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때 걸그룹 데뷔해 잊혀질뻔 하다…끝까지 살아남은 소녀 근황

(Feel터뷰!) 영화 '딜리버리'의 권소현 배우를 만나다
영화 <딜리버리>는 유산상속을 이유로 임신이 필요한 금수저 부부 ‘귀남(김영민)’과 ‘우희(권소현)’와 가진 것 없던 백수였지만 어쩌다 보니 아이를 가지게 된 ‘미자(권소현)’와 ‘달수(강태우)’ 커플의 공동 태교 코미디다. 대리 임신과 출산, 영유아 거래라는 무거운 소재를 통통 튀는 네 인물의 시너지로 만들어 간다. 아이를 물건처럼 돈으로 거래하는 상황이 코미디로 진행되다가 중반부터 미자가 마음이 변하며 흐름도 급물살을 타며 모성애가 생긴다.

지난 15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당찬 MZ 임산부 ‘미자’를 연기한 권소현을 만났다. 어릴 때 데뷔해 걸그룹 ‘포미닛’의 막내로 활약했다. 어느덧 올해 서른인 권소현은 배우로 전향해 연기를 선보인 시간이 가수 활동 때를 넘어섰다며 사색에 잠겼다.

“어린 나이부터 일하다 보니 책임감이 커진다”“실제 성격은 미자의 모나 있는 부분보다는 둥그스름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3번 정도 참고 참다가. 말해도 괜찮다 싶으면 조곤조곤 말하는 편이다. (웃음)”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첫 스크린 주연작 <그 겨울, 나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으며 차기작 <딜리버리>에서는 앞길이 구만리지만 당장 오늘 사는 데 집중해야 하는 공시생 미자를 연기했다. 게임밖에 모르는 백수 남자 친구 달수는 최근 직장까지 그만두고 꿈도 미래도 포기해 버린 청춘이다. 현실감각에 무뎌진 청춘 커플에게 덜컥 원치 않는 임신까지 되자 고민이 커진다. 사랑한다고 다 낳을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한다. 준비된 것 하나 없는 커플은 임신중절을 시도하고, 이내 산부인과에서 뜻밖의 제안을 듣는다.

이왕지사 살아남은 아이의 생명력을 이용하자고 생각했다. 열 달 동안 잘 키워서 보내 주면 평생 잘 키워 주겠노라고 다짐 받는다. 그날 이후 커플은 원하는 돈을 받고 금수저 커플은 원하는 아이를 받는다. 겉으로 보면 일거양득,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로섬 게임 같아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영화는 미묘하게 변하는 마음의 온도를 미세하게 잡아내며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의 힘을 건넨다.

출산을 영어로 ‘딜리버리(delivery)’라고 쓴다. 배달. 손가락 몇 번만 두드리면 단 몇 시간 만에도 집 앞에 도착하는 택배와 같은 이중적인 의미다. 돈이 있어도 아이를 얻지 못하는 쪽과 아이를 키울 경제적 여건은 안 되지만 덜컥 임신부터 된 쪽의 균형 찾기다. 매년 출산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미자와 달수의 선택을 그저 비난만 하기란 쉽지 않다.

임신, 출산 장면
유튜브보고 지인 만나 빌드업

-<그 겨울, 나는> 이후 독립영화에 연달아 출연했다. 차기작으로 <딜리버리>를 선택한 기준은 무엇인가.

“<그 겨울, 나는>도 KAFA 작품이었다. 그때 쌓은 좋은 경험이 떠올라 선택했고 <딜리버리>의 오디션 겸 미팅을 했다. 다행히 그전에 대본을 읽고 만날 수 있어 캐스팅 어필을 강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임신이나 출산 장면의 고민보다는 무조건 하고 싶었다. 내외적 경험뿐만 아니라 감정 변화도 달라져 꼭 하고 싶었다. 여러 촬영장을 다녀봤지만 특별히 환영받는 기분, 현장의 행복감과 책임감도 크게 다가왔다”

-임신과 출산이란 과제가 담긴 ‘미자’를 만들기 위해 내외적인 혹독한 시간이 필요했겠다.

“전 작품의 영향으로 단발 스타일을 유지 중이었다. 미자의 까칠하고 뾰족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유해 보이는 긴 머리보다 짧은 스타일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임신은 몇 주차의 외형을 분석하고 정리해서 계획하에 변화를 주었다. 이에 따라 점점 분장 시간도 오래 걸렸다. (웃음) 당시 감독님의 아내분이 임신 중이라 리얼한 후기를 들으면서 캐릭터를 잡아갔다. 아무래도 경험치가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려다 보니 시청각 자료를 탐구하게 되더라. 출산 장면 브이로그, 유튜브를 많이 보고 참고했다. 그밖에 임신 경험자, 임산부 등 지인을 소개받아 많은 정보를 얻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불러오는 배, 튼살의 범위, 올라오는 기미, 심지어 출산 장면까지도 리얼하게 담았다.

“출산 장면은 세트가 아닌 병원에서 진행했는데 마음껏 소리 지르라는 주문이 있었다. 호흡도 차오르고, 힘 조절도 어려웠고, 의자도 낯설어서 부끄러운 감정부터 시작해..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값진 경험도 했다. 갓난아이도 처음 안아 봤다. 아이는 불편하니까 울고, 저는 혹시라도 떨어트릴까 봐 노심초사했다. 분유 냄새와 아이 냄새를 맡으니 자연스럽게 미자의 마음에 공감했고 슬퍼졌다”

-세상의 모든 엄마의 고충과 고통, 모성애를 뒤늦게 깨닫는 시간이었겠다.

“문득 엄마의 튼살이 생각났다. 저로 인해 생긴 영광의 상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가 임신 중에는 잘 챙겨 먹지도 못하고 산후조리도 잘 못해서 지금도 아프신 건가 싶다. 늘 마음이 아팠다. 어릴 적부터 맞벌이하셨던 엄마를 생각하니, 지금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는 미자의 선택을 따라가는 충분한 이야기를 전하지만 미자의 행동은 의아하다. ‘나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봤나.

“저라면 아이를 키울 것 같다. 그래서 미자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미자는 처음부터 애정도 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태동을 느끼고 조금씩 변한다. 혹시나 싶은 기형아 유무를 들었지만 정상이란 말을 듣고 결국 부잣집에 주는 선택을 하게 된다. 아이를 보내주고 떠난 이유도 ‘자기와의 약속’이지 않을까. 중절 수술을 하려다가 실패한 죄책감인지, 키우지 못하는 아픈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우희에게 받은 돈도 남겨두고 가는 거로 봐서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이 맞다고 믿는 미자의 판단이다”

-오랜 공시 준비를 쇼핑으로 푸는 철없던 미자가 배가 불러올수록 심경에 변화를 보인다.

“독립영화의 강점은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거다. 서로의 뇌를 공유하고 합을 맞춰야 시간 단축의 시너지도 생긴다. ‘우리는 질투심만 있을 뿐이지. 사랑이 뭔지 몰라’는 대사가 특히 어려웠다. 일상적인 말이 아니라서 편한 구어체로 제안했는데, 그 워딩이 주는 명확한 주제를 듣고 구어체로 표현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연이겠지만 한 작품에서 동명인과 호흡 맞추는 일은 드문 경험일 거 같다.

“이름을 보고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도 신기했다. 언니랑은 오래전부터 <마돈나>나 <미쓰백>을 보고 호흡을 맞춰 보고 싶었다. 예전부터 포털에 검색하면 언니랑 엎치락뒤치락 미묘한 경쟁심이 생겼었다. 제가 생각보다 아래 있으면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며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누가 먼저 앞에 나오더라도 서로 윈윈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꿈과 미래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달수, 남자 친구였던 강태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태우 오빠는 저를 돋보이기 위해 존재했다. 좋은 인상과 풍채만큼이나 너그럽고 배려심이 많은 분이다. 미자가 좀 더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한숨 나오는 캐릭터로 설정해 왔더라. (웃음) 미자의 날 선 마음을 잘 케어해 줄 수 있는 순둥하지만 답답한 캐릭터였다”

이제 서른, 여전한 책임감을 느껴

-경험하지 않았지만 결혼과 출산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저희 엄마가 서른 넘어 결혼한 편이다. 어릴 땐 막연히 젊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점점 나이가 드니 사랑만으로 어렵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경제적 준비, 정신적 성숙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선뜻해줄 수 있는 정도의 여건은 충족해야겠다. 무엇보다 저도 어른이 되어야 엄마 자격이 생기는 거 같다. 아이의 세상은 온통 엄마인데 엄마가 심적으로 힘들면 온전한 사랑을 나눠 줄 수 없게 된다. 제가 훗날 엄마가 된다면 친구와 멘토 중간의 사람이 되고 싶다. 유연한 엄마로 인식하길 바란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그룹 생활을 오래 하다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배우 전향 후 신념은 변함없는 건가.

“포미닛 활동할 때 너무 큰 사랑을 받아서, 배우가 되고서야 차이를 실감했다. 스타가 되기보다 꾸준한 배우가 되고 싶다. 안 해본 것도 해보고 싶다. 무지 차가운 인물, 빌런을 맡는다면 조금은 다른 세포를 꺼내보고 싶다. 몇 해 전만 해도 나이의 중압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현장에 00년생을 보니 격세지감이더라. 저를 배우로서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

-노래와 춤으로 무대 위 감정을 표현하는 가수와 대본을 보고 카메라 앞에서 계산된 연기를 펼치는 배우는 다르다.

“제가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 긴장을 무대에서는 에너지로 쓸 수 있었다. 카메라의 컷, 멤버들, 조명 등의 도움을 받으면 긴장감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연기할 때는 긴장이 독이 될 때가 많다. 경직되면 힘이 들어가고 혼자 해내야 할 땐 어렵고 예민해진다. 무대에서는 살이 잘 안 빠졌는데 작품 하면서는 살이 쏙 빠졌다”


걸그룹 '오렌지' (왼쪽부터) 김예지, 신은비, 권소현

-2005년 초등학생 걸그룹 ‘오렌지’로 총 19년 차 경력을 자랑한다. 배우로 어느덧 8년 차다. 롤 모델이 있나.

“함께 작품 했던 사이라서가 아니라. 실제로도 만나보니 정말 좋은 분이셨다. 빌런 역할을 잘하셔서 긴장했는데 선하고 유한 분이셨다. 주변에 김영민 선배님과 호흡 맞춘다고 하니 다들 칭찬만 하더라. 늘 겸손하고 배려심 넘치는 분이셨다. 오래 활동하는 이유도 명확했다. 촬영 내내 연기적으로도 기댈 수 있었고 좋은 장면이 나오리라는 기대감도 컸다”


-요즘 최대 고민, 앞으로의 계획은.


“INFJ라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다. 요즘은 빨리 일하고 싶다.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 같은 불안한 감정을 알게 되었다. 특히 주제 파악도 빠른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맞벌이하는 부모님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서 학원에 다닐 만큼 책임감이 강했다. 일찍 일해서 수입이 생겨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저만의 부담도 있는데, 아이돌 출신 배우의 선례가 되도록 잘해야 한다.참, 버킷리스트도 있다. 요즘 2세대 그룹이 많이 뭉치는데 문득 그립다고 생각했다. ‘싫어’라는 곡으로 활동할 때 저의 마지막 무대가 대학교 축제였다. 그게 마지막인지도 몰라서 내내 아쉬웠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 번이라도 무대에 서고 싶다”

글: 장혜령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딜리버리
감독
출연
이도희,장민준,김수빈,장민준,임민주
평점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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