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급이란 뜻을 가진 vintage는 국내에서 약간 다르게 읽힌다. ‘고풍스러운’, ‘예스러운’, ‘특정 제품의 전성기’, ‘최고의 상태’ 등으로. 역사상 최초의 스쿠터는 Arthur Hugo Cecil Gibson and Joseph F. Merkel이 1916년에 만들었지만, 세계적으로 스쿠터를 널리 알린 브랜드를 꼽는다면 역시 베스파다. 베스파에서 첫 모델이 발표됐던 1946년 이후, 2차 대전이 지나고 황폐해진 이탈리아 경제에서 활약했던 ‘값싼 이동수단’으로써 베스파의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항공기 부품을 만들던 피아지오는 노하우를 살려 2바퀴의 이동수단에 본인들의 실력을 적용했고, 베스파(피아지오가 모기업이다)의 상징적인 전륜 외발 스윙 암의 기원은 여기에 기인한다.

1904년도 설립된 국제 모터사이클 연맹(Fim,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Motocyclisme)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오프로드 모터사이클 대회’가 ISDT(International Six Days Trial)인데, 이 대회는 1913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ISDT는 세계대전 당시를 제외하고 다양한 국가에서 진행됐으며, 참가한 모터사이클 브랜드의 기술력과 라이더의 기술을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무대이자, 세계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다. 1951년 이탈리아 바레세 지방에서 열린 26회 ISDT는 이탈리아어로 XXVI Sei Giorni motociclistica internazionale로 표기되었고, 이 대회에서 ‘베스파 세이 지오르니’의 전설이 태동했다.(sei giorni는 ‘6일, six days’이다) ISDT에 참가한 피아지오 스쿼드라 코르세팀이 예상과는 달리 오프로드 전용 모터사이클로 출전한 다른 팀들을 뒤로하고 9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2017년 발표한 베스파의 ‘세이 지오르니’는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것처럼 베스파는 오랜 전통을 중시하며 계승, 발전하는 브랜드다. 브랜드 정체성에 ‘오랜 역사’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는 이야기다. 2006년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한 GTV가 표방했던 것도 ‘초기의 베스파’를 복원하는 것이었다. GT가 그란투리스모(장거리 투어 혹은 투어러, Granturismo)를 뜻한다면, V는 빈티지(vintage)를 의미한다. GTV는 고풍스런 브랜드인 베스파에서도 더욱 클래식한 라인이며, 레트로 붐을 이어가고 있는 모터사이클계에서도 매니아층을 형성하는 모델이다.

2023년 피아지오 베스파는 ‘오랜 전통을 대담하게, 또 현대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라며 New GTV를 공개했다. GTV의 상징이자 기존 베스파 라인업과 가장 큰 차별점인 ‘파로 바쏘(로우 헤드램프, faro basso)’와 노출된 튜브형 핸들 바는 계승되었고, 2006년 발표한 GTV가 계승한 1인승 시트도 새로운 형태로 유지됐다. 작년 EICMA 2022에서 공개되었듯, 전통의 특성을 유지하며, 환경 기준을 충족하는 하이퍼포먼스 엔진(HPE, High Performance Engine)과 전자 장치를 병합한 것이다.

GTV의 디자인은 베스파 본연의 클래식한 아이덴티티를 계승하면서 레이싱 룩을 접목해, ‘스포티한 클래식’을 추구했다. 상징적인 베스파 전면의 머드 가드와 프론트 펜더에 장착된 헤드 램프, 리어 램프를 둘러싸고 있는 프레임, 차제 주변을 휘감는 라인과 탠덤 그립 핸들, 풋 페그, 머플러 커버, 미러, 계기반에 ‘맷 블랙’으로 포인트를 넣었고, GTV의 특징 중 하나인 ‘레이싱 룩을 적용한 1인승 시트’와 후면 페어링의 도장, 핸들 바 중앙 전면에 위치한 커버는 좀 더 레트로한 감각을 완성시켰다. 다른 브랜드의 라이더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겠지만, 베스파의 프론트 실드 중앙은 베스피언들에게 ‘넥타이’라고 통용되는데, 이번 GTV의 넥타이는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날렵한’ 구조로 적용됐다. 베스파 특유의 프런트 싱글 스윙암에 연결된 블랙 휠림에는 주황색 포인트가 눈길을 끈다.

베스파 GTV에 장착된 HPE(High Performance Engine)은 피아지오 그룹에 속한 아프릴리아, 베스파, 피아지오 브랜드 스쿠터들에 장착되어 오랜 시간 활약해온 쿼사(Quasar)엔진의 변형이다. 기존 쿼사 엔진 대비 고출력을 뽑아내면서, 연료 소비와 배기 소음을 획기적으로 감축했고 탄소배출도 낮춘 고성능 엔진이다. 베스파에서 선보이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연비는 차량 무게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보통 1리터당 30.3km정도로 쿼터급 엔진치고는 준수한 편이다. GTV는 리터 당 29.41km 연비로 표기됐다. GTV의 연료 탱크 용량이 8.5리터니까 최대 약 250km를 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HPE 300엔진은 278cc 단기통 4행정 4 밸브이며 16.5kW 출력을 뽑아낸다.

GTV는 스타일의 진화와 함께 세부 파츠들의 품질도 향상되었다. 헤드램프 클러스터와 헤드램프는 풀 LED이며, 클래식 모터사이클을 상징하는 원형 LCD 계기반은 완전한 디지털화를 이뤄냈다. 스마트폰과 모터사이클을 앱을 통해 연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인 ‘VESPA MIA’도 적용되나, 국내에서 구글맵과의 연동 문제로 내비게이션 부분은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체 주행거리, 부분 주행거리, 주변 온도, 연료 잔량 확인, 음악 재생 관리, 통화 수신 및 거부 등 통화 관제를 사용할 수 있기에 여전히 고객 편의성이 높다. GTV의 상징인 오픈 핸들 바를 캔틸레버(cantilever) 브래킷으로 연결한 중앙 부분에 계기반이 자리 잡고 있고, 레이싱 룩의 연장선인, 작지만 임팩트있는 탑 페어링으로 감싸고 있다.

이번 New GTV에 장착된 시트에도 많은 공을 들인 티가 난다. 역시 시트에도 블랙 컬러에 오렌지 스티치로 개성적인 레이싱 룩을 적용했고, 탠덤 시트 부분에는 순정 하드 커버를 구매해 ‘1인승’의 감성을 만끽할 수도 있다. 시트 가장자리와 달리 안장 부분에는 ‘턱 앤 롤’ 스타일로 마무리한 것도 인상적이다. 모터사이클의 외장 디자인에서 예상외로 시트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점잖은 블랙 시트가 GTV의 측면 패널에 사선으로 새겨진 오렌지 컬러 그래픽과 함께 GTV 스타일을 완성해준다.

열쇠 없이 시동을 거는 ‘키리스 시스템’은 여전히 유효하며, 보안을 위한 잠금장치가 포함된 노브를 적용해 점화 스위치를 대체했다. 노브를 누르면서 ‘On’ 위치에 맞춰 돌리면 시동이 걸린다. 베스파 오너들에게 ABS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USB도 글러브 박스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타 브랜드의 TCS에 해당하는 기능인 ASR과 브레이크 잠김 방지인 ABS도 2채널로 지원된다.

새로운 GTV에 대해 피아지오 아시아 지부(APAC)의 회장인 지안루카 피우메(Gianluca Fiume)가 “우리 브랜드의 정신을 구현하는 독보적인 모델이자 베스파 역사에 중대한 이정표를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전할 만큼, 베스파가 선보일 GTV에 대한 기대는 몹시 크다. 특히나 일반 스쿠터들과 궤를 달리하는 브랜드인 베스파는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가치가 높고, 기존 패널의 색상만 차별화 해왔던 라인들과 달리, GTV만의 상징을 지니고 있기에 국내 시장에서의 반응이 기대된다. 국내 피아지오 베스파의 수입사인 이탈로모토는 NEW GTV가 2023년 하반기에 출시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가격은 아직 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