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M&A] 국민연금 남은 투자금 3000억 '암초' [넘버스]

/그래픽=부광우 기자

홈플러스가 회생 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 절차에 들어선 가운데 국민연금공단의 투자금이 매각의 암초로 떠오르고 있다. 당초 들어간 6000억원의 돈 중 절반이 넘는 3000억원대 자금을 회수했지만 그동안 이자가 붙어 아직도 1조원 이상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계산인데, 홈플러스가 회생으로 들어가면 이 같은 국민 노후 자금을 날리게 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들끓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회생 절차의 규정상 채권자보다 변제에서 뒷순위인 주주를 먼저 배려할 수 없는 만큼, 홈플러스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정치적 여론몰이보다 원칙에 근거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2015년 9월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 국민연금은 상환전환우선주식(RCPS) 5826억원과 블라인드 펀드를 통한 보통주 295억원 등 총 6121억원을 투자했다. MBK에 인수될 당시 발행된 홈플러스 RCPS는 약 7000억원인데 이 중 대부분을 국민연금이 사들였다.

RCPS는 일반 지분 투자보다 안정성이 보장되는 메자닌의 성격을 띤다. 투자자가 특정 시기부터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환권을 비롯해 투자자가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 배당 시 보통주보다 우선권을 모두 가진 복합 금융 상품이다. 이 때문에 이름은 우선주지만 채권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홈플러스로부터 투자금 대비 절반을 웃도는 3100억여원을 거둬들였다. 리파이낸싱과 배당금 수령으로 RCPS 3131억원을 회수했다.

그런데도 홈플러스가 갚아야 할 돈은 오히려 더 불어나 1조원을 넘어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금리가 오르는 스텝업 조건과 보장 수익률 등에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2024년 2월 말 기준으로 홈플러스의 RCPS 부채는 1조656억원으로 설정됐다.

그런데 최근 홈플러스의 RCPS는 부채에서 자본으로 전환됐다. 홈플러스는 당초 채무로 잡혀 있던 RCPS를 올해 2월 말 우선주와 주식발행초과금 등 자본으로 변경했다. 이전까지는 주계약인 채무 상품으로 보고 전환권을 파생상품으로 회계 처리해 왔지만, 이제는 RCPS의 상환에 대한 재량권을 직접 보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RCPS가 부채가 아닌 자본이 되면 투자자인 국민연금보다 홈플러스 쪽에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어서다. 변제 순서가 중순위 채권자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연금 측은 홈플러스 RCPS의 발행 조건 변경에 합의한 적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홈플러스의 회생 절차와 진행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 투자금 회수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홈플러스의 회계에서 RCPS가 이미 자본으로 넘어간 만큼, 투자금 회수의 불확실성이 커진 게 사실이다. 기업회생의 기본 룰에 따르면 채권자도 변제를 다 받지 못한 상황에서 주주에게 우선권을 부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연금의 투자 재원이 일반 시민들로부터 나온 돈이란 특성 탓에 잡음이 커지고 있다. RCPS의 자본 전환과 홈플러스의 회생 결정이 맞물리면서 국민들의 노후 자금이 증발하게 됐다는 비판이다.

이런 전후 사정이 홈플러스 M&A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민연금의 투자금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당사자인 홈플러스는 물론 잠재적 인수자까지 여론의 부담을 느낄 수 있어서다. 더욱이 정치권에서 국민연금의 재원 특성을 명분으로 압박에 나설 공산이 커 잡음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럴 때일수록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임직원과 협력업체들을 포함해 10만명의 일자리가 달린 홈플러스의 생존을 염두에 둔다면, 정부가 회생의 대전제를 기초로 균형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IB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투자금은 홈플러스 회생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며 "채권자가 아닌 주주가, 그것도 원금을 넘어 이자까지 모두 회수하는 건 원리원칙에 맞지 않는 만큼 국민연금에게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는 정부가 분명한 신호를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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