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삐삐 터트렸나…이스라엘 기술력 과시? 공포 유발?

김상훈 2024. 9. 1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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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명확한 전략적 목표 없어"…내부 분란설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에서 폭발한 호출기 잔해 [AFP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레바논에서 이틀간 30여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를 낳은 무선호출기(일명 삐삐) 및 소형 무전기(워키토키) 공격의 배후와 방법, 시기, 목적 등을 둘러싼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현지시간) 이번 호출기 공격의 배후로 거론되는 이스라엘이 왜 지금 공격을 감행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다양한 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분석을 소개했다.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대원들이 통신 수단으로 사용하는 호출기와 무전기를 겨냥한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 휴전 등 문제로 혼란에 빠져 있고 미국은 중동의 확전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이런 유형의 공격을 준비하려면 일단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에 납품될 수천개의 호출기 생산 및 유통망을 장악하고, 생산 과정에 개입해 은밀하게 기기 내부에 폭탄과 기폭장치를 설치하는 장기간의 철저하고 은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폭탄이 장착된 호출기와 무전기가 계산대로 아무런 문제 없이 헤즈볼라의 손에 들어갔다고 해도 이번처럼 수천 대의 호출기를 한꺼번에 터뜨리기란 쉽지 않다.

의심 많은 헤즈볼라 대원이 기기를 분해해 문제의 폭탄을 발견하거나 실수로 터져버리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처럼 위험성이 큰 과정을 거쳐 성사된 호출기 동시다발 폭파 공격이 이스라엘에서 예고해온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의 신호탄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호출기 폭발 이후 "전쟁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됐다"고 말했지만, 아랍권의 한 관리는 "이미 확전의 사다리로 상당히 올라와 있었는데, 이번 이스라엘의 대형 도박에 놀랐다"고 말했다.

아랍권 안보 당국은 헤즈볼라가 호출기의 문제를 발견해 내자 이스라엘에서 '지금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으로 버튼을 눌렀을 것으로 추측한다.

다수의 아랍권 관리는 그것 외에는 현시점에서 호출기 공격이 단행된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한 안보 담당 관리는 "만약 그들이 어떤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면 왜 지금인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이스라엘의 호출기 공격이 헤즈볼라 내부에 공포를 유발하는 효과를 냈지만, 명확한 전략적 목표는 없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호출기 폭발이 일어난 차량을 조사하는 경찰관 [AP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전직 국장인 대니 야톰은 이 신문에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가장 안전한 통신 라인을 허무는 능력을 보여줬다"면서 "헤즈볼라 내부에 공포와 스트레스, 충격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즈볼라 대원들 손에 들려있는 수천 대의 호출기와 무전기를 동시다발적으로 폭파하는 첩보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공격을 통해 이스라엘이 기술력을 과시하고 전술적 성공을 거뒀지만, 결국 이에 따라 바뀐 현실은 없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막지 못한 정부에 분노했던 이스라엘 국민 중 일부는 이번 공격을 보면서 일종의 만족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좌절감은 여전히 남아 있고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고향을 떠나 피란살이를 하는 6만여명의 주민도 아직은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에 본부를 둔 국제 반테러연구소의 미리 아이신 연구원은 "이번 공격은 놀랄만한 전술적 사건"이라며 "하지만 이에 따라 헤즈볼라 전투원 단 한명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놀랄만한 능력이 전술을 만들지 못할 때도 있다"고 했다.

또 일각에서는 이번 호출기 공격이 가자 전쟁 발발 후 11개월 넘게 이스라엘과 군사적으로 대치해온 헤즈볼라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읽힌다는 해석도 있다.

이스라엘군 정보국 국장을 지낸 아모스 야들린 예비역 소장은 "만약 이번 작전의 배후가 이스라엘이라면 그 목표는 계속 이스라엘을 상대로 적대적 행동을 이어갈 경우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휴전 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진 상태에서 휴전과 무관하게 북부 국경에서 헤즈볼라를 물러나게 하는 방법을 찾아온 이스라엘 지도부가 내놓은 해법 가운데 하나가 호출기 공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갈란트 장관은 최근 군사행동이 헤즈볼라와 갈등을 종식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야들린 예비역 소장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선포한 전쟁을 하마스와의 전쟁과 분리하는 것이 포인트"라며 "그렇게 되면 미국 특사가 헤즈볼라와 만나 휴전 합의를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의 호출기 공격이 헤즈볼라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스라엘 칼럼니스트인 아비 이사샤로프는 "이번 호출기 공격이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북부 공격을 멈추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상황을 악화할 것"이라며 "향후 며칠, 몇 주간 상황이 악화해 이스라엘군이 지상 작전에 나서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사드 전직 고위 관리인 시마 샤인은 스스로를 가장 영향력 있는 이란의 동맹으로 여기는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들에게는 '대리인'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하마스를 두고 무기를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갑작스러운 호출기 공격이 이스라엘 지도부의 내부 분란 와중에 실행됐다는 점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이번 공격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과 반목해온 갈란트 장관을 해임할 의향이 있다는 보도가 며칠째 이어지는 가운데 이뤄졌다.

모사드 전직 고위 관리 샤인은 "이건 매우 이상한 상황이다. 정치인과 안보 당국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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