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배우’ 차승원이 ‘전,란’서 보여준 짬바와 밥값[무비와치]

김범석 2024. 10. 1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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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전,란’에서 문제적 인물 선조로 출연한 배우 차승원(뉴스엔DB)
영화 ‘전,란’에서 빼어난 안타고니스트 연기로 호평받은 차승원(넷플릭스)
차승원이 넷플릭스 영화 ‘전,란’의 시그니처 포즈를 취하고 있다.(뉴스엔DB)

[뉴스엔 김범석 기자]

요즘 넷플릭스 영화 ‘전,란’(연출 김상만)이 화제다. 부국제에 다녀온 한 영화인은 ‘극장에서 봐야 하는 작품’이라며 아쉬워하고, 혹자는 ‘75인치 올레드TV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만큼 만듦새와 배우들 연기력이 수준급이다. 한때 벗이었지만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하는 운명의 장난에 휘말린 강동원, 박정민의 케미도 좋았다.

그런데 ‘전,란’에서 가장 많은 언급량과 엄지척을 받는 이는 ‘그리고’로 소개된 선조 역 차승원이다. 나라와 백성 보다 자신의 왕권 유지 보수에 더 관심이 많은 한심한 임금. 역사적으로 선조는 광해, 사도세자와 함께 여러 창작물에서 단골로 재조명되는 문제적 인물 중 하나다. ‘전,란’에서도 충무공 이순신의 죽음에 전혀 애도하지 않고 오히려 한 충신의 생존을 못마땅해하며 ‘그자는 왜 여태 살아있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왜군이 한양으로 몰려오자 궁을 버리고 도피하고 그도 모자라 백성들 피난길까지 끊어버리라고 지시하는 차가운 에고이스트. 차승원의 선조 연기가 돋보인 건 예상 가능한 캐릭터의 전형성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하에게 막말하고 넌지시 시험에 들게 하며 자신이 쓸 사람, 버릴 사람을 가리는 모습에서 ‘불안’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무능한 자는 누구보다 자신의 무능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변명과 호위병, 권위를 공고히 쌓아두고 대비한다. 일부러 불통을 장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안과 무능을 들키게 되면 자신뿐 아니라 후계 구도까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승원은 매사 짜증 섞인 톤 앤 매너로 신하를 다그치고 잔뜩 올라온 상소문도 선택적 취사를 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국정을 운영한다. 전략적 사고를 할 만한 인사이트가 없기 때문이다.

간신히 살아남아 회궁한 뒤에도 시체를 뜯어먹는 피폐한 백성들을 돌보긴커녕 경복궁 재건에만 힘을 쏟는다. 대륙에 보낼 조공을 위해 국보를 모으고 노동력 착취를 위해 신경질 부리는 히스테릭한 연기는 차승원을 대체할 배우가 쉽게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보물이 나올 줄 알았던 궤짝에서 엄청난 양의 코 무덤이 나오자 기겁하는 모습 역시 일품이었다. 과거 차승원이었다면 오버했을 텐데 이젠 감정을 잘 눌러 담고 조절하는데 선수가 됐다. 이는 감독에게 휘둘리지 않는 내공 갖춘 배우가 됐다는 뜻이다.

영화 외적으로 ‘전,란’ 차승원은 박찬욱과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인상 깊다. 차승원은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고산자, 대동여지도’ 등 강우석 사단 시네마서비스의 (설경구와 더불어) 대표주자였다. 시네마서비스가 CJ에 인수된 뒤에도 여전히 그쪽 출신인 장진 감독(‘박수칠 때 떠나라’, ‘하이힐’), 김미희 대표(‘혈의 누’, ‘이장과 군수’), 이준익 감독('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과 주로 영화를 찍었다.

이후 박훈정 감독의 페르소나가 돼 활동 반경을 넓히더니 마침내 ‘전,란’으로 박찬욱과 가르마를 타게 된 것이다. ‘전,란’의 한 관계자는 “캐스팅은 전적으로 김상만 감독에게 전권이 주어졌지만, 각본을 쓴 박찬욱 감독의 조언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특히 안타고니스트 배역을 중시하는 박찬욱이 선조 역 차승원 확정 소식을 듣고 매우 흡족해했다는 후문이다.

그렇다고 차승원이 당장 박찬욱, 봉준호 작품에 연달아 캐스팅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호평과 혹평, 모델 출신이라는 꼬리표와 코믹 출신이라는 한계를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내며 여기까지 왔다는 게 놀랍다. 그래서일까. 그는 10월 빅데이터가 뽑은 영화배우 브랜드평판 1위에 올랐다. 차줌마, 차 배우의 도전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하다.

뉴스엔 김범석 bskim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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