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는 세 개의 북 클럽에 끼어 있다. 하나는 일주일에 한 번 모여 고전 희곡을 낭독하는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한 달에 한 번 추리소설을 읽고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또 하나는 친구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문학 이론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임이다. 셋 다 온라인으로 모이는데 모임원의 사정에 따라서 간혹 쉬기도 하지만, 대체로 몇 년 이상 지속 중이다.
‘북 클럽을 세 개나 참여하다니 어지간한 독서 중독자인가 보군!’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나는 읽은 책에 대해 누군가와 토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북 클럽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책을 잘 읽지 않기 때문에 북 클럽에 열심이라는 역설이 성립할 것이다. 명색이 글을 쓰고 읽는 직업인데, 어느 시점부터 독서량이 터무니없이 줄었다. 눈은 침침하고, 집중력은 떨어지고, 봐야 하는 드라마도 많다. 그러기에 모임이라는 약속에 매여서라도 책을 읽자는 마음으로 모임을 이어간다.
최근 단행본 2권이 출간된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창현 글, 유희 그림, 사계절 펴냄)에 나오는 독서 중독자들은 나와 다르다. 그들은 순수하게 책을 사랑하며, 책 이야기를 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 때문에 익명으로 모여 책 자체에 관해 토론한다. 지적 인문주의와 대조되는 B급 개그 감성을 공공연히 표방하는 이 만화는 철학자 강유원의 책 <책과 세계>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독서 인구는 45.6%이고, 1인당 평균 독서량은 1년에 7.0권이다. 즉 교과서나 참고서를 제외하고 1년 중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전체 조사 대상의 54.4%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 사람이 “정상이 아닌 탈이 난 상태”일 수밖에.

그 때문인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 등장하는 사람 중에 언뜻 봐도 평범한 사람은 없다. 1권의 시작, 자기 계발서를 선호하는 ‘노마드’와 언더커버로 범죄 조직에 침투 중이며 그리스비극과 셰익스피어 문학을 좋아하는 ‘경찰’이 북 클럽에 찾아온다. 비교적 평범한 사회인처럼 보이는 노마드는 바로 쫓겨나고, 수상한 점이 있는 경찰은 그보다 더 수상해 보이는 독서인들 사이에 끼게 된다.
아니, 예티인지 설인인지 하는 유인원도 북 클럽 회원이니 수상해 보이는 독서 영장류라고 해야겠다. 외모는 험악하지만 섬세한 솜씨로 아귀탕과 디저트를 만들어 파는 식당을 운영하는 ‘슈’, 친구가 없고 축구팀 FC 샬케 04를 응원하는 엄격한 독서 원리주의자 ‘사자’, 기이한 멀릿 헤어스타일(통칭 병지컷)을 하고 브릿팝 커버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는 ‘고슬링’, 그리고 정신과 전문의처럼 생겼지만 가장 이상해 보이는 진행자 선생이 주력 회원이다. 거기에 취업 준비생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로렌스’가 참여하면서 북 클럽은 종종 패러디 소설의 합평회로 변모한다. 2권에 들어가면 책을 좋아해서 사서가 되었지만 도서관 업무에 질려버린 ‘다크 섹시’가 가입하고 예티 대신 사스콰치 빅풋이 끼면서 북 클럽의 성별, 종적 다양성이 강화된다.
독서 중독자들을 만족시키기란 ‘만화 같은’ 일
대상이 무엇이든 열정이 과도하면 외부자의 눈에는 코믹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의 가장 큰 매력은 이런 코믹함과 책에 대한 진심을 적절하게 섞어서 균형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 만화에서는 책을 고르고 읽는 방식에 대해서 몇 가지 진지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충고를 전한다. 가령, 책을 끝까지 완독할 필요가 없다거나 목차를 보고 관심이 가는 부분만 읽으라거나, 주석을 무시하고 읽는 법을 배우라는 충고다. 또한 역자 소개가 저자 소개보다 긴 책은 용서할 수 없다거나, (이 부분에 동의한다) 혹은 재출간된 책은 믿을 만하다거나 (반만 동의한다) 하는 팁도 있다.
읽으면서 가장 깊이 동의한 부분은 책의 제목을 알려주지 않고 포장해서 판매하는 블라인드 북 마케팅의 비효용에 대한 대목이다. 각자 취향이 다른데, 뭘 믿고 책을 선물한다는 것인가? 책을 받아서 기뻐할 만한 독서가들은 자기만의 분명한 취향이 있고 좋아할 만한 책은 웬만하면 이미 갖고 있다.

지적 토론과 망상이 뒤섞이고, 책 속의 책들이 이야기를 늘어놓을수록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보르헤스의 미로처럼 끝없이 뻗어나간다. 로렌스가 쓴 엉망진창 소설들, 독서 클럽 회원들이 만든 괴상한 셰익스피어 공연, 그리고 그들이 겪는 첩보 스릴러 같은 상황들이 겹치면서 이야기는 혼성성과 혼종성을 띤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력, 하나의 책이 거기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진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탐독가들의 이상이 아닐까. 그러하기에 오늘도 독서 중독자들은 책을 모은다. 책장에는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많고, 집 안의 대부분을 책장이 차지하더라도 말이다. 이 만화는 그런 적독가(積讀家)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다음 웹툰으로 연재한 이 작품이 종이책이 되었을 때 더 어울리는 듯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2권은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뀌었고 볼륨이 줄었다는 점이 독서의 위기를 다른 면으로 보여준다.
1권 말미에 붙은 독서 리스트 목록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작가는 “서울시 동대문구 정보화 도서관에서 들은 강유원 선생님의 강의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구상의 계기가 되었다.”라고 적었다. 나도 그때 그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난 그 무엇도 구상하지 않았고, 독서는 역시 혼자 해야 하는 활동임을 절감했을 뿐이다. 그 후에야 목적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서 책을 읽지만 독서를 누군가에게 배울 마음은 사라졌다. 결국 독서는 취향과 자기 선택의 문제, 똑같은 책을 읽어도 감상은 각자 다르다. 심지어 하지 않는대도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독서 중독자들은 멸종 위기의 공룡처럼 광활한 대륙을 떠돌다가 가끔 동류를 만나서 고개를 끄덕이고 헤어지는 이들이다. 책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대도 우리는 어차피 취향이 다르다는 걸 반드시 확인하고 말 운명이기 때문이다. 사실 독서 중독자들은 공룡에 비유할 수 없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지구를 지배한 우세종인 적이 없으니까. 다수의 독서 중독자를 동시에 만나는 것도 ‘만화 같은’ 일이다.
글. 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