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무것도 안냈다"는 트럼프, 집권하면 방위비 10배 인상한 13조 요구
11월 5일(현지시각)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가 초박빙으로 흐르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현지시간으로 15일 '시카고 경제클럽'에서 블룸버그통신 존 미클스웨이트 편집국장과 진행한 대담에서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내가 거기(백악관)에 있으면 그들(한국)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연간 100억 달러를 지출할 것"이라며, 자신의 재집권시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압박을 예고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규모를 "4만명"으로 거론하고, 한국이 직접·간접 비용으로 연간 약 30억 달러를 부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내지 않았다"는 가짜뉴스를 들먹이기도 했다.
또 "우리는 그들(한국)을 북한으로부터 보호한다"며 "북한은 핵무력이 상당한데, 나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매우 잘 지냈다"고 강조했다. 이는 "핵보유국 지도자와 잘 지내는 건 좋은 일"이라는 트럼프의 평소 지론을 재확인 것으로, 재집권시 대북 관계 개선을 통한 긴장완화에 나설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조선(북한)의 경의선·동해선 도로 폭파 소식을 듣고 "이것은 나쁜 소식"이라며 "오직 트럼프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남긴 것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이러한 발언들은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한국을 상대로는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조선을 상대로는 5년 동안 단절된 북미대화 재개에 방점을 찍을 것이라는 점을 추론케 한다. 하지만 이는 어울리는 짝이 아니다.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은 한미(일) 연합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한미동맹 강화와 궤를 같이 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될 경우 조선이 미국의 대화 제의에 응할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윤석열 정부가 트럼프의 대북 접근을 견제하기 위해 트럼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당선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장외'이지만, 한반도 정세와 긴밀히 연결된 변수도 있다. 트럼프가 조기 종식을 공언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이미 우크라이나 지원을 삭감하거나 중단하고 러시아에 대한 압박도 강화해 양측을 휴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겠다는 뜻을 내비쳐왔다.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려면 러시아의 최대 군사협력 국가로 의심받고 있는 조선도 압박하고 설득해야 한다. 조선이 러시아에 계속 군사력을 제공하는 상황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이나 종전을 도모하기도 쉽지 않아지고, 이런 조선을 상대로 정상회담이나 관계 개선을 추진한다는 것도 용이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조선이 트럼프의 요구에 순순히 응할지는 미지수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조선은 대러 무기 제공을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될 경우 북미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의 향배는 더욱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돌이켜보면,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 노딜'로 귀결된 배경 가운데 하나는 트럼프의 ‘딴 생각’이 있었다. 그는 '노딜'을 선언하면서 그 의도 가운데 하나가 치열한 전략경쟁, 특히 무역분쟁에 돌입한 미중관계에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또 한국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한 때도 이 즈음이었다.
트럼프의 관심사가 대북 협상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으로 옮겨가면서 마지막 기회도 유실되고 말았다. 그는 2019년 6월 30일 김정은 위원장과의 판문점 회동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한미 참모진이 8월 연합훈련을 실시하기로 7월 말에 방침을 정했는데도 그냥 넘어갔다. 대신 그가 참모진에게 물은 것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였다.
정리하자면, 트럼프 당선시 그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접근은 '한국에게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서 받겠다', '핵무기를 가진 김정은과 잘 지내는 일은 좋은 일이다', '24시간 이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 '중국과의 경쟁에 힘을 집중하겠다'는 등의 생각이 좌충우돌하면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야심이 노벨평화상 수상에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대통령 재임 때에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더 나아가 세계 3차 대전을 막았다며 노벨상 수상 자격이 있다고 강변한 바 있다. 올해 10월 11일 디트로이트 대선 유세에서도 "내가 노벨상을 원한다거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버락 오바마도 2010년에 노벨상을 받았는데, 왜 나는 받지 못했냐며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러한 질투심이 트럼프의 대외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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