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팔로워 112만명, 작명천재 '키크니'
‘작명 천재’, ‘언어유희의 대가’라 불리는 작가 ‘키크니’의 인기 비결은 독자와의 소통인데요. 사연을 그림으로 풀어주고, 작명해주는 센스로 독자들은 감동과 위로를 받습니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 '로컬100' 홍보 대사를 맡게 된 그는 전국 곳곳의 100가지 명소와 콘텐츠, 명인 등에 얽힌 국민 사연을 그림으로 풀어내 지역문화의 매력을 확산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독자들과 울고 웃으며 치유 받는다"는 '키크니' 작가의 인터뷰를 '정책주간지 K-공감'에서 만나보세요.
좋은 사연이 좋은 그림 만들어
“독자들과 울고 웃으며 치유 받아요”
‘재미있는 소품 파는 잡화점 이름 추천해주세요.’ ‘웃기고 잡화점네는 어떨까요?’
‘엄 씨인 딸, 글로벌한 이름으로 뭐가 좋을까요?’ ‘엄에이징(Umazing)은 어떨까요?’
‘매번 제 속을 뒤집지만 한 번씩 달달한 남친 별명 지어주세요.’ ‘탕 후루새끼.’
‘작명 천재’, ‘언어유희의 대가’. ‘키크니’를 이야기할 때 따라오는 말들입니다. 그는 소위 요즘 가장 잘나가는 일러스트 작가입니다. 인스타그램(@keykney) 팔로워만 112만 명. 웬만한 연예인보다 팬이 많습니다. 인기의 비결은 독자와의 소통입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독자들의 사연을 그림으로 풀어냅니다. 일종의 주문자 맞춤형 제작, 게다가 ‘무료 서비스’입니다. 앞서 소개한 내용은 작가가 ‘키크니 작명소’라는 이름으로 누리소통망(SNS)에 올린 내용입니다. 상호나 별명 등을 지어달라는 요청에 작명을 해주고 몇 줄 사연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는 센스가 그야말로 ‘오집니다’.
제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2018년부터 연재한 인스타툰(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만화)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을 통해서입니다. 짧게는 한 컷, 길어도 열 컷을 넘지 않는 그의 그림 속엔 상황을 180도 비트는 풍자와 유머, 어느새 눈물 쏙 빼놓는 감동과 위로가 교차합니다. ‘술병 나서 이틀째 설거지 안 하고 있는데 그릇들은 무슨 생각하는지 그려달라’는 요청에 ‘언제까지 그릇게 살래’라며 한숨을 내쉬는 설거지더미가 등장하고 ‘비속어 많이 쓰는 윗사람 입 다문 모습을 그려달라’는 호소에 ‘음속어’로 이야기하는 상사를 묘사해 소심한 복수도 대행해줍니다. 어린아이와 엄마가 서로를 꼭 안고 있는 그림엔 ‘하나도 안 아파요, 한 번만 안아보고파요’라는 말이 말줄임표와 함께 따라붙습니다. 아파서 먼저 떠난 다섯 살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려달라는 사연을 작가의 상상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키크니는 2023년 말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일러스트 작가로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스마트폰 평면에 누워 있던 그의 그림들은 영상으로, 설치작품으로 살아나 독자들과 만났습니다. 2024년 1월엔 키크니 자신의 캐릭터를 여러 굿즈(팬 상품)로 제작해 팝업스토어도 열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이제 작품이 됐고 작가 ‘키크니’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서울 마포구 개인 작업실에서 키크니를 마주했습니다. 이름처럼 큰 키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낸 그의 입에선 ‘감사’와 ‘치유’라는 단어가 자주 새어 나왔습니다. 유머와 익살로 무장한 화면 속 키크니는 사라지고 더없이 성실하고 한없이 겸손한 한 직업인의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개인전 ‘일러, 바치기’는 전시를 연장할 만큼 인기가 상당했어요.
별거 아니라는 생각으로 도전했는데 막상 누군가 돈을 내고 제 작품을 보러 온다고 생각하니 무척 부담스럽더군요. ‘볼 게 없었다’는 이야기를 절대 듣고 싶지 않았어요. 그간 인기있던 작품을 오프라인 공간에서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제가 아이디어를 내면 영상물이나 설치작품을 만들어주는 분들이 구현했죠. 혼자 작업할 때보다 몇 십 배는 더 힘들더군요. 꼴같잖게 제가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관람객이 많아 두 시간 넘게 기다렸다는 후기도 봤어요. 직접 본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평소 그림을 보고 ‘재밌다’, ‘감동적이다’라는 댓글만 봐도 정말 감사했어요. 그게 그림을 그리는 이유였고 계속 이렇게만 살아도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반응이 육성으로 터지는 것을 보니 참 신기했어요. 특히 반려견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영상을 보고 많은 분들이 울더라고요. 그저 앞을 못 보는 반려견이 좀 더 편하게 하늘나라로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 건데. 제그림이 저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만감이 교차했어요. 게다가 관람객 중엔 70~80대 어르신이나 가족이 모두 함께 와 보는 경우도 많았어요.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이전까지는 상업용 삽화를 그렸어요. 어떤 반응도 피드백도 없이 기계처럼 일했죠. 당시 가정형편도 안 좋아서 그렇게 번 돈은 다 집으로 들어갔어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어요.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로 일을 그만뒀어요. 이후 별 생각없이 SNS에 제 이야기를 그려 올렸는데 그림이 좋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더군요. 치유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뭔가 재미있는 걸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즉석에서 댓글로 아이디어를 받아 그림을 올렸는데 좋은 반응이 이어졌어요. 신이 나서 일주일에 두세 개씩 그려 올린 게 벌써 6년째네요.
독자 사연이 쏟아지겠어요.
일주일에 댓글은 수천 개, 사연은 수백 개예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다 읽어요. 많이 볼수록 좋은 그림이 나온다고 생각해서요. 독서를 안 하게 된 이유죠(웃음). 댓글이나 사연은 모두 파일로 만들어놔요. 예전 글들도 나중에 다시 보기도 하고요. 그럼 당시엔 떠오르지 않았던 아이디어가 생각나기도 해요. 그럴 때 아드레날린 폭발입니다.
6년간 그린 양이 엄청 많을 것 같은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을까요?
정확히 모르지만 1000개는 가뿐히 넘을 것 같고 뒤이어 시작한 작명만 해도 1000개 정도예요. 제가 이렇게까지 성실했나 싶어요. 정말 즐기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중에서도 반려견이 머리에 띠 두르고 한글 공부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의미가 깊어요.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려달라는 사연이었는데 나중에 만나 더 재미있게 놀려고 공부하고 있다고 표현한 거예요. 이 그림을 시작으로 감동적인 사연을 많이 그리기 시작했거든요. 이전까지는 재밌는 사연 위주로 했는데 독자들의 호응 덕에 제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년 가까이 밤낮없이 일하며 마음의 병을 얻은 일, 외환위기 때 신용불량자가 된 아버지와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가정사를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고통을 유머로 승화하며 버텨낸 직업인으로서의 사명, 가정경제의 붕괴가 관계의 무너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자리를 지켜낸 둘째 아들의 삶은 이제 그림 속에 고스란히 녹아듭니다. 오늘도 ‘출근의 기적’을 일궈낸 수많은 직장인의 모습으로, 잘난 사람은 못 돼도 ‘잘 낳은’ 자식이 되고자 하는 모든 아들딸의 모습으로. 작가는 “자신 역시 특별하지 않은 그저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이가 공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둘러댔습니다.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땐 어떻게 하나요?
제가 즉석에서 휘리릭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에요. 표현할 방법을 몰라 묵혀둔 좋은 사연이 많아요. 어느 순간엔 내가 나한테 잡아먹히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계속해서 이전보다 나은 걸 보여줘야 하는데 쉽지 않으니까요. 생각이 막힐 땐 방도가 없어요. 내 안의 스위치를 끊임없이 껐다 켰다 할 수밖에요.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 거죠.
얼굴 공개를 안 하는 걸로 유명해요. 그러면서 (가면을 쓴 채)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유행하는 말로 ‘소심한 관종’ 아닌가요?
(미소 지으며) 맞아요. 실제론 잘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림으로 다 해소하는 거죠. 스스로 ‘작명천재’라는 둥 허세도 부리지만 키크니의 유머코드일 뿐 진짜 ‘나댈’ 생각은 전혀 없어요. 오히려 친구들이 제가 뭐라도 된 양 대접해주려고 하면 소름이 끼쳐요. 방송은 여러 차례 거절했는데 진행자인 유재석 씨가 보고 싶어서 나갔어요. 방송 한 번으로 끝이겠거니 했는데 재방송을 500번쯤 하더군요!
독자와 만나는 이벤트도 했죠.
팬미팅 같은 건 까부는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버거운 사랑을 받으니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독자들과 유기견 보호소에 봉사를 간 거예요. 평소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호소에 가곤 하거든요. 여러 사람과 가면 주목받는 게 걱정됐는데 웬걸요. 인사만 한 뒤 다들 일하느라 저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게 또 너무 웃겼어요. 그러다 산책 시간에 한 명씩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건네더라고요. 제가 수줍은 성향인 걸 알고 배려해준 거였어요.
요즘 키크니는 각종 브랜드와 협업을 하고 착한캠페인에 앞장서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로컬100’ 홍보대사로 나선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정부는 전국 곳곳의 100가지 명소와 콘텐츠, 명인 등을 선정해 홍보하고 있습니다. 키크니는 경남 진주남강유등축제, 대전 성심당, 경북 안동하회마을 등에 얽힌 국민 사연을 그림으로 풀어내 지역문화의 매력을 확산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로컬100 홍보대사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지역의 다양한 매력이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응했어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으니까요. 문화유산의 역사 등을 그림으로 풀면 많은 분의 관심을 끄는 데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었죠. ‘내가 홍보대사란 것도 해봅니다’ 하고 주변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공부도 많이 해야 할 텐데요.
문체부에서 워낙 방대한 양의 자료를 줘서 안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지식이 아닌 이야기를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부에서 지역의 문화유산을 발굴해내면 그 속에 숨어 있는 국민들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게 제 역할이에요. 한 자리에 고정된 장소나 문화유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로 지역의 문화매력을 알리는 데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독자 사연이 아닌 본인 얘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SNS 팔로워가 20만 명 정도 됐을 때 멋지게 계정을 삭제하고 떠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인기의 맛을 보니 또 포기하기가…. 성급하게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관심이 줄어들 때 다른 걸 해볼 생각이에요. 계획을 세우기보단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하려고 해요.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나요?
누군가 제 그림을 좋아해주면 좋겠다는 두근거림으로요. 독자의 80%는 직장인이에요. 출퇴근할 때 감정이 메마르잖아요. 그 시간에 그림 속에서 잠시나마 웃음과 위안을 찾으면 좋겠어요.
키크니 사연으로 뽑히는 팁이 있다면요?
기존에 다루지 않은 종류의 이야기, 누가 봐도 불편함이 없는 이야기라야 해요. 아무리 긴 글도 다 읽으니 분량은 상관없어요. 100개 정도 다양한 콘셉트로 보내보세요. 그중 하나는 되지 않겠어요?(웃음).