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은 죄가 없다.. 21세기 문맹에 '심심한 위로'를

안진용 기자 2022. 8. 2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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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잘못 이해한 네티즌의 적반하장식 댓글.
EBS는 문해력 부족 문제를 진단하는 프로그램인 ‘당신의 문해력 플러스’를 편성하고 있다.

■‘심심한 사과’가 불러온 ‘문해력 논란’

무료함 뜻의 순우리말‘심심’과

깊고 간절함의‘甚深’구분못해

사과 공지문 본 네티즌들 발끈

‘사흘’표현 ‘4일’로 잘못 알고

‘고지식’을 ‘High 지식’이해도

스마트폰 기반‘언어 파괴’심각

MZ세대 문해력 사회문제 대두

“세대간 다툼 돼선 안돼” 지적도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심심’ 논쟁이 뜨거웠다. 한가하거나 무료하다는 의미의 순우리말 ‘심심’과‘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를 뜻하는 한자어 ‘심심’(甚深)을 구분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어가기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소위 ‘외계어’나 ‘급식체’에 익숙한 MZ세대들의 언어 파괴가 심각하고 문해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웹툰 ‘야화첩’의 작가 사인회를 열 예정이었던 콘텐츠 카페 모펀 홍대AK&점은 “사인회 예약이 모두 완료됐다”며 “예약 과정 중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고 공지했다. 이후 이 글을 올린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심심한 사과’라는 검색어가 올라왔고, “누가 심심한 사과를 하냐?” “생각 없는 표현” “심심하다니… 미쳤다”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심심’(甚深)의 뜻을 알지 못한 이들의 적반하장이었던 셈이다.

유사한 사례는 이뿐 아니다. 교사의 ‘이지적’이라는 칭찬에 학생이 “자신을 쉽게 본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고지식하다는 평가에 고(high)+지식(knowledge)으로 받아들였다는 글도 온라인상에 떠돈다. 앞서 지난 2020년 당시 문재인 정부가 ‘관광서의 임시공휴일 지정안’을 의결하며 ‘광복절부터 사흘 연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15∼17일이면 3일인데 왜 사(4)흘이냐”는 황당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었다. 당시는 포털 사이트 검색어 서비스가 시행되던 때라 ‘사흘’이 주요 검색어로 올라왔다.

이 같은 일들은 소리 나는 대로 글을 쓰고, 각종 축약어와 신조어를 빈번히 사용하는 세대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짧은 글에 익숙해지다 보니 문해력이 점차 약해진 결과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청소년 디지털 문해력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문맹률은 1% 정도지만,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역량을 측정하는 문항의 정답률은 25.6%로 OECD 평균(47.4%) 이하였다. 또한 최근 발표된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살펴보면,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하락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고2의 경우 2019년 77.5%에서 2020년 69.8%, 2021년 64.3%로 성취도가 하락했다. 같은 기간 중3의 성취도 역시 82.9%에서 75.4%, 74.4%로 내리막이었다.

이런 문해력 부족을 지적하는 이들을 향한 일부 네티즌의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옳은 지적에 수긍하기보다 “왜 굳이 어려운 표현을 쓰느냐”고 타박하기 일쑤다. 이에 대해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소통만 되면 문제없다며 글을 소리 나는 대로 짧게 쓰는 SNS식 화법이 ‘트렌디하다’ ‘쿨하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한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아름다운 문자인데 기본 문법 체계와 맞춤법조차 지키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 신조어를 써야 현시대에 발맞출 수 있다는 착각을 걷어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런 현상을 되짚고, 문해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EBS는 ‘당신의 문해력’ 시리즈를 편성했다. 지난해 방송된 시즌1에 이어 현재는 ‘당신의 문해력 플러스’가 방송 중이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공공문서나 계약서, 업무 문서 등을 제대로 읽는 법을 알려준다. 홈페이지에서는 문해력 테스트를 해볼 수도 있다.

문해력을 둘러싼 논쟁이 세대 간 다툼이나 서로 생각이 다른 이들 간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아나운서 출신이자 아내 김소영 아나운서와 서점도 운영 중인 오상진은 자신의 SNS를 통해 “문제는 지나친 자기 확신과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오만이 부딪쳤을 때 발생한다. ‘심심한’이라는 말이 거슬리게 들릴 수도 있지만 순간의 화를 누르고 사전을 한번 찾아봤다면 이런 갈등도 없었을 것이고, 이를 조롱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면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마이클 샌델은 학식을 갖춘 이들의 거드름과 무시가 사회의 갈등을 격화시켰다고 분석했다. 한 번 더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태도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을 내 네티즌의 공감을 샀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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