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민 KBS '국장 임명동의제' 무력화 근거 법률 자문 '부실'

박서연, 노지민 기자 2024. 9. 1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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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명백한 법적 근거 아닌 '인사권 침해 소지' 자문 받아 '무효' 주장
방송법이 규정한 '편성 규약'에 근거한 '임명 동의' 도입한 맥락 외면
자문 결과도 일부만 제공..."유리한 것만 제출해 궤변을 늘어 놓은 것"
KBS "인사에 관한 사항은 이사회 의결 필수… 임명동의제는 방송법 위반 소지"

[미디어오늘 박서연, 노지민 기자]

▲지난해 12월18일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전체회의에 박민 KBS 사장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박민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이 단체협약에 명시된 국장 '임명동의제'를 폐지한 법적 근거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KBS는 로펌 2곳과 변호사 2명에 자문한 결과를 근거로 임명동의제를 무시했는데 명확한 위법성 판단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 자문은 임명동의제가 KBS이사회 의결 사항이라는 일방적인 가정을 전제로 했는데 강제력 있는 방송법에 따라 규정된 편성규약을 통해 마련된 임명동의라는 사실은 외면했다.

지난 1월 KBS는 단체협약에 명시된 임명동의제를 무시하고 주요 국장 인사를 강행했다. KBS 단체협약 '임명동의' 조항을 보면 주요 보도 제작 간부에 대해서는 해당 부서의 소속 조합원들에게 동의를 받고 임명해야 한다. 임명동의 대상자는 통합뉴스룸국장(보도국장), 시사제작국장, 시사교양1국장, 시사교양2국장, 라디오제작국장 등 총 5개 부서장이다.

▲KBS가 A 법무법인에 요청한 임명동의제 관련 자문 결과 내용 일부. KBS는 국회에 로펌 자문 결과를 제출하면서 법무법인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전문을 공개하지 않았다. 자료제공=이정헌 의원실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KBS로부터 받은 '법률자문 결과 자료'를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결과 KBS는 A 법무법인에게 “사장에게 이사회의 의결 없이 (임명동의제를) 도입할 권한이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A 법무법인은 “사장이 대표권을 가지더라도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채 인사에 관한 규정을 제정·개정 및 폐지할 수 없다”고 답했다.

A 법무법인은 이어 “방송법과 귀사의 정관, 인사규정은 모두 사장의 직원 임면 권한에 관해서만 규정하고 있을 뿐 임명동의에 관한 규정은 전혀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사장에게는 이사회의 의견 없이 임명동의제를 도입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즉, 방송법에 따라 구성된 KBS 이사회가 인사에 관한 규정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기에 사장이 임의로 임명동의제를 도입하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임명동의제를 시행하지 않는 행위가 방송법 위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다루지 않았다. 방송법에 따르면 방송사들은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해야 하는데, 'KBS 편성규약'을 보면 '임명동의' 세부 사항은 '단체협약'을 따라야 하고 'KBS 단체협약'에는 '임명동의'가 명시돼 있다.

방송법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조항을 살펴보면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프로그램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해야 한다. KBS 편성규약 '국장 임명동의' 조항을 보면 일부 취재 및 제작 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임명동의 대상과 방법 등 세부사항은 2019 단체협약에 따라야 한다.

따라서 방송법에 따른 편성규약에 포함된 임명동의제를 무력화하는 것이 오히려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법률자문의 내용이 일리 있다고 해도 이사회 의결과 방송법에 따른 편성규약 중 어느 쪽이 우선하는지는 법률적으로 다툴 수 있는 사안으로 명확한 법적 판단은 아니다.

▲KBS 본관. 사진=KBS

KBS는 법률자문 결과를 제대로 제출하지도 않았다. KBS는 국회에 A법무법인 자문 내용을 포함해 B법학교수, C법무법인, D법학교수 등의 자문 결과도 제출했지만, 전체 자문 내용은 제출하지 않고 발췌본을 제출해 제대로 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12일 미디어오늘에 “사측은 방송법상, 그리고 노조법상 마련돼야 하는 편성규약과 단체협약에 있는 임명동의제를 '완성된 법의 판단'이 아닌 자신들이 선정한 로펌에서 받은 법률자문을 근거로 '인사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어느 로펌인지, 완성된 (형태의) 자문서를 국회에서 요구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로펌명을 가린 채 발췌본만 제공했는데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국회에 제출한 채 자신들의 불법행위가 정당하다는 궤변을 늘어 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헌 의원은 12일 미디어오늘에 “단협 사항은 방송의 공정성·독립성을 위해서 2019년 만든 약속이다. 지키겠다고 약속한 사항이다. 박민 사장은 명백히 방송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방송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임명동의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바닥으로 추락한 KBS의 신뢰도를 하루속히 회복해 윤석열 대통령을 위한 방송이 아닌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으로 거듭 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 '임명동의제' 무시 KBS 사장에 “인사청문회 때 약속 지켜라”]
[관련 기사 : 임명동의제 무력화 논란 KBS 사장 “법 위반… 법률자문 받은 건 아니고”]

KBS는 본지 보도 이후 13일 편성규약에 근거해 도입한 임명동의제를 두고 “주요 국장의 임명 시 노조의 과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인사에 관한 사항”이라며 “KBS 이사회의 의결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법 4조는 편성규약을 제정·공표해야 한다고만 명시하였는데, 편성규약에 있는 임명동의제를 실시하지 않은 것이 방송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는 입장도 전했다.

법률 자문 결과를 일부만 국회에 제출한 것에 대해선 “자문 결과 제공은 KBS가 임의로 한 것이 아니며 제출 여부에 대해 자문(법)인의 동의를 받아 제출한 것”이라며 '짜깁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사 수정 : 9월13일 17시 34분 / 보도 후 KBS가 입장 자료를 배포해 일부 반론을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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