는 면적 113.46㎢, 해안선 길이 120㎞로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 남해도, 강화도 다음인 여섯 번째로 큰 섬이다. 인조 때 먼저 의도했던 대로 굴포운하 공사가 제대로 됐다면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 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백사장항으로 들어서면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들이 두 눈을 현혹시킨다. 한 곳을 찾아 들어가 밥 먹고 본격적인 안면도 한 바퀴 걸음을 시계방향으로 진행한다. 가장 중요한 건 물때. 항상 어플을 열어 만조와 간조를 확인해야 한다. 지도 보는 것만큼이나 필수적이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다.
창기리 해안가를 지나는데 커다란 돌이 하나 서 있다. 일행 중 하나가 그 옆을 지나는데 5m는 족히 되어 보인다. 안내판 속 이 녀석 이름이 '선바위'란다. 지역 주민분 말에 따르면 선바위는 수컷 바위라고 한다.
지도로만 봤을 때는 안면곶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려 섬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직접 걸어 보니 분명해졌다. 안면연육교와 안면대교 부분 물길 양옆으로 힘이 없는 벽이 무너지지 않게 커다란 돌들로 사면을 차곡차곡 마감해 놓았다. 그 돌들 사이로 발이 빠지지는 않을까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조금은 긴장한 채 건너왔다. 그곳을 바라보니 그토록 궁금했던 판목·안면운하 절개지가 바로 이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붉은 융단처럼 깔린 나문재
인조 때 이곳에 운하가 건설된 사유는 이렇다. 곡창지대인 삼남(경남, 전남, 충남)지방에서 바닷길로 곡물을 수송해 수도로 이송하곤 했는데, 태안 앞바다 안흥량(난행량)은 특히 물길이 험해 세곡을 실은 조운선의 피해가 심했다. 선박의 난파사고로 부서지거나 침몰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이며 세곡 피해까지 해마다 거듭되었다.
해결 방안으로 천수만과 가로림만에 배가 다닐 수 있는 굴포운하를 건설하자는 안이 대두되었다. 성공만 하면 서해 연안 안흥량의 험한 물길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니 당시로는 대단한 묘책이었을 터였다.
고려 인종(1134년)부터 조선 현종(1669년) 때까지 무려 535년 동안 운하 건설 시도는 10여 차례가 넘도록 이어졌다. 그러나 단단한 화강암이란 벽을 넘지 못했고, 어렵게 뚫어도 다시 메워지기를 반복했다. 결국 마지막 대안으로 찾은 것이 천수만에서 서해의 물길, 현재의 안면운하다. 안면도는 1638년에 이렇게 육지와 떨어져 섬이 되었다.
산길은 그늘이라도 만나건만, 그늘 한 점 없는 해안길은 해를 머리에 이고 걷는 게 다반사다. 지칠 무렵 창기리 광신조선소 건물 마당을 지나 입구 쪽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을 만난다. 가던 길 멈춰 배꼽에 손 얹고 "안녕하세요. 어르신들"하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커다란 배낭 짊어지고 다가오는 우리를 보며 쉬어가라고 곁을 기꺼이 내어 주신다. 어디서 왔고 어떻게 걷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그러다보니 더운데 고생이 많다며 냉장고 속 시원한 물도 꺼내 주시고, 안면도에 와서 걸어주니 고맙다고 말씀해 주신다. 인사만 잘해도 반은 간다.
울뚝불뚝 돌 위를 걷자니 앞으로 옆으로 쏠리기 일쑤고 그러다보면 물집도 잘 잡힌다. 배낭의 묵직한 무게가 더해지니 어깨며 발바닥, 발가락 등 어디 하나 신경이 곤두서지 않는 곳이 없다. 이런 길을 자주 걸어봤던 이들과 처음 걸어보는 이들의 차이는 극명하다. 이것이 '경험치'라는 것. 경험자는 몸도 마음도 소란스럽지 않다. 하지만 비경험자는 고통에 당황하게 되고 극도로 예민해진다. 고통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오롯이 자신의 몫일 뿐.
돌로 된 석조石鳥 3마리가 반겨주는 안면도 속의 또 하나의 섬, 쇠섬 전체를 유럽풍 펜션으로 꾸며 만들어 놓은 나문재펜션 해안길을 지나간다. 지금은 간척으로 육지처럼 연결되어 있는 곳으로 천수만 물길 너머 간월암과 서산A지구방조제가 보인다.
바위 구간을 돌아 나가 둑 위로 올라서니 염전인 듯 간척지의 모습과 바닷가에 자라는 염생식물 나문재가 붉은 융단처럼 깔린 모습이 장관이다. 바닷가에서 나물반찬으로 자주 해먹으니 질리기도 하고 맛도 없어 늘 밥상 위에 남는 채소라는 '남은채'에서 나문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갯벌 갈대숲길을 지나 조금 더 걷다가 만나는 곳, 능쟁이마을 표지판이 서 있다. 능쟁이는 갯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녀석들로 차고 넘친다는 뜻의 칠게란다. 식탁에 반찬으로 오르는 한입거리 조그만 게로 먼 길 날아온 도요새와 갯벌의 강자 낙지도 좋아하는 먹거리다.
멀리서 다가가며 본 안면암은 높이 솟아 있는 탑이나 건물 양식이 우리나라 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경했다. 지명 스님을 따르던 신도들에 의해 1998년에 지어진 절이라고 한다. 안면암 앞바다의 부상탑浮上塔은 이름 그대로 '물 위에 떠 있는 탑'이다. 썰물로 물이 빠져 있으니 배낭 내려놓고 한 바퀴 돌아본다. 부상탑은 2009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을 때 안면암의 불자들이 태안군민과 이 나라의 태평과 안녕을 기리고자 만들었단다. 썰물 때는 갯벌 위에, 밀물 때는 바닷물 위에 뜨는 탑이라니 기발한 아이디어고, 그 마음이 보살이다.
장화 하나쯤은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울 수 있는 갯벌
29km 지점의 정자와 평상에서 1박을 하고 일어나 랜턴을 밝혔다. 독개마을에서 중장리로 향하는 새벽 해안길. 날이 밝자 장화를 신고 걸어본다. 장화의 유무에 따라서 갈 수 있는 해안길의 폭이 달라진다. 물론 만능은 아니니 조심해야 하며, 자칫 잘못하다가 갯벌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수가 있다. 걸어본 경험상 힘이 센 갯벌은 발목만큼만 빠져도 성인 남자도 빠져나올 수 없다. 혼자일 땐 갯벌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갯벌이 아침부터 출출했던지 일행 중 한 분의 장화를 꿀꺽 하고 말았다. 다행히 곁에 다른 분들이 있어 도움 받고 빠져나오긴 했는데, 없었다면 어땠을까? 갯벌 힘이 얼마나 센지 겪어보지 않았다면 절대 객기 부리지 말자.
한편 장거리 걷기의 배낭은 좀 두둑해야 걷는 재미가 있다. 몸에 고통을 좀 더 얹어 준다. 고생 좀 해보려고 나선 길이니 편하게 걸으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같이 걷는 사람들을 위해 비상약도 챙겨야 하고, 물 한 병 정도 더 넣게 되며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사탕이나 육포 등이 담겨진다. 내가 먹으려고 챙기는 건 아니고, 일행이나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위한 용도다. 배낭의 크기가 커지는 만큼 마음도 커진다.
내포항을 지나 물이 빠져 있으니 대야도마을의 묘도卯島, 토끼섬으로 들어가 본다. 토끼섬은 토끼를 닮았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지만 토끼섬 옆의 섬은 들어가 보니 거북이 모양이다. 토끼와 거북이라니, 이 둘은 밤마다 경주를 하려나, 용궁으로 가자고 싸우려나?
안면도 해안에는 칠게 외에 흰발농게도 꽤 많이 살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흰발농게는 한쪽 집게다리가 흰색으로 매우 커서 해안길을 걷다보면 유독 눈길이 간다. 수컷만 이런 생김이고 암컷은 일반 게처럼 집게발 양쪽이 똑같이 작다. 귀여운 흰발농게 작다고 만만히 잡아보려 덤비다가 물리면 눈물 찔끔 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장곰항을 지나며 낚시용품 매점에서 음료수와 물 등을 구비한다. 해안가는 마트나 편의점 같은 곳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며, 제법 큰 항구나 유명 해수욕장 등이 아니면 식당 구경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낚시용품 매점이 오아시스다. 보이면 물 만난 고기마냥 약속이나 한 듯 다들 뛰어 들어간다.
우리나라 해안길엔 참 신기한 곳들이 많다. 물의 마법인지 어느 곳은 모래로만 되어 있고, 또 어떤 곳은 바위로만, 자갈들로만, 갯벌로만 된 곳도 있다. 그렇게 크기별로 종류별로 모아놓기도 힘들 거 같은데, 한 굽이 돌때마다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지는 별천지 세상이다.
영목항까지 왔다면 안면도 동쪽 해안은 모두 걸었고, 이젠 서북쪽을 향해 가게 된다. 영목항은 안면도에서 번화한 곳으로 식당들이 제법 있어 식사도 하고 물자도 보충할 수 있다. 이곳이 아니면 한동안 식당도 슈퍼도 아무것도 없다.
영목항에는 산보다 높은 것이 있다. '영목항전망대'로 높이 51.26m다. 해당화 모습을 본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22층 전망대에서는 영목항과 원산안면대교, 서해 바다 모두 조망 가능하다. 특히 해 질 무렵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하기에 최고라고 한다.
한편 안면도 한 바퀴에선 3곳 정도 약간 위험한 구간이 있다. 장곰항 지나서 물이 차올라 있던 해안 바위길과 영목항 지나서 앞이 가로막힌 바위 낭떠러지 등이다. 조금만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다. 영목항 낭떠러지는 먼저 내려간 일행이 있어서 어미를 따르는 오리 새끼처럼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조개부리 마을인 옷점항, 바람아래해수욕장을 지나면 근골을 자랑하는 바위 구간이다. 여긴 사람 하나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 있다. 산뿐만 아니라 바다에도 이렇게나 멋진 바위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로댕 급의 천재 조각가가 한평생을 바쳐 만들어도 이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꽃지해수욕장의 할미 할아비 바위
운여해수욕장 지나 갯골은 물이 얼마나 차올라 있을지 감 잡을 수 없어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한동안 물속을 첨벙거리며 길을 이어간다. 모래사장에서 다시 바위 구간이 이어진다. 곧 조선시대 이곳을 지나는 세곡선의 난파가 잦았다던 '쌀썩은여' 인근을 지난다. 커다란 덩어리의 바위들이 가득, 해안이 이정도면 바다 속은 이보다 더 큰 암초가 많아 위험할 듯싶다.
샛별해수욕장에 도착해 2일차를 종료한다. 마을 청년들이 운영한다는 포장마차에서 라면으로 저녁 식사 후, 마을 분들의 배려로 좋은 장소를 소개받아 덕분에 하룻밤 잘 쉬어간다.
깊은 밤이 지나갔다. 이제 고려시대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충남 아산만 영흥도를 거쳐 수개월간 주둔했다던 병술만이다. 군사들의 훈련장을 뜻하는 병술안兵術岸에서 '병술만'이란 이름이 유래됐다.
둔두리산 해안길은 절벽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사이사이 골마다 숨바꼭질하면 딱 좋겠다. 빗살무늬토기마냥 사선이 그어져 있다. 걸어갈수록 바위 절벽 규모에 입이 점점 더 크게 벌어진다. 압도적인 규모에 홀려 걷다가 순간 다들 얼음이 된다. 앞으로 한 발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발 디딜 곳은 없다. 산으로 올라갈 수도 없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이런 해안길은 무리해서 진행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우리도 더 이상 미련두지 않고 되돌아 나간다.
꽃지해수욕장의 할미 할아비 바위는 한 쌍의 바위섬이다. 두 바위 뒤로 해넘이 경관이 뛰어난 낙조 명소다. 이곳 지명이 승언리인데, 장보고의 부하 승언이 안면도 사령관으로 있었다. 승언과 미도 부부는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장보고의 명령을 받고 떠나면서 승언은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겼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미도는 기다리다가 바위로 변했다. 시간이 흘러 바위로 변한 미도 옆에 다른 바위가 생겨나자 사람들은 이 두 바위를 '할미 할아비 바위'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꽃지해수욕장을 지나 다리 하나 건너가면 방포항. 천연기념물인 모감주 자생 군락지다. 6~7월에 노란색 꽃이 피며, 9~10월에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로 고승들이 염주를 만들었다고 해서 염주나무라고도 부른다. 또 이 나무를 집에 심으면 아픈 사람이 없다고 하여 무환자나무라고도 불린다. 나뭇가지는 사악함을 제거하고 귀신도 죽일 수 있다고 한다.
앞만 보며 걷다 보니 출발지 백사장항
안면도 서쪽 해안은 국립공원 지역이며 해수욕장이 많다. 방포항을 지나 조금 더 가다보면 물기 머금어 기름칠을 해놓은 것처럼 반질반질한 모래사장의 방포해수욕장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또 두에기해수욕장으로 가다가 만나는 승언리 해안가에 바위들은 층층의 흑임자떡을 먹기 좋게 잘라놓은 듯 흩뿌려져 있고, 몇 천 년 묵은 커다란 버섯이 돌처럼 굳어 있는 듯한 바위도 예사롭지 않다.
두여해수욕장과 안면해수욕장을 지나 걷다 보니 개울 같던 물길이 나타나 건너야 했다. 기지포해수욕장을 지나 삼봉해수욕장까지 가도 가도 해수욕장이다. 삼봉전망대에 올라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바라본다. 이제 안면도 해안길을 거의 다 걸었다. 3일간 걸으며 만났던 사람들, 도움 준 분들, 함께했던 일행들의 얼굴이 앨범을 넘기듯 하나하나 떠오른다.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이제 안면도 마지막 해수욕장인 백사장해수욕장을 지나면 백사장항이다.
걸어보니 안면도는 참 착한 땅이다. 수백 년의 시도 끝에 결국 땅이 잘려나가 섬이 되고도 사람들을 가만히 품어주고 있다. 고맙고, 짠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걷기를 좋아하는 내게 산山이 못 잊어 생각나는 친가라면, 외가는 문득문득 그리운 바다라 하겠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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