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했다가 성범죄 당할뻔했지만…“그래도 집엔 안간다”는 아이들
가정폭력 당해 가출했지만
쉼터 입소땐 보호자 연락 필요
가정폭력, 학대의 경우 예외 적용
입소 상담 시 가정폭력 정황 발견되면
쉼터는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 신고해야
가출 반복땐 범죄위험 노출돼
정인이 사건 이후 각종 아동 학대 관련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청소년들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성년자인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가해자로부터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하는 청소년들 있지만 이들을 위한 ’청소년쉼터‘ 입소 시 부모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지침 때문에 청소년들이 강제적으로 집에 돌아가는 등 보호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쉼터 입소·퇴소 관리 지침은 가정 밖 청소년 입소 시 부모 등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가정폭력 및 학대로 인한 가출의 경우에는 예외가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지만, 가정폭력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내역이 있거나 상담기관에서 상담한 기록 등이 있어야 한다. 이 같은 기준의 배경에는 ’자(子)는 친권자의 지정한 장소에 거주해야 한다‘고 규정한 민법상 ’거소지정권‘이 깔려 있다.
하지만 미성년자의 완전한 자립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부모를 신고하고, 부모에게 쉼터 입소를 알리는 것에 대해 꺼리는 청소년들이 많아 거리로 내몰리는 청소년들이 많다. 인천 거주 중인 김모양(16)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버지 폭력이 있어서 쉼터에서 지내봤지만 아버지가 나를 찾아내서 집으로 다시 데려갔다”며 “최대한 먼 지역으로 가기 위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일반인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가정 밖 청소년들 가출 이유로는 부모간의 불화와 부모의 폭행이 각각 21.3%와 13.0%로 가정적 요인이 가출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에 따르면 2020년 단기·중장기쉼터에 머문 청소년 57%는 가정으로 복귀했지만 나머지 43% 청소년 중 경제적 자립을 이룬 경우는 3%에 지나지 않았다. 보호기간이 만료됐거나 스스로 퇴소하는 경우는 14%, 다른 시설로 옮겨간 청소년은 11%였다. 일부는 강제퇴소 당하거나 무단으로 쉼터를 떠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다소 감소해오던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증가 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염려된다. 권인숙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112경찰 신고 건수는 2019년 24만564건에서 2021년 21만8680건으로 줄었지만 2022년에는 6월까지만해도 10만9985건의 신고가 있어 2021년 전체 건수의 절반이 넘는 신고가 있었다. 이 추세가 계속됐다면 전년도보다 신고 건수가 더 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아동학대 건수도 늘어 2017년 2만2367건에서 2021년 3만7605건까지 증가했다.
김 양은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겠다는 헬퍼를 만났다가 성추행 당할 뻔 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김 양은 “그래도 집보다 밖이 낫다. 집은 지옥”이라고 전했다. 가정 밖 청소년들이 쉼터를 나와서 갈 곳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가출 팸이나 민간인 헬퍼를 찾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가정폭력이나 학대를 피해 가출한 청소년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가정 복귀를 추진할 것이 아니라 가정 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자립할 수 있는 지원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최장 21일 동안의 단기 쉼터 수용 이후에도 가정 복귀가 적절하지 않은 경우, 장기적인 주거를 제공하며 기본 생활기술과 학업 및 직업 훈련 교육을 제공하는 ‘전환주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노혜련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가족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안 되는 청소년들에게는 다른 방법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가정마다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개별 상황에 맞는 지원책을 세심하게 마련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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