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중독, 문화생태계의 '황소개구리'!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자신들의 니치'로 존재하던 컨텐츠 세계
유튜브, '사람의 욕구' 자극하며 독점화
극단적 혐오 선동, 저질 컨텐츠로 황폐화
황소개구리도 퇴출됐듯, 곧 경쟁력 잃을 것

생물의 생태계

생태계(生態界, ecosystem)는 상호작용하는 유기체들과 또 그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주변의 무생물 환경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위키 백과]. 생물뿐만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것들도 서로간에, 또는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존재하면 비유적으로 생태계라 한다. 예컨대 기업들도 생태계를 이루고 문화적 컨텐츠들도 생태계를 이룬다.

균형잡힌 생태계에는 여러 종의 생물들이 살고 있다. 어떤 종들은 같은 공간에서 생태적 지위(니치, niche)을 놓고 경쟁하고, 어떤 종들은 같은 공간에서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며 공생한다. 어떤 종들은 자기의 독특한 니치를 갖고 다른 종과의 경쟁 없이 환경과 교류하며 살아간다. 경영에서도 경쟁 없는 독특한 시장을 “니치 마켓”이라 한다.

니치가 겹치지 않는 두 종은 진화적으로 격리되어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서식지와 멧돼지가 살아가는 서식지는 구분되어 있어서, 사냥꾼이 아니라면 인간은 멧돼지를 신경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환경이 변하면 각 종들이 살아가는 영역이나 종들 사이의 관계도 변한다. 인류를 특징짓는 끊임없는 환경 파괴 즉 개발은 자연 생태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 결과 어떤 야생동물들은 고유의 서식지를 잃고 다른 종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멧돼지가 도심에 출몰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코끼리가 마을에 나타난다. 한 영역을 놓고 경쟁이 벌이지는 것인데, 이 와중에 어떤 종은 멸종된다. 인류는 수많은 종을 멸종시켰는데, 사람이 직접 종을 없앤 것은 예외적이고(도도새가 그렇다고 함), 대개는 서식지 파괴가 멸종의 원인이다. 개발로 고유 니치에서 밀려난 종들은 생존을 위한 경쟁력을 잃는다.

문화 생태계: 사람의 마음에서 유튜브로

문화 생태계에서 종, 즉 문화적 컨텐츠들이 서식하는 가상의 환경은 '사람들의 마음' 또는 '욕구'다. 모든 문화적 산물들은 어떤 종류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생태계는 “나를 과시하고 싶은 욕구”, “남을 엿보고 싶은 욕구”, “남과 공유하고 싶은 욕구” 등의 큰 영역들로 구성되는데, 문화적 컨텐츠들은 이 영역들에서 자신의 니치를 찾는다. 니치가 다르면 서로 무관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문화 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취미생활을 공유하려는 욕구는 동호인 모임들로 구체화되는데, 예를 들어 고전음악 동호인 모임과 스노우보드 동호인 모임은 서로 교류함 없이 각각의 서식지에서 독립해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나타난 유튜브는 문화 생태계에 등장한 괴물 같은 신종(新種)이다. 이 종은 처음에 “나를 과시하고 싶은(자랑질) 욕구” 영역의 컨텐츠들로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세력이 점점 넓어지면서 “정보와 지식에 대한 욕구”, 즉 검색 및 전문 지식 영역까지 유튜브를 자신의 서식지로 삼게 되었다. 이제는 뉴스와 실시간 중계까지 유튜브에 자리를 잡았다. 방송의 영역에 살던 컨텐츠들이 유튜브로 이사온 것이다.

성공한 유튜버들의 일화는 “돈 벌고 싶은 욕구” 까지도 유튜브에 서식하게 만들었다. 기업과 정치 조직까지도 유튜브에 편입되었다. 그렇게 해서 유튜브는 기존의 문화적 종 모두를 품은 덩치 큰 무엇인가가 되었다. 특정 니치에 서식하는 종들의 모임으로 출발했던 유튜브가 이제는 스스로 거대한 생태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유튜브는 문화생태계에서 '황소개구리' 같은 왕성한 포식자가 되어, 모든 문화적 컨텐츠들은 물론 문화 생태계 전체를 빨아들였다. 이제 문화적 컨텐츠들이 서식하는 곳의 총체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유튜브다.

유튜브가 문화 생태계를 독점하게 된 이유

유튜브가 독점적인 문화 생태계가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모바일로 모든 것을 접할 수 있게 된 환경 변화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모바일의 강력한 힘은 접근성에 있다. 문화 소비자(구독자) 측면에서 보면, 내가 어떤 문화적 욕구를 가졌을 때 가장 빠르게 그것을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은 휴대전화로 유튜브에 접속하는 것이다. 몇 초의 기다림도 잘 못 참는 사람들이 현대인이다. 더구나 맞춤 알고리듬이 내가 원하는 것을 미리 찾아 놓으므로, 볼수록 더 빠져들게 된다. 문화 공급자(유튜버) 측면의 특징은 더 중요하다. 유튜브에는 공급자의 진입 장벽이 없다. 컨텐츠의 품질이나 진실성에 대한 규제도 없다. 더구나 유튜브 생태계는 기존의 문화 생태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튜버가 되고싶은 욕구”라는 신종까지 만들어냈다. “돈 벌고 싶은 욕구”와도 구분되어, 유튜버라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공급 측면의 낮은 진입장벽은 풍요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그럴수록 이 생태계에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소비자도 많아진다. 유튜브는 무한 확장중이다.

유튜브를 통해서 탄핵 반대 집회를 봤다는 윤석열 대통령. 자료=채널A 뉴스

유튜브 생태계 안에서 일어나는 파괴

사이버 공간에 위치하고 온라인으로 접속하는 유튜브 생태계에서, 문화적 컨텐츠(종)들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무차별적 접근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니치들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각 종들은 서로 무한 경쟁하게 된다. 과거에는 고전음악 웹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얻던 고전음악 동호인이었지만, 정보 취득 도구가 유튜브로 바뀐 뒤에는 고전음악 검색 중 우연히 스노우보드 영상을 한번 접하게 된다. 코끼리가 사람 사는 마을에 나타난 상황 같은 것이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맞춤 알고리듬이 나도 모르게 작동하면서 스노우보드가 고전음악을 압도한다. 결국 나의 관심사도 바뀐다. 코끼리의 세력이 커져서 주민들이 마을에서 쫓겨나는 셈이다.

유튜브 생태계에서 컨텐츠의 경쟁력은 조회수에 의해 결정된다. 많이 소비되어야 진화적 적합도가 높은 종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극단적이고 혐오를 선동하는 컨텐츠가 경쟁력이 높다. 내용이 사실일 필요는 없고 자극적이기만 하면 된다. 이들은 “정보나 뉴스에 대한 욕구”의 영역에 서식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혐오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 영역에 서식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분노와 혐오 본능은 저질 컨텐츠에 머물 곳과 먹을 것을 공급한다.

유튜브의 맞춤 알고리듬은 한번 클릭하면 계속 비슷한 것을 보여주므로 컨텐츠의 다양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정보를 접하는 구독자들은 결국 분노와 혐오감을 동반한 확증편향을 키우게 되고, 확증편향은 망상에 가까워진다.

인간성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정교함을 이야기하는 컨텐츠는 극단-혐오 컨텐츠와 겨루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거짓과 혐오가 잡초처럼 웃자란 유튜브 문화 생태계는 다양성을 잃고 황폐화된다.

다양성의 위기

생물계에서도 기업계에서도 문화계에서도 종 다양성의 감소는 생태계 파괴를 알려주는 위험 신호다. 글로벌 일등 기업의 독점은 지구촌 전체적으로 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양극화를 일으킨다. 의학 연구에서는 첨단을 내세운 일률적 연구기법의 독점으로 진짜 창의적인 풀뿌리 연구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중 문화에서도 거대 자본이 뒷받침하는 지구적 아이돌의 화려함 아래 인디 문화의 입지는 축소되고 있다. 유튜브는 특정 집단에 편향된 정보를 퍼뜨리는 강력한 경로가 됨으로써 우리의 정치문화를 후퇴시키고 있다.

저질 컨텐츠는 유튜브 시대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증권업계 지라시나 “그들만의 웹” 등 제한된 생태계 안에서 널리 퍼지지 못하고 자기들끼리만 경쟁하였기 때문에, 문화 생태계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유튜브 생태계에서는 질 낮은 컨텐츠가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을 낚으면서 널리 퍼져 나간다.

집단적 광기는 대규모 군중 동원이 없이도 사이버 공간에서 자양분을 얻고 자란다. 그렇게 온라인에서 키워진 광기는 이제 오프라인에서 펼쳐진다. 몇 명의 선동꾼이 현장에서 부추기면 세뇌되어 길거리 집회에 나선 군중은 제법 강력한 목소리로 결연하게 구호를 외친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런 컨텐츠를 국가 정책의 근거로 삼으려 했던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멸종 위기 소식까지 나오는 황소개구리.

황소개구리는 퇴출되었는데…

유튜브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런 괴물로 자라게 될 것을 예측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생물의 진화를 미리 예측하거나 조작할 수 없듯이, 문화의 흐름도 예측하거나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유튜브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다양성의 파괴와 멸종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독식의 생태계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때 우리나라 소하천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황소개구리는 이제 존재감이 없어졌는데, 황소개구리 퇴치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당시에 예측하지 못했고 현재도 무엇인지 잘 모르는 환경 변화의 결과다. 진화는 다행스럽게도 대규모 멸종이 아닌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냈다. 멸종의 위기를 근근이 버텨낸 다른 종들은 이제 소하천에서 자신의 니치를 다시 차지하게 되었다.

유튜브라는 절대 강자도 문화적 컨텐츠들이 전파되는 더 새로운 생태계가 등장하면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자랑질” 종들은 이미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으로 옮겨간 것 같은데, “혐오 선동”이라는 생태계 파괴 종은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 강웅구는 1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