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정부 대응, 60%가 믿지 않는다 [2024 신뢰도 조사]
7개월째다. 의료 현장에서도 이렇게 오랜 의료 공백은 예상하지 못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을 지키는 교수들은 “초반에는 단기간에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길어야 한두 달일 거라 생각하고 버텼다”라고 말했다.
7개월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2월6일 윤석열 대통령은 내년도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이후 1509명 증원으로 확정됐다). 22대 총선을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당장 현행보다 65% 늘어날 신입생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대학의 우려와 필수·지역·공공의료 인력을 확보할 방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2월19일 정부의 의사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발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을 견인했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 올해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월 다섯째 주와 3월 첫째 주 조사에서 39%로 가장 높았다. 그때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유 1위가 ‘의대 정원 확대(28%)’였다. ‘결단력·추진력·뚝심(9%)’이 그 뒤를 이었다(3월 첫째 주 조사). 우호적 여론을 확인한 정부는 타협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 결과 전공의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면서, 병원에 남은 의료진에게 과부하가 걸렸다.
급기야 문을 닫는 응급실도 생겼다. 경기 지역 권역응급의료센터(중증 응급환자를 중심으로, 권역 내 응급환자에 대한 최종 진료가 가능하도록 지정된 기관) 소속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지금까지 쌓아온 응급의료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안 그래도 부족하던 응급의학과 인력이 갑자기 훅 줄었다. 거기에 더해 타 임상진료과 전문의들도 더 이상 응급진료에 에너지를 쓰기 어려워졌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 체계가 망가진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정치와 정책 목표의 실종”
의료 공백 7개월, 시민들은 의·정 갈등에 대한 정부 대응을 어떻게 평가할까? 〈시사IN〉은 2024년 신뢰도 조사에서 의사 수 증원, 전공의 이탈 등 의·정 갈등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물었다. 응급실 의료 대란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여당 내부에서도 공개적으로 의·정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 시점은 8월27일부터다. 이번 조사는 그 이전인 8월25~27일에 진행됐다.
의·정 갈등에 대한 정부 대응 신뢰도는 3.19점이다(0~4점은 불신, 5점은 보통, 6~10점은 신뢰 구간). 정부의 대응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뢰한다는 응답(6~10점)은 19.3%에 그친 반면, 불신 응답(0~4점)은 그 3배인 60.3%에 달했다. 최홍조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정치와 정책 목표의 실종’ 때문이라고 짚었다. “필수·지역의료 불평등 해소가 정책 목표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의사 증원이라는 수단만 남고 목표가 사라졌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증원 규모를 축소하는 대신 현재 의료 인력이 더 취약한 지역에서 일하게끔 하는 제도적 수단 마련 등의 방식으로 협의할 수도 있는데, 그런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눈여겨볼 대목은 의·정 갈등에 대한 정부 대응 신뢰도가 다른 이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정부의 주요 이슈 대응 신뢰도는 각각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 2.28점(신뢰 12%, 불신 70.5%), 한·일 역사 문제 2.42점(신뢰 13.1%, 불신 67.8%), 김건희 여사 문제 1.97점(신뢰 10.7%, 불신 75.1%) 등이다. 의·정 갈등 관련 신뢰도는 ‘불신권’이긴 하지만 유일하게 3점대(3.19점)였다. 정치 성향별로 살펴봐도, 다른 이슈와 비교해 진보·중도·보수 진영에서 1점 가까이씩 고루 높았다(〈그림〉 참조). 왜 그럴까?
한 대학병원 교수 B씨는 병원을 떠난 의사들에 대한 불만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B씨는 “전공의들이 떠난 핵심적인 이유는, 의사 증원으로 경쟁자가 늘면 기존처럼 기득권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가 무능하다고 해서 전공의들이 응급실, 중환자실까지 다 비우고 떠난 게 합리화되거나 정당한 투쟁으로 평가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앞서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대한의사협회를 포함한 의사단체나 일부 개인들의 주장이 대중의 공감을 얻기에 부족한 경우도 많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장에선 당장 인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여러 문제가 있지만 비상진료 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라고 언급한 지 나흘 만인 9월2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응급실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라고 입장을 바꾸고 응급실 현황 일일브리핑을 시작했다. 이틀 후인 9월4일 윤석열 대통령은 경기북부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의정부성모병원을 찾아 “응급의료가 필수 의료 중 가장 핵심인데 국가에서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도와드리지 못한 것 같아 참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 이렇게 조사했다
- 조사 의뢰: 〈시사IN〉
- 조사 기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 조사 일시: 2024년 8월25~27일
- 조사 대상: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 조사 방법: 가구 유선전화 RDD 및 휴대전화 RDD를 병행한 전화면접조사(CATI)
- 응답률: 6.6%(무선 7.2%, 유선 3.8%)
- 가중치 부여 방식: 성별·연령별·지역별 가중치 부여(셀가중) (2024년 7월 행정안전부 발표 주민등록인구 기준)
- 표본 크기: 1008명
- 표본 오차: ±3.1%포인트(95% 신뢰 수준)
*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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