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세계 최강 국군, 병력 모자라 훈련 때 ‘품앗이’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면전 중인 러시아에 대규모 파병을 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북한군이 이번 파병을 통해 실전 경험을 쌓고 나아가 러시아 장비·군사기술을 반대급부로 받아 ‘군 현대화’를 이룰 가능성이 우려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전 참전은 북한 장교들이 현대전 경험을 쌓고 신형 무기에 익숙해질 기회”라고 분석했다. 6·25전쟁 이후 70여 년 동안 전면전에 투입된 적이 없는 북한이 지상군 파견을 통해 러시아에 수출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같은 재래식 전력은 물론, 드론과 소셜미디어까지 활용한 최신 ‘하이브리드전(戰)’ 경험까지 쌓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군은 1965~1973년 베트남전 이후 50년 동안 전면전 경험이 없다. 오랜 평화에 젖었을 뿐 아니라 최근 병력 인구 감소 여파로 군 대비 태세가 허물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20일 “최근엔 최전방인 FEBA(전투지역전단) 부대조차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FEBA는 유사시 우리 군의 단계적인 방어선으로, FEBA 부대들은 DMZ에서 5~10여㎞ 떨어진 민간인 통제선 내 지역에 있다.
보통 DMZ 철책선 경계 부대와 수색 대대, 포병 대대, 정보 부대 등이 배치돼 있다. 북한과 전면전이 발생하면 최전방 감시초소(GP)와 일반초소(GOP) 부대가 북한군과 교전하며 시간을 번다. 그 사이 FEBA 부대들이 온전한 기동·화력 장비를 모아 북진(北進)을 개시하는 것이 한국군의 작전 개념이다. FEBA 부대가 사실상 전방 사단의 중추 전력이 되기 때문에 FEBA 부대의 훈련 부족은 전체 군 전력 약화와 직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방에선 이미 병사 부족을 절감하고 있다. 강원도의 한 FEBA 부대는 최신예 K-21 장갑차로 무장하고 있지만, 정작 훈련 때마다 인력이 부족해 옆 중대에서 포수·조종수를 잠시 빌려오는 일종의 ‘훈련 품앗이’를 하고 있다. 또 보병 부족으로 ‘하차전투(보병 전개)’ 훈련을 포기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강원도의 기계화보병사단 출신 A 예비역 상사는 “부대 인력을 총동원했는데도 사람이 모자라 장갑차 3대를 빼고 훈련한 적도 있다”며 “전쟁이 나면 장갑차 몇 대는 그냥 버리고 출정해야 한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라고 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절벽으로 우리 군 병력은 2040년대 30만명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국방연구원의 2022년 추계에 따르면 2002년 69만명에 달했던 국군(상비군)은 올해 50만명에서 2039년 39만명대로, 2043년에는 33만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일찌감치 군을 떠나는 초급 간부도 급증하고 있다. 사관학교 출신 장교 중 의무 복무 기간 10년을 채우지 않고 5년 차에 조기 전역한 장교가 지난해 48명에서 올해 122명으로 2.5배 늘었다. 부사관 부족은 더 심각하다. 올해 입대한 하사(1280명)보다 전역한 부사관(3170명)이 2배 많다. 육군의 경우 지난해 정원 대비 선발 부족 인원이 장교는 550명, 부사관은 4790명에 달했다. 그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 인프라를 갖춰 놓고도 이를 운용할 병력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병사 월급이 200만원까지 인상되는 상황에서 장교·부사관은 여전히 박봉에 시달린다. 숙소 사정도 열악하고 업무는 늘 과중하니 장교·부사관으로 임관할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는다.
육군엔 부사관이 조종하는 K9 자주포가 1100대 있지만 현재와 같은 조종수 보직률(72.9%)로는 300대는 운용이 어려울 수 있다. 우리 육군에서 조종수가 필요한 자주포는 K9, K55 두 종인데 주력은 약 1100대가 편제돼 있는 K9이다. K9 자주포는 최대 사거리 40km, 1분에 9발을 쏠 수 있는 화력, 시속 60km로 움직이는 기동성을 갖췄다. 북한의 장사정포 도발 시 즉각 맞대응에 나서야 할 무기다. 경기도의 한 포병 간부는 “자주포 인원이 없어 다른 부대에서 충당하는 일이 잦다”고 했다. 군은 K9을 개량, 탑승 인원을 5명에서 3명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최소 인원’인 3명 중 1명만 없어도 화포 운용이 불가능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군 안팎에선 “드론 등 첨단 전력 연구와 실전 배치를 더욱 앞당기고 철책 경계 위주의 작전 개념을 탄력 있게 바꿔야 한다”며 “비대한 장성단 숫자를 줄이고 수십 년간 유지해왔던 ‘행정 군대’에서 ‘전투 군대’로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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