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동원·인맥 내세워 정치인 유혹… 당선 땐 금전·이권 요구 ‘쥐락펴락’ [Who, What, Why]
명태균, 컨설팅 해준다며 접근
의원 세비 9000만원 받은 의혹
댓글조작 사건 주범 ‘드루킹’
김경수에 오사카 총영사 요구
“선거때마다 활개치는 브로커
이제야 이슈 터진 것” 비판도
일각선 ‘로비스트 합법화’ 주장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 핵심 인물 명태균 씨로 인한 정치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명 씨는 김 여사가 자신에게 “완전히 의지한다”는 표현 등을 쓴 카카오톡 메시지 캡처까지 공개해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의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명 씨의 발언 등을 두고 “사실과 거짓을 혼재한 전형적인 ‘사짜’의 허풍”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대체로 “선거 때마다 활개하는 정치 브로커 이슈가 터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치 브로커 무기는 인맥·여론 = 정치 브로커는 자신의 정치적 인맥을 과시하고 여론을 무기로 정치인에게 접근한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명 씨는 선거 때 본인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래한국연구소를 통해 특정 후보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명 씨의 친분 과시는 현재진행형이다. 명 씨는 녹취가 공개돼 김 여사 공천 개입 논란이 터진 이후에도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 부부와 경선 기간 거의 매일 6개월간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명 씨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다음 날인 15일에는 김 여사와의 카카오톡 메시지도 공개했다. 명 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준석을 (국민의힘 대표로) 만들었으니까 당연히 그쪽(윤 대통령 부부)에서 저를 찾으러 다니지 않았겠냐” “당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하고 홍준표 대표를 30년 만에 만나게 해서 화해하는 자리도 제가 만들었다” 등 대권 잠룡, 유력 정치인과의 인연을 과시했다.
정치권에서는 명 씨가 유력 정치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은 브로커들이 ‘인맥=능력’으로 평가받기 때문으로 본다. 이런 이유로 명 씨 인맥 과시에는 과장도 섞인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명 씨에 대해 “63빌딩에서 일한 벽돌공이 63빌딩을 내가 다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 브로커의 또 다른 무기는 여론이다. 명 씨도 ‘맞춤형 여론조사’를 매개로 인맥을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명 씨 이전 대표적 정치 브로커로 꼽히는 드루킹(본명 김동원) 사건에서도 댓글 조작을 통해 여론을 주무르는 것을 무기로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게 접근했다.
◇브로커의 목적은 돈과 이권=정치 브로커들의 목적은 돈과 이권이다. 드루킹도 여론 조작의 대가로 일본 오사카(大阪) 총영사를 청탁했다. 하지만 이권 청탁이 무산되자 김 전 지사와의 관계가 틀어졌다. 명 씨 역시 경남 창원시 공무원들에게 시장의 친구 및 비서실 공무원 등과의 친분을 과시해 승진을 약속하고, 로비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로 5년 전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명 씨는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같은 해 8월부터 김 전 의원이 수령한 세비 중 9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김 전 의원 회계책임자였던 강모 씨는 명 씨가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를 위해 3억6000만 원을 들여 여론조사를 진행했는데, 그 대가가 김 전 의원의 보궐선거 공천이라는 취지의 의혹도 제기한 상황이다.
명 씨나 드루킹처럼 전국 단위 선거에서 브로커가 활개를 치는 것은 다소 예외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브로커들은 주로 지역 선거에서 암약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지지 여론을 만들어 주겠다’ ‘몇백 표를 가져다주겠다’며 접근해 금품을 뜯어내는 게 전형적인 형태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던 김소연 대전시의원은 지방선거 때 불법 자금을 강요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2022년에는 전북 전주시장 예비후보에게 선거조직과 자금을 제공하는 대가로 인사권 등을 요구한 전직 정당 관계자 등이 구속됐다. 명 씨의 활동 무대였던 부산·경남(PK) 지역 국회의원의 보좌진은 16일 통화에서 “선거를 앞두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정치인들에게 ‘컨설팅’이라는 이름 아래 유력 정치인과의 인맥을 과시하며 접근하는 정치 브로커의 제안은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라고 말했다.
◇브로커 문제 끊으려면…로비스트 합법화 논의 병행해야 = 현재까지 명 씨가 선거 외 정치인의 입법 활동 등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명 씨로 인해 불거진 정치 브로커 문제에 있어, 로비스트 문제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정치 브로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로비스트도 함께 비판 대상이 됐다.
선거 때 여론 왜곡·조작을 일삼아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정치 브로커와는 달리 로비스트는 정치인들이나 정부 관료와의 직접 소통을 통해 입법과 정책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의 로비스트로 볼 수 있는 각 기업 대관이나 법무법인에 속한 관료 출신 고문 등이 정부 정책이나 입법 활동에 있어 업계 요구사항을 관철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불법으로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로비스트를 양성화해서 정책이나 입법 과정에 있어 투명성을 높여, 명 씨처럼 음성적으로 정치인에게 접근하는 브로커 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우려도 있다. 연고주의와 정실주의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로비스트 활동에 대한 철저한 감독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입법 브로커만 양산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로비를 할 수 있는 기업 등 단체와 그렇지 못한 단체와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로비스트 합법화가 오히려 (로비를) 조장하는 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개인적으로 로비스트 합법화는 반대하지 않지만 전국적으로 수백, 수천 명이 활동하게 되면 로비스트를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가가 핵심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윤정선 기자 wowjot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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