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속·증여는 더 이상 일부 초고액 자산가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상속세 대상이 늘어난 데다, 가업승계와 유류분 분쟁 이슈까지 겹치면서 중견·중소기업 오너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송정회계법인 상속증여센터 이우용 대표는 “과거에는 상속 개시 후 신고를 잘하고 세무조사에 대응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생전 증여와 가업승계, 가족 간 분쟁까지 사전에 고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일 서울 서초구 송정회계법인 사무실에서 <블로터>와 인터뷰를 통해 최근 상속·증여 시장의 변화와 가업승계 현장에서 느끼는 고민들에 대해 소개했다.
세금보다 중요한 건 리스크 관리…10년·20년 뒤까지 설계한다
“상속과 증여에서는 절세 자체보다 실제 실행 가능성과 가족들의 수용 가능성이 더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절세 효과가 크더라도 사후관리 부담이나 가족 간 갈등 가능성 때문에 기존 계획을 바꾸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한 제조업 기반 중소기업의 경우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충족해 수십억원 규모의 세금을 줄일 수 있었음에도 이를 포기하고 형제들이 지분을 나눠 상속받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 제도상으로는 상속인 1명이 회사를 모두 승계해야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었는데, 가업을 물려받기로 한 장남이 향후 상속세 추징 리스크를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특히 장남이 받게 되는 자산이 현금이 아닌 비상장주식이라는 점도 고민이었다. 향후 업황 악화나 경영 환경 변화 등으로 사후관리 요건을 지키지 못할 경우 수십억원 규모의 상속세가 다시 부과될 수 있는데, 이를 장남 혼자 현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은 가업상속공제를 포기했다. 형제들이 지분을 나눠 상속받고 수십억원의 세금을 추가 부담하더라도, 절세 효과보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와 관련해 “가업승계는 단순히 절세나 사전증여 여부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경영권 계획부터 후계자 지분 구조, 다른 상속인에 대한 보상, 상속세 납부재원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사의 경우에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더 많다. 내부 경영권 문제뿐 아니라 주가 변동성과 시장 평가, 기관투자자 반응까지 함께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과거 한 상장사 회장이 손자들에게 보유 주식을 증여했던 사례를 언급했다. 당시 회장은 주가가 비교적 낮은 수준이라고 판단해 증여를 진행했지만, 최대주주 할증과 세대생략 할증, 최고세율까지 적용되면서 손자들은 60%가 넘는 높은 실효세율의 증여세를 부담하게 됐다.
이후에는 주가 하락 문제가 발생했다. 당장 납부 재원이 부족했던 손자들은 연부연납과 차입을 통해 세금을 냈지만,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서 증여받은 주식 가치가 납부해야 할 세금보다 낮아지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 대표는 “짧은 기간 내 급락했다면 증여재산 반환 같은 대응 방안도 검토할 수 있었겠지만, 이 사례는 1년에 걸쳐 계속 주가가 하락해 그런 대응도 어려웠다”며 “최대주주 할증이나 세대생략 할증처럼 여러 요소들이 함께 적용되는 만큼 시장 상황까지 고려해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상속·증여 컨설팅도 단순 신고 업무보다 사전 설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비상장주식 평가와 지분 구조, 가업승계 방안, 유류분 리스크, 상속세 납부재원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기업 오너 고객들은 법인세나 배당정책, 가지급금, 자기주식 문제까지 모두 연결돼 있어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고객별로 여러 시나리오를 비교해 세금과 리스크를 함께 설명하는 방식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절세 규모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5년·10년 이후까지 가정해 자산 이전 효과와 사후관리 리스크를 함께 비교할 수 있도록 정리해드린다”고 덧붙였다.
“다 팔고 현금으로 주세요”…달라진 승계 고민
승계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자녀가 자연스럽게 회사를 물려받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2·3세들이 승계를 당연한 의무로 여기지 않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대표는 “특히 제조업 기반 중소기업들은 오너 의존도가 높고 지방 공장 운영 부담도 크다 보니 자녀들이 승계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는 다 팔고 현금으로 달라’고 이야기하는 사례들도 실제로 많다”고 말했다.
이에 송정회계법인 상속증여센터는 최근 한국M&A거래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기업 승계뿐 아니라 매각 자문까지 함께 검토하는 방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대표는 “이제는 단순히 세금을 줄이는 것을 넘어 회사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이어가거나 매각할지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상속·증여 과정에서 가족 간 충분한 소통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 첫 한 달은 가족 구성원들의 상황과 생각을 계속 듣고 자료를 정리하는 데 시간을 쓴다”며 “이후에야 구체적인 실행 방향이나 지분 구조, 증여 방식 등을 논의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세법상 좋은 구조라도 가족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 실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왜 이런 방식으로 재산을 나누는지 부모가 직접 설명하고 가족들이 충분히 공감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같은 증여라도 구조 따라 세액도 달라져"
이 대표는 상속·증여를 준비할 경우 가장 먼저 현금 흐름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순히 자산 규모만 볼 게 아니라 실제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재원이 있는지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많은 분들이 ‘10억원을 증여하면 세금이 얼마냐’ 정도만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세금을 누가 어떻게 낼 것인지까지 같이 봐야 한다”며 “현금 없이 부동산이나 비상장주식만 넘겼다가 나중에 세금 부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상속·증여를 너무 늦게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과거 은행이나 금융기관에서 간단한 상담만 받고 넘어갔다가, 실제 상속이 가까워진 뒤 뒤늦게 문제를 발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는 “상속·증여는 미리 준비할수록 선택지가 많아진다”며 “막상 상속이 임박한 뒤에는 시간에 쫓겨 할 수 있는 방법이 크게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단한 구조 점검만으로도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는 만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미리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상속·증여는 기업인이나 자산가들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충분히 마주할 수 있는 문제다. 비교적 흔한 규모의 증여라도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세금 부담 차이가 수억원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이 대표는 “거주자인 자녀에게 10억원을 남기려면 세금 납부 재원까지 고려해 약 13억5000만원을 증여한 것으로 신고해야 하고, 이 경우 증여세는 약 3억5000만원 수준”이라며 “반면 비거주자인 자녀는 부모가 증여세를 대신 내줘도 추가 증여로 보지 않아 10억원 증여에 세금 2억4000만원만 부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10억원 증여라도 거주자 여부나 납부 방식에 따라 실제 필요한 자금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상속·증여는 세금만이 아니라 현금흐름과 가족 상황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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