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재가 늘어난다… 원인 1위는 음식물 조리 부주의

임경진 기자 2024. 9. 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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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별로는 에어컨 사용 많은 여름철 1위… 무작정 대피 말고 주변 상황 살피며 행동해야

"점심을 먹고 있는데 '불이 났으니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다가 끊겼어요. 처음에는 안내 방송이 잘못 나온 줄 알았어요. 1분 30초 정도 뒤에 딸이 "엄마, 냄새 나!"라고 소리쳐서 옥상으로 뛰쳐나갔죠. 10층에서 불이 시작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연기가 빠르게 번지더니 15층 우리 집에서도 냄새가 났어요. 옥상에 3시간 동안 갇혀 있었는데, 연기가 옥상까지 올라와 난간 밖으로 코를 내민 채 숨을 쉬었어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아이파크 아파트에 사는 주민 A 씨는 6월 20일 화재 당시 긴박했던 대피 순간을 이같이 전했다. A 씨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3시간 동안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리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며 "화재 사고 이후 가전제품이 조금만 뜨거워져도 불이 나는 건 아닐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9월 10일 오후 기자가 찾은 아파트는 화재의 상흔과 보수 공사 등으로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불이 시작된 10층은 바닥과 천장, 벽면까지 분진이 가득했고 벽면 타일이 전부 뜯겨 나간 상태였다. 아파트 동(棟) 외벽은 보수 공사를 위한 철제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동 출입문에는 "화재로 인한 누수로 벽타일이 낙하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역삼동 아파트 화재 하루 전인 6월 19일 불이 났던 양천구 목동 부영아파트도 여전히 복구 중이었다. 9월 9일 오후 기자가 이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주민들은 보수 작업이 끝나지 않아 전선이 훤히 드러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 아파트 23층에 사는 허모 군(12)은 "화재 당시 부모님과 23층에서 12층까지 뛰어내려왔는데 11층에서 타는 냄새가 많이 나 더는 계단을 통해 내려갈 수가 없었다"며 "불이 났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고 학교에서 배웠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대피했다"고 말했다.

6월 화재 사고로 7가구가 피해를 입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아이파크 아파트에 9월 10일 수습을 위한 철제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임경진 기자]

아파트 화재 최근 2년 연속 증가

최근 아파트 화재가 늘면서 아파트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화재는 최근 2년 연속 증가했다. 2019년 2886건, 2020년 2808건, 2021년 2666건 등으로 감소하던 아파트 화재는 2022년 2759건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리고 2023년에는 2993건이 발생해 전년보다 234건(8.48%) 증가했다. 올해 1~8월 발생한 아파트 화재 건수는 214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995건)보다 150건 이상 많다.

그렇다면 최근 2년간 아파트 화재가 증가한 이유는 뭘까. 소방청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발생한 아파트 화재 1만4112건의 화재 발생 원인을 분석한 결과 부주의로 인한 화재가 6979건(49.5%)으로 가장 많았다. 화재는 흔히 합선이나 누전, 가스폭발 등으로 발생한다는 통념과 달리, 아파트 화재의 절반은 조심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던 사고였던 것이다. 부주의로 인한 화재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음식물 조리 도중 발생한 화재가 3188건(45.7%)으로 가장 많았고, 담배꽁초 1390건(19.9%), 불씨 방치 704건(10.1%)이 뒤를 이었다. 계절별로는 에어컨 사용이 많은 여름철(6~8월)이 4018건(28.5%)으로 가장 많았으며, 겨울철(12~2월)이 3555건(25.2%)으로 뒤를 이었다.

채진 목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음식물 조리 도중 쓰레기를 버린다며 잠깐 집 밖으로 나갔다가 지인을 만나 조리 중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대화하느라 불이 나는 사례가 많은데, 조그마한 부주의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재난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면서 "가스레인지나 인덕션을 켜놓은 상태에서는 절대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2년간 전기적 요인으로 발생한 노후 아파트 화재도 증가했다. 주간동아가 한국전기안전공사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전기가 공급된 지 20년 미만인 아파트에서 발생한 전기 화재는 2021년 651건에서 2022년 646건, 2023년 635건으로 줄어든 반면, 20년 이상 된 아파트의 전기 화재는 2021년 209건에서 2022년 250건, 2023년 294건으로 늘었다. 오래된 아파트는 방염 처리된 구조물의 방염 기능이 떨어지고 전기 배선과 누전차단기가 노후화돼 화재가 발생하기 쉽다.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가연물이 많이 쌓여 불이 쉽게 붙기도 한다.

주거 밀집도가 높은 아파트 특성상 한번 불이 나면 당사자뿐 아니라 이웃들까지도 큰 피해를 입는다. 실제로 2023년 발생한 전체 화재 중 아파트 화재는 8.26%였지만, 화재로 인한 전체 인명 피해의 16.87%는 아파트 화재에서 일어났다. 아파트 화재 사고는 다른 화재 사고에 비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발코니를 없애는 시공이 아파트 화재 피해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발코니는 가구 내 공간을 한 차례 분리해 집 안에서 시작된 불과 그에 따른 연기가 창문을 통해 위층으로 번지는 속도를 늦춘다. 발코니 확장 시공으로 아파트 동 외벽이 평평하게 메워지는 것도 화염과 연기의 수직 확산 속도를 더하는 요인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유독가스의 경우 수직으로는 초당 2~3m 속도로 빠르게 확산한다"며 "화재 안전 측면에서 발코니 확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무리 화재 대응을 잘한다 해도 불은 예방이 최선이다. 아파트 화재를 예방하려면 △오래된 전기 배선 교체 △누전차단기 정상 작동 여부 확인 △콘센트 먼지 청소 △KS 인증 제품 사용을 실천해야 한다. 특히 콘센트는 전류 허용 용량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사용해야 한다. 채진 교수는 "‘문어발식 콘센트'를 사용해 허용 용량 이상으로 전류가 흐르면 전기 배선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불길·연기 없으면 집 안에서 대기

아파트에서 불이 나면 무작정 밖으로 나가기보다 주변 상황을 살피면서 행동하는 것이 좋다. 대피 도중 연기 흡입 등으로 화를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방청이 최근 5년간(2019~2023) 아파트 화재로 인한 사망자 174명을 분석한 결과 대피 중에 사망한 인원이 42명(24.1%)으로 가장 많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소방청은 불이 나면 우선 대피하라고 안내했던 과거와 달리, 지난해 11월부터는 새로운 피난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개선된 피난 방법에 따르면 자기 집이 아닌 아파트 내 다른 곳에서 불이 났을 때는 화염이나 연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집에 머무르는 것이 안전하다(표 참조). 집 안에서 대기하며 연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문을 닫고 119에 신고해 소방관의 안내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공하성 교수는 "비상계단이 연기로 가득 차 대피가 어려울 때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 문틈을 옷가지로 막아 연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 "엘리베이터의 경우 화재가 나면 정전으로 중간에 멈출 수 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통로가 굴뚝 역할을 해 승강기 안으로 열과 연기가 더 빠르게 들어올 수 있으니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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