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이 결혼 당하는(?) 방법

일단 내 소개를 하자면 결혼적령기가 무르익은 30대 초반 남자이며

연고도 없는 지역에 발령 받아 3년째 살면서 내 인생의 마지막은 고독사로 끝마치겠구나 싶었음

아무도 모르는 곳에 심지어 내향인에 집돌이니 남는 시간에 사람들을 만나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음

그나마 회사에서 한 달에 두 번 있는 회식에 참여하며 내 남은 시간을 조금씩 죽여가고 있었음

취미가 러닝이라 주말에는 대회를 혼자 나가거나 그냥 혼자 달렸다... 러닝크루들 보며 쫌 부럽기도 했지만

그냥 혼자 뜀ㅎㅎ 이정도면 어느정도 내향인인줄 알겠지?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가 울 지역에서 강연을 한다는거야. 그래서 여기 찾아갔는데

지방이다보니까 사람이 많이 모이진 않았고 10명정도? 모였음

근데 강연 듣고 나서 갈라는데, 애프터파티를 준비해놨다고 참여하래서

엇 앗 네 하면서 얼떨결에 참가함

간단한 다과랑 맥주, 와인 있어서 서로 자기소개 하고 여기 왜 오게 됐는지 그런 첫 모임에서 하는 것들 하면서

삼삼오오 이야기 하고 있었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고 그냥 사람들이 하는 얘기 들으면서 아~ 오~ 혼자 조용히 리액션 하면서 보내는데

앞에 있던 여자분이 못 보던 분인데 여기 사람 맞냐고 물어봄

그래서 여기 3년째 지내고 있다. 아마 제가 이런 모임은 처음이라서 처음 뵌거 같다라고 답함

그러니까 제가 재밌는 모임 아는데 몇군데 추천해드릴까요? 해서

약간 부담스러워서 애둘러서 거절하려고

제가 내향인이고 집에 있는걸 좋아해서요 모임은 잘 안가게 되더라고요 하니까

그분의 눈빛이 갑자기 희번득해지더니 뭔가 찾았다!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음

시간이 흘러 끝나는 자리가 됐을 때 아쉽다며 번호를 교환했다

그 뒤로 얼떨결에 양가 부모님을 만나고 있었고 얼떨결에 결혼을 준비하고 얼떨결에 결혼을 했어ㅋㅋ

(외동이라서 외향적으로 살려고 노력한건가 생각도 했었는데 그냥 장모님 장인어른들도 미친 E였다..

우리는 항상 저녁때마다 찬밥이랑 차갑게 식은 국을 먹었다고 해서 엥 왜요?? 하니까 서로 얘기하느라

밥이랑 국이 다 식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거실에 노래방기기(업소용) 있는 집도 첨봤음;)

내가 사람에 대한 방어기제가 좀 있어서 어느정도 선을 넘어오면(나쁜 의미가 아니라) 부담을 느끼고 뒤로 물러서는데

와이프는 이 선을 넘는게 아니라 그냥 다 뿌숴버리고 자기가 선을 다시 정해주는 사람이었음ㅋㅋ

E 중에서도 E들 위에 군림하는 E였음ㅋㅋ

여지껏 선을 넘어오려는 사람만 보다가 선을 뿌숴버리는 사람을 첨보니 나도 당황해서 애배배거리는 동안 와이프에 휩쓸려서 이렇게 됐다

고독사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준 은인이야ㅋㅋ

나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니까

대화 나누면서 정서적으로 충전이 되는 느낌을 받은 사람이 처음이었대

나도 생각해보면 기가 빨리는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누구한테도 이야기 안하는 내 진짜얘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처음이었어

(종종 압도적인 양으로 진땀을 빼지만ㅎㅎ)

암튼 내 얘기가 길어졌는데

내향인, 집돌이라고 해서 진짜 집에만 있으면 큰일난다

연애/결혼하고 싶으면 관심있는 모임에 나가라

모임에 나가서 너가 인싸가 되라는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있다가

그 모임에 있는 E에게 간택당하면 된다.

그것이 내향인, 집돌이의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