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서해 불법 구조물, 왜 한미 동시 자극하나

중국이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한 16개의 인공 구조물이 한중 간 분쟁을 넘어 한미 안보 현안으로 비화하고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비욘드 패럴랠’ 프로젝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PMZ 내외에 부표와 해상 양식장, 통합 관리 플랫폼을 일방적으로 설치해 사실상 해양 관할권을 기정사실화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이 같은 움직임이 한중어업협정이 규정한 공동 관리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며, 단순한 불법 어업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보·전략 환경을 뒤흔들 수 있는 회색지대 전술이라고 규정했다. 미국 내 정책 커뮤니티에서는 중국이 남중국해·동중국해에서 사용해온 접근을 서해까지 확장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며, 동맹 차원의 대응 필요성이 부각되는 분위기다.
한중어업협정 취지 흔드는 중국의 ‘기정사실화’

2001년 체결된 한중어업협정은 서해에서 양국이 어업 질서를 관리하기 위해 PMZ라는 공동 관리 해역을 설정하고, 이 지역에 영구 시설물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그러나 차 석좌에 따르면 중국은 2018년 이후 협의 없이 PMZ 인근에 부표 13개를 설치했고, PMZ 안에는 어류 양식을 명분으로 한 ‘선란 1·2호’ 양식장과 ‘애틀랜틱 암스테르담’이라는 대형 해상 플랫폼까지 세웠다.
이들 구조물은 겉으로는 민간 양식 또는 관리 설비를 표방하지만, 위치·규모·형태상 장기 주둔과 감시 활동, 필요 시 군사적 활용까지 가능한 이중 용도 시설로 평가된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단순히 협정 위반 항목 하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공동 관리 수역의 성격 자체가 중국 주도 관리 구역으로 바뀌어가는 구조적 변화를 마주한 셈이다.
중국 해경의 저지와 한국 선박의 ‘제한된 접근’

중국의 구조물 설치가 문제를 키운 것은 가시적인 물리적 시설 때문만이 아니다. 차 석좌는 2020년 이후 한국 선박이 이 일대에서 중국 활동을 감시하거나 조사를 실시하려 한 시도가 135차례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27차례가 중국 해경의 물리적·위협적 조치로 저지됐다고 소개했다. 올해에도 한국 해양조사선 ‘온누리호’가 PMZ 인근에서 과학 조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국 해경과 대치하는 상황이 반복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측은 이 지역을 “자국 관할 해역”이라고 주장하며 감시에 가까운 추적·호위, 무선 경고, 진로 방해 등으로 한국 선박의 활동 반경을 좁혀왔다. 한국 입장에서는 협정상 공동 관리 수역에서 합법적인 조사·감시 활동조차 제약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자리를 잡아가는 셈이며, 이는 곧 해상 교통로와 수산 자원 관리, 과학 연구 자유에 대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회색지대 전술과 ‘잠행적 주권 주장’의 서해 버전

CSIS 보고서는 중국의 움직임을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화 과정과 유사한 ‘회색지대 전술’의 연장선으로 해석한다. 회색지대 전술은 전면전이나 노골적인 군사 충돌을 피하면서도, 민간 선박·해경·법 집행·민간 시설을 활용해 상대의 행동 반경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주권 주장을 사실상 관철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차 석좌는 PMZ 내 중국 구조물들이 표면상은 민간 양식장·관리 플랫폼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감시·통신·기상·정보 수집에 쓰일 수 있는 인프라라는 점에서 ‘잠행적 주권 주장(creeping sovereignty)’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만들고 활주로·레이더를 설치한 뒤 군용기를 상시 운용하는 패턴이 이미 확인된 만큼, 서해에서도 비슷한 단계적 접근이 반복될 가능성을 미국 전략 커뮤니티는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략적 이유

이번 문제에 미국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서해가 단순한 연안 어장이나 분쟁 수역을 넘어 한미 동맹의 작전 환경과 직결된 전략 해역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은 남중국해에서 항로 개방과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강력한 억지와 행동을 요구한다고 명시하면서, 이러한 원칙이 서해와 같은 다른 분쟁 해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담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PMZ를 사실상 자국 통제 구역처럼 만들 경우, 한국 해군과 미 해군의 연합 훈련이나 유사시 증원 전력 전개, 정보·감시·정찰(ISR) 활동에 불확실성과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중국의 일방적 조치가 국제사회에서 충분한 저항을 받지 않는다면, 동중국해·남중국해·대만 해협 등 다른 전략 요충지에서도 비슷한 “기정사실화” 전략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도 미국이 경계하는 부분이다.
한미의 과제: 좌표 공개와 항행 자유의 실질적 보장

차 석좌는 워싱턴과 서울이 중국 구조물들의 정확한 좌표와 특성을 공개해 국제적 감시망에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조물 위치와 법적 근거, 한중어업협정 위반 여부를 투명하게 공유할 경우, 쌍방 주장에 머물던 논쟁을 국제 규범과 사실 데이터에 기반한 논의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동시에 미국은 한국의 문제 제기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항행의 자유 작전(FONOP·FON)을 서해 상황에 맞게 어떻게 적용할지, 한미 연합 차원의 정찰·감시 강화와 위기 관리 채널 정비를 어떤 형태로 추진할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으로서도 단순히 어업 분쟁 차원을 넘어, 서해의 법적·전략적 지위를 둘러싼 중국의 장기적 구상을 정면으로 인식하고, 군·외교·해양 법 집행 역량을 아우르는 종합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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